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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쬐금 스포] '그린 나이트' 간단 리뷰

수위아저씨
3774 8 5

movie_image (8).jpg

 

1. 본래 회화는 빛과 어둠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빛이 들어오는 곳, 어둠이 드리우는 곳을 파악해야 피사체의 거리감과 입체감을 구현할 수 있다. 또 빛과 어둠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피사체는 활기를 얻을 수도 있고 절망과 고통을 표현할 수 있다. 빛을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따라 어둠이 결정되고 빛과 어둠이 어떻게 구현됐는가에 따라 그림의 감정이 결정된다. 그림이 갖는 추상적인 감정은 관람객의 시선, 그의 감정상태에 따라 구체화된다. 이는 영화에 이르면 더 구체화된다. 영화는 본디 빛과 어둠의 예술이다. 영화는 빛과 어둠으로 표현된 회화를 '어둠'(극장) 속에서 '빛'(영사기)으로 쏴서 표현한다. 영사기가 쏘는 영상을 직접 마주하면 그것은 그저 '빛'이다. 빛과 어둠은 감히 '영화의 근본'이라고 말해도 무방하다. 

 

2. 데이빗 로워리의 영화 '그린 나이트'는 빛과 어둠을 집요하게 탐구한다. 영화는 녹색 기사의 제안을 받은 아서왕의 조카 가웨인(데브 파텔)이 녹색 기사와 약속을 지키기 위해 여정을 떠나는 내용이다. 영화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빛과 어둠의 관계다. 영화에서 빛과 어둠의 대비는 극심하다. 이렇게 대비를 쓰는 경우라면 흑백영화 시절의 하드보일드 느와르 영화나 하드보일드 영화의 정체성을 계승한 SF 느와르 영화 '블레이드 러너'를 떠올릴 수 있다. 극심하게 대비된 빛과 어둠에 위기에 빠진 주인공을 놓아두고 더 외롭게 만드는 게 하드보일드 느와르 영화의 흔한 방식이다. '그린 나이트'는 이보다 더 근원적이다. 마치 이 영화의 진짜 주인공이 빛과 어둠이라고 말해도 무방할 정도로 영화는 빛과 어둠에 진심이다. 

 

3. 빛이 존재하고 그것이 피사체에 가려져 드리워진 그림자가 어둠이다. 즉 빛은 독립적인 존재지만 어둠은 빛에 종속돼있다. 빛과 어둠은 '이론상' 대립하는 관계가 아니다. 그러나 '그린 나이트'에 한해 빛과 어둠은 대립하고 있다. 빛에 드리워진 어둠은 피사체를 시선에서 지워버릴 정도로 힘이 세다. 실제로 영화를 보는 관객들이라면 "영화가 너무 어둡다"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이는 두 가지 의도를 갖는다. 먼저 "중세시대에 무슨 조명이 있다고 밝겠는가. 당연히 어두워야 맞다"는 의견과 "어둠을 뚫고 빛이 내리쬘 때 그것은 대단히 소중하다"는 의견이다. 실제로 영화는 내내 어둠이 드리워져 있어 상당히 어둡다. 때때로 이야기의 전환을 마련하는 것은 다름 아닌 빛이었다. 마치 어둠이 세상의 근원인 '물질'이고 피사체의 존재를 드러내기 위해 빛이 존재했다고 주장하는 것 같다. 

 

4. 이 영화가 빛과 어둠에 대해 진심이었다는 이유는 몇 개의 장면에서 등장한다. 여정을 떠난 가웨인이 성주(조엘 에저튼)의 집에서 머문다. 그와 식사를 하며 대화를 나누던 중 부인(알리시아 비칸데르)이 대화에 끼게 된다. 이들은 "(기사는) 왜 녹색이었을까?"에서 시작해 녹색이 갖는 이유를 설명한다. 녹색은 대자연이기도 하지만 부패를 상징한다(서양에서 녹색은 독극물을 표현할 때 쓰인다). 그리고 빨간색과 대립을 이룬다. '그린 나이트'는 대단히 원색적이다. 녹색 기사 외에도 몇몇 장면에서 원색적인 조명과 색감이 등장한다. 색은 '빛을 흡수하고 반사하는 결과로 나타나는 사물의 밝고 어두움이나 빨강, 파랑, 노랑 따위의 물리적 현상'을 말한다. 즉 영화가 원색을 드러내고 색에 대한 집요한 설명이 이어진다는 것은 빛은 여러 얼굴을 하고 있고 그것은 결코 정의롭거나 숭고하지 않다는 것이다. 실제로 정의는 상대적이다. 넷플릭스 '킹덤'을 예로 들면 가족의 복수를 하는 것은 아신(전지현)의 정의지만 생사초로부터 조선을 지키는 것은 이창(주지훈)과 서비(배두나)의 정의다. 빛이 저마다 다른 색을 갖듯이, 정의·신념도 여러 색을 가지고 있다. 

 

5. 부인은 가웨인의 초상화를 그려주겠다고 한다. 그러나 부인이 그린 것은 카메라의 작동원리를 담은, 카메라다. 조리개를 열어 소량의 빛을 모아서 노출시킨 뒤 그 빛으로 인해 맺힌 상(狀)을 찍어낸다. 무려 아서왕의 시대를 영화화하면서 굳이 카메라가 등장했다. 이 장면은 이 영화가 빛과 어둠에 대해 할 이야기가 있다는 중요한 의지와 같다. 왜 굳이 카메라가 등장했을까? (카메라의 역사는 200년 남짓이다. 그러나 가상인물인 아서왕은 5세기말~6세기초 인물로 설정돼있다). 어둠밖에 없어서 보이지 않는 상태다. 사물을 왜곡하게 만든다. 빛이 있음은 대상을 명확하게 바라보도록 한다. 사진은 영화 전반부에 등장한 가웨인의 초상화보다 그를 더 정확하게 담아냈다. 이는 왜곡되지 않은 가웨인의 민낯과 같다. 그리고 민낯이 드러난 사진 앞에서 가웨인은 자신의 비겁함과 두려움으로 인해 찾아온 결과에 초조해하고 있다. 

 

6. 빛은 파장에 따라 다른 색을 갖는다. 그러면서 빛은 피사체의 왜곡되지 않은 모습을 보여준다. 정의와 신념이 제각각이기에 인류는 충돌했다. 그 충돌로 많은 사람이 죽었지만 인류는 발전을 이뤘다. 그리고 여전히 인류는 여러가지 색을 띈 시대에 살고 있다. 어릴적 봤던 과학실의 인체해부도 인형이나 세계지도를 떠올려보자. 세계의 나라들은 여러 색으로 표현돼있고 인체해부도의 혈관이나 장기도 원색을 띄고 있다. 인체, 지구에는 여러가지 색이 존재하며 그 색의 충돌로 성장해왔다. 어둠은 색이 없다. 다시 말해 성질도 없다. 태초의 세계는 성질이 없는 세계였으며 여기에 빛이라는 성질이 들어와 다양한 것들을 보여줬고 그들이 경쟁하도록 했다. 빛이 있고 그 그림자로 어둠이 드리워졌다는 주장은 합리적이다. 그러나 '그린 나이트'가 전하는 '어둠 속에서 빛이 등장하고 그로 인해 세계가 탄생했다'는 주장이 더 철학적이다. 후자에 좀 더 설득이 된다. 당장 '인사이드 아웃'이 보여주는 머릿 속의 우주를 떠올려보자. 

 

7. 그렇다면 대체 빛과 어둠에 대한 이 이야기는 '그린 나이트'의 이야기와 무슨 상관이 있을까? 이 영화는 그저 녹색기사와 게임을 한 아서왕의 조카가 약속을 지키러 여정을 떠나는 이야기다. 아서왕의 조카 가웨인은 여행 중 몇 명의 사람, 혹은 존재를 만난다. 그들과의 사건은 가웨인을 고난 속으로 몰아넣기도 하고 깨달음을 주기도 한다. 이때도 여전히 어둠이 제멋대로 화면을 집어삼키고 빛(색)으로 실체와 감정을 보여준다. 여정은 살고자 하는 욕망을 내려놓는 한 인간의 단호함으로 끝난다. 실재하는 것을 바라보며 누리는 삶에 대한 욕망은 얼마나 무모한가. 실재하는 감정을 쫓다가 실재하는지 모르는 것을 쫓는다. 그러다 보여지는 것들에 휘말리고 속는다. 불타버린 왕의 머리와 가웨인의 선택은 빛을 쫓는 자의 무거운 짐과 그것을 내려놓고 어둠으로 향하는 것을 보여준다. '그린 나이트'는 빛에서 어둠으로 향하는 여정이다. 이것이 영화에서 어둠 가운데 빛이 등장하는 이유다. 

 

8. 때문에 '그린 나이트'는 대단히 어둡다. 다른 게 어둡다는 게 아니라 화면이 어둡다. 끝내주는 미장센이 영화를 사로잡지만 많은 장면에서 피사체가 제대로 보이지도 않을 정도의 심각한 어둠이 등장하면서 관객은 당황할 수 있다. 이는 영화를 못 만들었거나 돈이 없어서 생긴 어둠과는 다르다. 이는 감독의 의지가 반영된 어둠으로 마치 어둠 그 자체를 탐미하게 만든다. 관객이 결코 편하게 볼 영화는 아니다. 빛과 어둠으로 빚어낸 예술적인 장면들은 눈을 사로잡지만 결국 이는 어둠에서 새어나온 빛으로 빚은 것이다. 어둡다는 얘기다. 관객이 영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어둠 그 자체에 익숙해지고 어둠을 이해해야 한다. 너무 우려할 필요는 없다. '그린 나이트'의 어둠은 다른 영화와는 다르게 관객이 빠져들도록 하는 어둠이다. 

 

9. 결론: 영화는 만들어지고 관객에게 전달되는 그 모든 과정에서 빛과 어둠이 함께 한다. 고전영화의 시대에서는 빛과 어둠을 잘 부리는 자가 훌륭한 영화감독이다. 데이빗 로워리는 영화가 빛과 어둠의 예술이던 근본으로 향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 이야기를 통해 빛과 어둠이 세상을 창조하게 한 과정까지 탐구하고 있다. '그린 나이트'는 근래 만들어진 어떤 영화보다 더 영화적이다. 

 


추신) 이런 사람이 대체 어떻게 디즈니에서 영화('피터와 드래곤')를 만든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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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 image 1등
추신2) 왜 하나 더 만들러 가시지?(피터팬 실사판 내정되셨죠)
02:29
21.07.31.
3등
피터와 드래곤 보는거 진짜 고역이었는데 다르다면 다행입니다
04:47
21.07.31.
agarwood
삭제된 댓글입니다.
09:04
21.07.31.
profile image
그 바늘구멍 카메라로 영화를 다시 생각해보니 난해했던 영화의 윤곽이 좀 더 드러나는 거 같네요. 좋은 리뷰 잘 봤습니다.^^
09:06
21.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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