[캔디맨] 간략후기
<겟 아웃>, <어스>의 조던 필 감독이 각본과 제작을 맡은 호러 영화 <캔디맨>을 보았습니다.
1992년에 나온 동명 영화의 공식적인 속편인 이 영화는 '거울을 보고 '캔디맨'을 다섯번 부르면 그가 나타나 자신을 부른 사람을 죽인다'는
전편의 도시 괴담 소재를 30년 가까이 흐른 현재로 가져와 보다 직접적인 시대 반영과 메시지 투영을 더해 빚어냈습니다.
호러라는 장르에 인종 문제, 사회 문제를 적극적으로 녹여 냈던 조던 필 감독의 손길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이 영화는
도시 괴담을 일으키고 퍼뜨리는 사회적 특성을 감안하여 '캔디맨'에 관한 이야기와 그 배경, 함의를 함께 주목할 때 더 강렬하게 다가옵니다.
비주얼 아티스트인 앤서니 맥코이(야히아 압둘 마틴 2세)는 새로운 작품을 내놓기 위해 골몰하고 있습니다.
유능한 큐레이터 여자친구 브리아나(테요나 패리스)에 묻어간다는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다음 작품을 열심히 구상하던 중,
'캔디맨'에 대한 괴담을 듣고 그로부터 영감을 얻기 위해 괴담의 배경이 되는 '카브리니 그린'이라는 동네로 향합니다.
한때는 빈민가이자 우범지대였지만 지금은 개발의 바람이 지난 후 예술가들이 즐겨 찾는 동네가 된 카브리니 그린에서,
앤서니는 동네에서 오래 산 윌리엄 버크(콜맨 도밍고)라는 남자를 만나 '캔디맨'에 얽힌 자세한 이야기를 듣습니다.
'캔디맨' 이야기에 매혹된 앤서니는 이를 바탕으로 자신의 새로운 작품 '내 이름을 불러줘'를 내놓는데,
공교롭게도 작품을 내놓은 후 충격적인 살인사건이 발생하고 이에 앤서니의 작품 또한 주목 받기 시작합니다.
가뜩이나 '캔디맨' 이야기에 매혹되었던 차에 그로 인해 생겨난 자신의 작품까지 유명세를 얻기 시작하면서
앤서니는 '캔디맨'에 더욱 이끌리지만, 당연히 이럴수록 앤서니는 점점 더 위험한 상황으로 치닫게 됩니다.
2021년작 <캔디맨>이 1992년작 <캔디맨>의 공식적인 속편이라기에 1992년작을 미리 보고 이 영화를 보았는데요,
이번 영화에서 1992년작 영화에 대한 이야기가 극중 인물들의 입을 빌리거나 다른 방식을 통해 충분히 설명되긴 합니다만
1992년작을 먼저 보고 이 영화를 볼 때 세월에 따라 환경이 바뀌고 이야기의 층위가 쌓이는 것을 보다 잘 느낄 수 있습니다.
유명한 원작 영화가 있는 경우 차라리 리부트를 하면 보다 편하고 자유롭게 이야기를 짤 수 있을텐데,
이 영화가 굳이 속편이라는 노선을 택한 이유가 뭘까 생각해 보면 바로 이 변화하는 환경, 누적되는 이야기 때문인 것 같기 때문입니다.
보통 공포영화에서 살인마 캐릭터가 날뛰는 고유의 현장으로 돌아간다고 하면 세월을 피해간 듯 특유의 을씨년스런 아우라를 유지하기 마련인데,
<캔디맨>에서 그러한 현장 역할을 하는 '카브리니 그린'은 반대로 세월의 변화를 정통으로 맞은 경우입니다.
황량한 고층 아파트는 사라지고 단층짜리 연립주택들만 남았고, 그렇게 정리된 자리에는 신형 고층 아파트가 자리잡았죠.
그러나 낙서와 그래피티로 얼룩진 벽 위에 단지 도배만 새롭게 한 듯, 본래부터 품고 있던 기운은 사라지지 않고 잠시 숨어 있는 것 뿐입니다.
우리가 자각하는 순간, 그리고 호명하듯 다시 불러내는 순간 그 기운은 다시 나타나니 이는 '캔디맨'의 특성과도 같습니다.
전편에서 주인공 헬렌은 도시 괴담에 대한 논문을 쓰면서 '캔디맨'을 추적하지만, 그 도시 전설의 함의를 결국 완전히 도출해내지 못했습니다.
이번 <캔디맨>은 헬렌이 미처 결론내지 못한 '도시 괴담이 왜 죽지 않고 우리 곁에 살아숨쉬는가'라는 질문에 비로소 답을 내놓는 듯 합니다.
앤서니는 여러 인물들을 통해 '캔디맨'에 대한 이야기를 수집하게 되지만, 그래서 ''캔디맨'이 누구인가?'라고 묻자면 답하기 쉽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캔디맨'의 정체로부터 유추되는 그의 개인적인 역사보다, '캔디맨'의 행위로부터 유추되는 사회적인 역사이기 때문입니다.
'캔디맨'의 역사를 추적하는 데 있어서 전편의 헬렌은 백인으로서 어쩌면 '캔디맨'이 겪었던 고초와 거리가 있는 제3자의 입장이었다면,
이번 영화에서의 앤서니는 젊고 유망한 아티스트라고 해도 같은 흑인으로서 '캔디맨'의 역사의 자장을 벗어날 수 없는 입장일지도 모릅니다.
'캔디맨'이 저지르는 살육의 기원이 되는 감정이 혹독한 결말을 맞은 삶으로 인한 분노였다는 걸 되새겨 보면,
앤서니가 겪는 일련의 사건이 흘러가는 과정은 그가 분노를 관찰하던 자에서 분노의 당사자가 되어 가는 과정이라고 봐도 좋을 것입니다.
영화가 '캔디맨'의 어느 시대의 누구라고 단정하지 않고 모호하게 처리하는 것은 어쩌면 그 모호한 정체성이
누구라도 정체성의 일부로 포섭할 수 있다는 것을, 그렇게 '캔디맨'의 숨결은 동시대에 남아있다는 걸 이야기하려 한 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따라서 '캔디맨'의 갈고리는 무고한 이들을 향한 무작위 살인으로 우리에게 공포심을 유발하기보다,
그의 존재를 여전히 믿을 수 밖에 없도록 사회를 만들어내게 하는 자들을 향한 일종의 복수로 묘한 카타르시스를 일으킵니다.
공포영화는 보통 비로소 끝장내기 위해 잊혀졌던 살인마를 불러내지만, <캔디맨>은 역으로 잊지 않기 위해 '캔디맨'을 소환하는 듯 하죠.
전편이 나온지 30년이 지났어도 '캔디맨'의 갈고리는 살아움직이고, 얼굴은 바뀌어도 그 속의 광기어린 울분은 변하지 않습니다.
이는 흑인의 목숨도 소중하다느니, 아시안 혐오를 멈추라느니 하는 구호를 여태 외쳐야 할 만큼,
인종과 사회를 바라보는 세상의 태도가 변하지 않았다는 방증일 것이고 이런 세상이 '캔디맨'의 존재를 더 선명하게 만드는 거겠죠.
자신을 믿는 자를 찾아 헤매는 '캔디맨'의 의도대로, 두려워 하다가 결국은 묘하게 동조하게 되는 이 경험은
앤서니 역을 맡은 야히아 압둘 마틴 2세의 예민하고 날카로운 연기를 따라 불편하지만 수긍이 가게 다가옵니다.
다만 호러물로서의 대단원을 매듭짓는 데 대한 부담 때문인지 결말부의 마무리가 다소 다급하게 느껴지는 점은 없지 않았습니다.
호러라고 하면 장르적인 재미를 추구하는 데 우선일 것이지 왜 사회적 메시지를 노골적으로 심어놓느냐는 반론도 있을 듯 합니다.
그러나 공포라는 감정은 사회의 부조리한 폭력으로 인한 인간의 두려움과 긴밀하게 연관될 수 밖에 없고,
세기를 걸쳐서도 사그라들지 않고 망령처럼 남아 있는 인종 혐오의 역사는 엄중한 공포의 대상이 되기에 손색 없을 것입니다.
퇴치되지 않는 악령과 같은 혐오의 공포를 그려내면서 동시에 호러 장르답게 그 공포의 대상을 처단하려 하는 <캔디맨>은
피로 얼룩진 '캔디맨'의 갈고리만큼이나 그 끝에 맺힌 오래된 분노의 배경을 함께 들여다 볼 때 더 강렬하게 다가올 사회고발 호러입니다.
추천인 27
댓글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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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중 "누적되는 이야기" 말씀처럼 켜켜이 세월을 쌓아두려 리부트를 택하지 않은 듯했어요. 그사이 변한 세월 자체가 영화의 소재가 되기도 하니까요.
글 잘 봤습니다.
좋은 리뷰 잘 봤습니다. 국내 관객들의 혹평 때문에 망설이다 봤는데, 1편의 사회적 함의를 이어받아 더욱 깊게 새겨넣은 속편이더라구요. 꽤나 좋았어요.
훌륭한 리뷰 잘 읽었습니다~~
전 사회 주제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것은 감독이 관객에게 좀 선생질을 하는 것 같아서 별로 좋아하지는 않지만^^;;; 캔디맨이 얘기하는 바는 어느 정도 공감이 되더라고요. 흑인 못지않게 요새 차별받고 있는 아시안이라서 더 그런지도요. 특히 영화 중간중간, 그리고 엔딩크레딧의 그림자인형극은 매우 인상 깊었어요~~ 근데 맨 마지막 자막은 좀 과유불급인 거 같아요. 갑자기 영화가 아닌 캠페인을 본 듯한^^;;;;
마지막 자막은 한국 관객 입장으로서 남일처럼 봤지만 현지 관객들에게는 유의미하겠구나 했습니다.
이런 사회성 짙은 주제가 담긴 영화나 드라마의 경우 그런 자막을 넣는 경우가 왕왕 있기도 하고요 ㅎㅎ
짐마니님의 캔디맨 후기글 기다렸습니다
역시 좋으네요 +_+
호불호가 갈리지만
오리지널 캔디맨을 좋아하는 저로선
정말 환영하고 싶은 영화였습니다!
추천!
오리지널을 보고 바로 뒤이어 봐서인지 더 의미 있게 다가온 것 같습니다 ㅎㅎ
리뷰 잘 읽었습니다!!
통찰력이 탁월한 리뷰 잘 읽었습니다. 0_0b
방금 보고 왔는데, 저도 감독의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이 좋았습니다. 사회적으로 전승되는 공기야말로, 공포 그 자체임을 보여준 듯하네요.
창작자의 의도를 잘 살린 영화 같은데..
그 의도에 공감하느냐 못하느냐가 호불호를 가르는 것 같네요.
글 잘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