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가디슈' 간단 리뷰
1. 학교 앞 문방구에서 종이컵에 담긴 떡볶이나 사먹던 어린 시절의 세상을 온전히 인식하진 못하지만, 지금까지 체감하는 부조리와 비합리의 잔재를 경험할 때, 90년대도 충분히 부조리하고 합리적이지 못했을 거라 생각한다. 일 때문에 공무원과 통화를 할 일이 종종 있다. 담당자가 정확히 명시된 상태라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관련 부서만 짐작해서 전화한다면 최소 3바퀴는 전화가 돌 각오를 해야 한다(가끔은 담당자가 명시돼있어도 전화가 돌 때가 있다). 나는 지금도 살면서 공무원만큼 답답하게 일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전화가 뺑뺑이 도는 이유를 모르는 것은 아니다. 공무원은 책임에 민감한 직업이다. 세상 그 어느 직업보다 눈치봐야 하는 사람(직장상사, 민원인, 언론인, 의회)이 많고 작은 잘못으로도 크게 책임을 져야 한다. 무엇보다 그들의 실수로 금전적 손해가 발생한다면 이는 '회사돈'이 아닌 '세금'에서 일어난 손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무원에 세금을 엄한 데 쓴다"라고 느낄 때도 가끔 있다.
2. 류승완 감독의 영화 '모가디슈'의 첫 장면은 답답하게 일하는 공무원들을 보여준다. 유엔 가입을 위한 로비활동의 일환으로 소말리아 대학 장학생들의 지원활동을 하고 정문 앞에서 사진을 찍는다. 이 전형적인 대외홍보활동을 위해서는 현수막과 양국의 국기가 필요하다. "교류의 본질이 중요하지 보여주기가 뭐가 중요하냐?"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공무원들은 '보여주기'에 진심이다. 이들이 보여주기에 진심인 것은 강 참사관(조인성)이 소말리아에 도착하고부터 시작된다. 강 참사관의 손에는 두품한 가방이 들려져 있고 여기에는 '외교 행낭'이라고 적혀있다. 중요한 물건이 든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소말리아 대통령에게 줄 선물이다. 대단한 것도 아닌 자잘한 기념품과 영지버섯, 술(심지어 술이 금지된 나라), 88서울올림픽 개막식 비디오테이프다. 선물을 확인한 한 대사(김윤석)는 "개별포장이라도 좀 해오지"라며 타박한다. 선물도 보여지는 게 중요하다는 소리다(맞는 말이긴 하다).
3. '모가디슈'는 전반부 대부분을 한국 대사관의 '보여주기식 외교'에 할해한다. 이는 소말리아에서 오랫동안 기반을 닦은 북한 대사관의 외교방식과 비교당한다. 북한 대사관의 태 참사관(구교환)은 현지인들을 활용해 방해공작을 펼친다. 반면 강 참사관은 여론전을 활용해 북한을 압박하려고 한다. 한국과 북한은 외교 방식과 사정, 모든 것이 다르다. 그렇게 비교당하던 외교전은 소말리아에 내전히 발발하면서 변하게 된다. 각 대사관은 반군세력의 타깃이 되고 약탈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게 된다. 강 참사관은 모가디슈 경찰에 찾아가 '보여주기식 압박'으로 대사관 경호병력을 얻어낸다(달러도 좀 쥐어줬다). 그러나 경호병력을 얻어내지 못한 북한 대사관은 반군세력의 공격을 받았다. 이런 장면이 '보여주기식 외교의 승리'를 표현하진 않는다. 오히려 보여주기식 외교의 한계가 여실히 드러나게 된다. 결국 한국 대사관도 북한 대사관과 마찬가지로 아무것도 지켜내지 못한 채 대사관을 버려야 하는 처지에 놓인다. "이탈리아 대사관도 마찬가지 아니냐?"라고 반문할 수 있다. 그러나 협상할 위치에 있고 자체 방호병력이 주둔하고 있는 이탈리아와는 위치과 확연히 다르다.
4. 한국 대사관이 소말리아에서 로비와 보여주기식 외교를 펼친 것은 유엔 가입을 위한 찬성표를 확보하기 위해서다. 전쟁 직후 빠르게 경제를 회복하고 올림픽을 열었던 한국에게 유엔 가입은 더 나은 나라로 도약할 수 있는 기회다. 결국 1991년 9월 17일 남과 북은 유엔에 동시 가입이라는 성과를 얻어낸다. 그러나 영화는 이에 대해 전혀 설명해주지 않는다. 영화는 유엔 가입 그 자체를 하나의 허상으로 보고 있다. 대신 한 대사와 림 대사(허준호), 그리고 대사관 사람들이 바라보는 차창 밖 풍경은 불 타버린 시체와 총을 든 아이들이다. 냉전 시대에 남한 사람과 북한 사람이 그 풍경을 바라보는 장면은 마치 "조금만 잘못돼도 한반도에서 펼쳐질 수 있는 풍경"이라고 경고하는 것과 같다. 소말리아 내전은 남한과 북한 사람에게는 '2차 한국전쟁 가상체험'과 같다. 이는 류승완 감독식의 '섬뜩한 경고'다.
5. '모가디슈'는 남북 관계에 대해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지 않는다. 남북 유엔 동시가입의 성과를 거두기까지는 영화 속 등장인물들의 노력도 분명 있었지만 거기에 대해 영화는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 심지어 이 영화의 배경에서 2년이 지난 후, 영화 '공작'의 배경이 된 흑금성 사건이 일어난다. 북한의 핵 개발을 중심으로 남북의 위기가 고조되던 시기였다. 그러나 4년이 더 지난 1997년에는 이효리와 북한 조명애가 마주보며 웃는 '애니콜 광고'가 등장한다. 최근에도 북한은 개성공단의 남북연락사무소를 폭파시켰지만 이후 2021년 7월 27일, 남북은 군 통신선을 복원했다. 남과 북의 관계는 전쟁 직후 늘 냉탕과 온탕을 오갔다. 반대방향으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한 대사와 임 대사의 심각한 표정은 여전히 남북이 냉탕과 온탕을 오갈 것이라고 말한다. 오랫동안 남북은 갈등하다가 화해할 것이다. 영화는 남북의 갈등이 깊어진다면 폐허 속에서 총을 든 소말리아 아이들을 떠올리라고 말한다. 전쟁은 언제라도 한반도를 소말리아처럼 만들 수 있다.
6. 결론: 비슷한 장르의 할리우드 영화 클리셰에 충실하지만 그것과는 다른 재미를 준다. 류승완 감독 방식의 레트로한 촬영과 한반도의 사정을 반영한 이야기는 이것이 한국영화라는 인장을 남긴다. 충분히 잘 만들었고 재미있으며 개성까지 강한 장르영화다. ...그리고 '모가디슈' 덕분에 공무원의 '보여주기식 외교'도 가끔 써먹을데가 있다는 걸 알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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