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C -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 간략후기
DC 유니버스의 신작 영화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를 아이맥스로 보았습니다.
5년 전에 이미 '수어사이드 스쿼드'가 주인공으로 등장한 적 있지만, 이 영화는 거기에 특정한 대상을 가리키는 정관사 '더(the)'를 붙인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라는 제목으로 마치 지금 이들이 당신이 기다렸던 '바로 그' 수어사이드 스쿼드임을 선언하는 듯 합니다.
마블에서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시리즈로 이름을 날린 바 있는 (그리고 3편 제작으로 현재도 진행중인) 제임스 건 감독이
DC로 넘어와 처음 연출한 이 영화는, 감독이 그간 블록버스터에서 보여준 재능 역시 어디까지나 통제를 거친 것이었음을 입증하듯
그야말로 고삐 풀린 망아지, 아니 말처럼 호기롭게 거침없이 날뜁니다. 그런 기질이 무엇보다 어울리는 영화이기도 하고요.
이성을 놓지 않고서는 뛰어들 엄두를 낼 수 없는 위험천만한 임무를 해결하기 위해, 국가 기밀 기관 소속의
아만다 월러(비올라 데이비스)는 또 다시 교도소에 수감중인 빌런들을 불러모아 '수어사이드 스쿼드'를 결성합니다.
백발백중 특등사수 블러드스포트(이드리스 엘바)를 리더로 평화를 위해서는 누구든 죽일 수 있는 극단적 평화주의자 피스메이커(존 시나),
세상의 모든 쥐들을 손 안에서 다룰 수 있는 랫캐쳐2(다니엘라 멜키오르), 반인반상어인 '킹 샤크' 나나우에(실베스터 스탤론),
점박이 무늬로 사람을 죽이는 소심남 폴카도트맨(데이빗 다스트말치안), 그리고 그 유명한 할리퀸(마고 로비)과
지난 수어사이드 스쿼드에도 함께 했던 유일한 '비악당'인 릭 플래그(조엘 킨나만)까지.
쿠데타 정권이 세워진 어느 섬나라에 세워진 비밀 프로젝트의 흔적을 제거하라는 미션을 받고 그들은 출동하지만,
과연 예상대로 누구의 목숨도 보장할 수 없는 위험한 상황의 연속이고, 그 속에서 각자도생이 살 길인 팀플레이가 펼쳐집니다.
'자살 특공대'라는 이들 조직의 이름에 걸맞게, 처음부터 끝까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 같은 상황이 이어집니다.
그러니 다양한 빌런 캐릭터의 등장으로 누구 하나에 괜히 마음을 주었다가는 뜻밖의 타격에 큰코 다칠 수 있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계속 되새겨야 할 전제는 이 이야기의 주인공들이 어디까지나 '빌런'이라는 점입니다.
영화는 그들의 성향이나 행적에 정당성이나 명분, 히스토리를 굳이 만들지 않습니다. 그냥 원래 그렇게 생겨먹은 자들일 뿐입니다.
애초에 싱글 플레이가 편했던 자들이라 팀이라고 모여도 원팀 정신은 갖다버린 채 삐딱선 타기가 부지기수고,
도덕성 결여와 이기심을 타고 났으니 본의 아니게 불의한 상황이 닥쳐도 괴로워 하지 않고 우리 역시 그들에 대한 애정이나 동정은 불필요합니다.
제임스 건 감독은 이러한 전제를 계속 상기하면서 그야말로 폭죽처럼 카오스를 시도때도 없이 터뜨립니다.
인과관계와 논리가 명확한 이야기, 안정적으로 구축된 캐릭터와 그에 대한 존중을 기대한다면 영화가 꽤 당황스러울 수 있습니다.
일반인의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빌런들의 모임에서 그런 것들을 요구한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아이러니겠죠.
누군가에게 일말의 인간성이 발견될 수는 있어도, 멀쩡한 것을 기대할 수는 없는 악당들의 기조를 영화는 무너뜨리지 않습니다.
그런 태도를 바탕으로 일체의 도덕적, 윤리적 판단은 잠시 보류한 채 카오스에 몸을 맡기는 것이 영화를 즐기는 가장 좋은 방법일 수 있습니다.
위와 같은 사항만 잘 상기한다면 영화가 보여주는 게릴라성 유혈 사태를 마음껏 즐길 수 있습니다.
수어사이드 스쿼드 구성원들 각자가 목적을 위해서라면 타겟에게 갖은 잔혹한 폭력도 불사하는 이들이기도 하지만,
영화가 이들의 결속력, 충성심, 인간성, 갱생 가능성 같은 것에 큰 기대를 걸지 않는 만큼 폭력은 스쿼드 자신들에게도 자비가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야기는 수시로 계획에서 벗어나며 영화 속 등장인물들은 물론 관객들도 때때로 당혹스럽게 하는데,
그렇게 갈지자로 걸어가며 차곡차곡 쌓여가는 카오스가 어찌저찌 세계 구출이라는 나름의 질서로 향하는 광경이 무척 기묘합니다.
빌런의 본능으로 움직이며 실컷 피를 보다 세상을 구하는 이 아이러니한 이야기는 별다른 메시지를 전하지도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뒤로 갈수록 직면하게 되는 대환장 파티 같은 상황은 그 자체로 우리에게 장난스럽지만 꽤 노골적인 질문을 던지는 것도 같습니다.
'나쁜 놈들이 더 나쁜 놈들을 무찌른다'는 빤한 상황이 아니라 뭔가 무찌른다는 것이 가능한가 싶기까지한 대혼란의 상황에 이르면,
이런 혼돈의 세계에 히어로는 과연 따로 정해진 건가, 세상은 때로 수많은 말썽의 도미노 끝에 '어쩌다' 구해지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에 미칩니다.
저 '인간 말종' 혹은 '말종 직전의 인간' 혹은 '(생물학적으로) 인간이 아닌 존재'들이 어떤 목적을 가지고 돌진하는 모습을 통해,
어쩌면 지극히 보통 사람들인 우리에게도 그런 목적이라는 게 잊지 않겠는가라는 나름의 위로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때도 그러했듯, 제임스 건 감독은 이번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에서도 양보할 수 없는 개성을 가진 캐릭터들이
뚝딱거리며 임무를 수행하면서 생겨나는, 최소한으로 살가운 동료 의식을 (좀 더 무책임한 버전으로) 잘 살려냅니다.
배운 게 총질 밖에 없지만 뭔가 쓸 만한 구실을 하고픈 리더 블러드스포트 역의 이드리스 엘바를 비롯해
한층 더 파워풀해진 액션 연기와 더불어 롤러코스터처럼 요동치는 감정 연기 또한 유감없이 선보이는 할리퀸 역의 마고 로비,
그래도 예전에 스쿼드 한번 이끌어 본 경험 있다고 방임과 관리 사이를 줄타기할 줄 아는 릭 플래그 역의 조엘 킨나만,
현실에서는 매우 모범적임을 알기에 얄팍하고 악랄한 캐릭터가 기막힌 조화로 다가오는 피스메이커 역의 존 시나,
다른 캐릭터들에게서는 좀체 찾아볼 수 없는 감성 코드를 비교적 자연스럽게 구현하는 랫캐쳐2 역의 다니엘라 멜키오르,
도트를 발사하기 전까지는 손대면 톡하고 터질 것만 같은 인물을 어딘가 연민 어리게 보여주는 폴카도트맨 역의 데이빗 다스트말치안,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속 그루트 포지션에 게걸스러움과 의외의 귀여움을 얹은 '킹 샤크' 나나우에 역의 실베스터 스탤론,
전편보다 더 악독해져서 누가 빌런인지 구분이 안 갈 정도인 아만다 월러 역의 비올라 데이비스까지 인물들의 조화가 생각보다 좋습니다.
서로 다른 캐릭터들을 붙여놨을 때 발생하는 저마다의 관계성에 감독은 이번에도 공을 들인 듯 이들의 관계는 콩가루인 듯 은근 응집력 있습니다.
5년 전에 이미 한 차례 나왔던 '수어사이드 스쿼드' 유닛의 이야기를 제목은 거의 바뀌지 않은 채, 그러나 성향은 완전히 바뀐 채 내놓은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에서 DC 유니버스가 정한 앞으로의 방향성은 더욱 명확해진 듯 합니다.
마블같이 세계관과 타임라인을 치밀하게 구축할 수 없다면, 천차만별의 개성을 지닌 감독들에게 저마다 다른 무게와 색깔을 가진
코믹스 세계 속 캐릭터들을 풀어놓고는 창작자 원하는 대로 빚어내도록 자율권을 부여하는 것이죠.
마치 DC 코믹스라는 공통된 자원을 가지고 여러 버전으로 펼쳐지는 콘텐츠의 평행 우주처럼 말입니다.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는 이러한 DC 유니버스의 자유 방임주의적 전략(?)이 내놓을 수 있는 이상적인 결과물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일관된 가치관으로 하나의 거대한 세계를 끌고 가지 않고, 무한대로 확장될 수 있는 세계의 한 단면을 마음껏 요리한 뒤에
'여기는 또 여기대로 이런 무질서의 질서 같은 맛이 있다'고 자랑스럽게 대접하는 배짱이 있는 영화입니다.
+ 전체 분량을 아이맥스 카메라로 촬영했기 때문에, 아이맥스 포맷과 일반 포맷의 화면비(상하 시야각)가 처음부터 끝까지 다릅니다.
화질, 밝기와 사운드의 중량감은 물론 시야의 차이로 인한 정보량의 차이도 있기 때문에 아이맥스 관람을 권장합니다.
추천인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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