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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큐에게 물어라 (2013) 순정만화

BillEvans
1996 1 4

 

 

꽃미남 리큐가 나오고, 이루지 못한 첫사랑에 평생 가슴 앓는 리큐가 나온다.

그리고 그런 리큐를 바라보며 상실감을 느끼는 리큐의 아내는, 남편에 대한 존경심과 남편에 대한 서러움 사이에서 괴로워한다. 주인공만 리큐이지, 그냥 티브이 소프오페라다. 

티브이 소프오페라가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이 영화의 주제가 일본 다도의 시조라고 일컬어지고 일본 미학의 시초라고 말하여지는 리큐이기 때문에 문제인 것이다. 

 

 

 

그 자신이 꽃꽂이 명인이자 테시가하라 히로시 감독의 리큐와 비교해 보면 그 문제점이 명확해진다. 

리큐의 움직임, 리큐의 시선과 동작, 리큐의 내면, 리큐의 다실 풍경과 배치 등이 세밀히 재현되어 있는 히로시 감독의 리큐와 비교해 보면, 이 영화는 순정만화 풍의 공허한 리큐를 보여준다. 

리큐가 준 차를 마시고 아내는 "어릴 적 소녀시절로 돌아간 듯 가슴이 뛰었어요" 하고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어릴 적 어머니 무릎을 베고 누운 듯 평화로웠다"하고 눈물을 흘린다. 이 영화에서 그리는 리큐의 다도는, 일본만화에 등장하는 초밥 한 개 먹고 삼라만상 진리를 깨닫는 수준에 가까운 것 같다.  

 

당시 굉장히 복잡한 정치상황들로 말미암아 일어났던 일을 역사 왜곡 수준으로 쳐내고 단순한 주제를 우격다짐으로 밀어넣는 문제도 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리큐 간 갈등도 아주 단순하게 묘사되어 있는데, 한 마디로 말하면, 리큐가 일본에서 너무나 존경받았기 때문에, 자기를 갈아치우고 지도자가 될까 봐 죽였다는 것이다. 다도인이었던 리큐가 히데요시를 위협할 정도로 정치적 영향력이 컸다는 것도 잘 이해가 가지 않거니와,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리큐 둘 간 갈등이 히데요시의 열등감 하나로 요약될 수 있는 것이었을까?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리큐 간 미학적 갈등에서 파국으로 치닫는 히로시 감독 영화에 비해 이 영화는 리큐 찬가 일방도로 치닫는다. 

 

그렇다면 이 영화의 이 큰 공백을 채우는 것은 무엇인가? 촉촉히 젖은 우수에 찬 미남 리큐와 그가 못잊는 첫사랑 클라라 간 가슴 시린 사랑 이야기다. 이 영화의 공백을 채우는 것은 순정만화다. 

조선에서 온 양반가 처녀 클라라 (눈웃음만 치지 연기를 전혀 못한다)가 다도를 전수해주었다길래 "오, 리큐에 대해 뭔가 새로운 이야기가 나오려나?"하고 기대했는데, 그냥 난봉꾼으로 살던 바람둥이 리큐가 클라라를 만나 아름다움에 대한 가슴 시린 열망을 갖게 되었다는 이야기였다. 조선의 다도를 배웠다는 것이 아니라, 조선 처녀를 통해서 아름다움에 대한 추구에 눈을 뜨게되었다는 것이다.  이야기의 중요성에 비해 이 에피소드에 대한 시간 배분은 아주 작아서, 차갑게 자기를 지켜나가던 클라라가 눈 한번 깜빡 하니 리큐에게 마음이 가고 다시 눈 한번 깜빡 하니 같이 도망가고 뭐 이런 식이다. 

죽는 마당에서 리큐가 "나도 당신에게 갑니다"하고 중얼거릴 정도로 리큐에게 중요한 여자가 클라라라면, 이런 식으로 처리했어야 했을까? 

 

이 영화에서 아주 중요한 순간은 있었다. 

리큐는 클라라와 도망갔다가 붙잡힐 위기에 처한다. 클라라는 바로 다음날이면 기녀로 팔려간다. 양반가 처녀인 클라라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리큐는 독약을 주며 같이 죽자고 한다. 클라라는 서슴없이 독약을 마시고 죽는다. 고통 없이 그냥 배 한번 옴켜쥐고 엎드리는 클라라의 현실감 없는 연기는 관객들의 몰입감을 떨어뜨린다. ("어 방금 뭐 했어?"라는 생각이 든다.)

리큐는 클라라가 죽은 다음, 자기도 독약을 마시려다가 차마 마시지 못하고 오두막을 나온다. 도대체 왜 못 죽었을까? 이게 이 영화 주제다. 죽는 게 무서워서? 영화 속 리큐는 그럴 사람이 아니다. 

내 생각은 이렇다. 

애초에 탐미주의자였던 리큐는 클라라가 죽는 것을 보며 그 안에서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힌트를 얻었을 지 모른다. 리큐는 이런 깨달음을 차마 이대로 묻히게 할 수 없었다. 그는 클라라에게 한 약속보다 자기의 탐미주의와 아름다움에의 추구를 택한다. 

그리고 죽은 클라라의 시체를 그냥 놔두는 것도 모자라 그 시체에서 손가락 하나를 끊는다. 메피스토펠레스에게 영혼을 판 파우스트의 행위에 대응되는 

비인간적인 것이다. 그는 클라라의 죽음을 보면서 자기 자신 안의 심연을 깨달았던 것이다. 

하지만 이런 중요한 순간을 그냥 성의없이 휙 지나간다. 

 

리큐에 대한 촉촉하고 감성적인 서정시적인 영화가 가능할까 생각된다면 볼 정도 영화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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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golgo
    gol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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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라?.. 갑자기 서양 이름이 튀어나와서 뭐지 했네요.^^ 얼마나 황당한지 보고 싶어집니다.
21:26
21.08.06.
profile image 2등

이거 원작 소설은 엄청 담백하고 좋았습니다.박하사탕식 구조의 소설이죠.

그래서 영화도 보고 싶긴 했는데,클라라가 첫사랑으로 나온다고 하는

부분부터 뭐지 했네요.

21:59
21.08.06.
BillEvans 작성자
모베쌍
그것은 영화에서도 느껴지더군요. 그런데 웬지 자기가 잘 모르는 것을 주제로 만든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22:29
21.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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