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의 낙인 (1967)
살인의 낙인을 벼르다 보았다. 이 영화는 줄거리를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별 의미 없을 정도로 나레이션이 파괴되어 있다. 주인공이 이리 갔다가 갑자기 저기에서 나오고, 막 무슨 일을 하다가 갑자기 다음 장면에서 여자를 만나고 있다. 세이준 감독의 치밀한 계산에서 이런 장면 전환이 있었던 것 같지는 않고 그냥 즉흥성의 결과랄까.
김기영 감독의 영화를 많이 연상시킨다. 이 영화에서 나비 학자인 미사코는 충녀의 주인공을 연상시킨다. 범죄영화에서 갑자기 나비 표본이 가득한 방으로 들어간다던가, 킬러가 바닥에 쌓인 나비 시체들을 움켜쥐고 허공으로 던지는 장면이라든가, 주인공의 얼굴이 크게 클로즈업되고 그 위를 거대한 나비들이 날아다닌다든가 하는 장면들은 충녀를 연상시킨다. 아마 일본어를 우리나라 말로 번역한다면 "...했다"같은 김기영 식 딱딱한 어투가 나올 지 모른다.
줄거리는 대충 넘버3 킬러 하나다가 이런 사건도 맡았다가 저런 사건도 맡았다가 하면서 아내도 두들겨 패고 두들겨 맞고 나비학자 미사코도 만나고 넘버 1 킬러와 대결을 하다가 모두 죽는다 하는 내용이다. 이야기가 산으로 갔다가 들로 갔다가 바다로 갔다가 종횡무진한다.
줄거리를 개연성 있게 전개하려는 생각도 없고, 아귀가 맞게 에피소드들을 조합하려는 생각도 없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영화를 만들었는지 궁금해진다.
여류나비학자 미사코는 신비의 여인이었다가 나비학자였다가 하나다에게 살인청부를 맡기는 의뢰인이었다가 하나다를 죽이려 하는 킬러였다가 조직에게 잡혀가 하나다의 구원을 기다리는 가련한 여인이 되었다가 사실은 킬러 넘버원이었다는 설정이다. 뭔가 종잡을 수 없이 횡설수설하는 캐릭터처럼 보이는가? 영화가 그렇기 때문이다.
김기영 감독 식의, 기괴하면서도 사실은 그 안에 차가운 인간에 대한 통찰력이 숨어있고, 비약적이고 말이 안되는 듯하면서도 그안에 사실은 놀라운 상상력이 숨어있는 그런 영화도 아니다. 잘 모르겠다.
이 장면은 웃겼다. 비 오는데 오픈카 타기. 비 오는데 오픈카 타고 지나가는 여자 차를 탄 하나다. 둘은 차 안에서 비를 맞으며 서로 뜬금없는 대화를 한다.
겉멋 부리는 대사다. 의미 없는 공허한 대사. 이것도 감독이 의도한 것인가?
같은 업종 (?)에서 일하는 아내와 갈등을 겪다가 아내도 쏘아죽이는 하나다는 별로 신경도 안쓴다.
그는 전설적인 넘버 1 킬러와 대결한다. 그는 잠을 자도 눈을 뜨고 자고, 앉은 채로 옷 속에다가 용변을 본다. 깔깔 웃는 하나다에게
"아니, 넌 그럼 이렇게 하지 않는단 말이야? 아직 훈련이 부족하군." 하고 정색을 하는 넘버 원 킬러.
하나다는 스트레스에 수면 부족으로 싸우기도 전에 넘버 원 킬러에게 압도된다. 하나다는 넘버 원 킬러가 주는 위압감을 극복해야 한다.
그리고 결국은 다 죽는다. 이 영화 마지막 장면은 오슨 웰즈의 걸작 상하이에서 온 여인을 많이 연상시킨다.
이 영화가 범죄영화의 기존문법을 비꼬고 전복시킨 데 가치가 있다고 하는데, 별로 동의하지 않는다.
전복시킨 데 그치지 않고 새로운 문법이나 스타일을 제시해야 하지 않을까? 전복시키는 그 자체에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전복과 반항을 에너지로 하여 새로운 힘찬 스타일이나 주제를 창조해야 하는 것 아닐까? 살인의 낙인에서 그런 요소를 볼 수 없었음은 안타깝다.
추천인 7
댓글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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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슨하게 ㅎㅎ
기괴하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