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가디슈 (약스포) 한국형 블록버스터는 맨날 이해해줘야하나
살면서 한 번쯤 해외 NGO에 후원 한 적이 있다면 그 영향은 아프리카였을 확률이 꽤 높습니다. 유명한 사진도 있고, 김혜자 선생님의 모 NGO 활동도 있지요. 세상 불행한 사건은 다 아프리카에 몰리는 것처럼 보이는데 그런 아프리카에서도 소말리아의 비극은 쉽게 설명할 수 없는 길고 지난한 독립운동과 내전 속에서 나온 결과이고 요새같이 서방에서 총부리를 겨누면 바로 눈에 보이는 총알받이로 희생될 과녁에 카메라를 비추는 세상에선 방아쇠 당길 힘만 있으면 어린아이에게도 총을 집어 주는 이 아프리카 최빈국을 구원하러 갈 서방국가는 없습니다.
(당시 사진은 영화랑 관계가 없고 너무 끔찍해서 게재하지 않았습니다.)
프랑스 식민지였던 만큼 비슷한 프랑스 식민지였던 모로코에서 촬영된 이 영화의 아름다운 풍경이 나오는 부분들은 실제로 소말리아에도 비슷한 풍경이 있던 시절이 있다고 하니 안타까움이 더해져 갑니다. 우리도 결국 엑소더스 무비를 찍기 위해 소말리아를 선택했 듯 미국도 이 나라에 관심을 가지지 말라는 듯 <블랙 호크 다운>과 <캡틴 필립스>같은 영화를 찍어내고, 우리나라도 2011년 소말리아 해적으로부터 나포된 화물선을 구출하는 ‘아덴만의 여명 작전’으로 소말리아에 대해 거의 적국수준의 반감을 가지게 됩니다. 잘 기억이 나지 않으시면 작전 중 해적으로부터 총상을 입은 석해균 선장을 아주대 이국종 교수가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이야기가 있던 그 사건입니다.
(<캡틴 필립스>는 폴 그린그래스, 톰 행크스 주연으로 상당히 수작입니다. 아덴만 여명작전이 영화화될 시 비교가 많이 될 예정이라 아마 상대성 때문에 제작되기 힘들 겁니다.)
관객이 맨날 이해해줘야 하는 한국형 블록버스터
이 영화의 전체 구조는 <아르고>랑 너무 비슷합니다. 하지만 <아르고>는 탈출 방법이 너무 기발해서 그걸 흉내 낸다는 건 말이 안 되기 때문에 대신에 드라마를 강조하기 위해 또다시 역사 각색을 시도하고 사실은 꽤나 감수를 많이 한 듯이 무난하게 드라마를 만들어냅니다. 근데 뭔가에 논란거리가 될 여지가 될걸 만들려고 하지 않았는지 남한과 북한이 붙는 모든 순간이 다 작위적입니다. 신중히 접근하다 보니까 되려 대사들이나 상황이 이상한데 그걸 명배우들의 캐스팅으로 때웁니다. 워낙 연기 잘하는 배우들이니까 연기력으로 설득시키는데 한두 번 볼 때야 관객들은 영화에 빠져들어 보니까 모를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 후진 상황과 대사들을 별 대안 없으면 가만있자는 영화 속 대사처럼 그냥 실행에 옮기고 맙니다. 완전 로케로 이뤄진 듯한 야외 신들은 테이크를 많이 가지고 가지 못했는지 가끔 이상한 연기도 보이고요. 실내씬의 상대적으로 장소 영향을 덜 받았을 텐데도 뭔가 어수선해요. 맨날 한국 영화가 이 정도 찍어낸 게 대단하다며 이해해줘가면서 영화 봐야 하는 게 조금 피곤해지네요. 저는 텐트폴 영화들은 피곤하지 않게 즐기려고 보는 건데 한국 텐트폴은 자꾸 뭘 이해해줘가면서 봐야 하니까 피곤이 밀려오는 거 같아요.
그렇다고 완전히 못 만든 영화는 아닙니다. 각색이 잘 못됐든 현장에서 수정이 많이 된 것이던 지간에 삐걱 된 건 중간 과정인듯하고 전체적인 구조는 요새 한국 영화에서 보기 드물게 잘 짜여있습니다. 감정을 쌓아가는 과정 속에서 결국 그 감정을 폭발시키지 않은 세련된 전개는 곧 이들이 터뜨리지 못한 감정의 파도를 온전히 몰입해서 보고 있던 관객이 받아들여 관람자인 나를 슬프게 만듭니다. 영화 속 인물들이 터뜨리지 못한 감정을 온전히 가슴속에 품고 극장에서 나오는 건 한국 영화에선 무척 오랜만에 느끼는 감정이었습니다.
연기가 9할
이런 공은 다 배우들이 차지해야 해요. 군데군데 이상한 연기들을 하기도 한 거 보면 온전히 몰입해서 연기할 수 없었던 열악함이 느끼지는 데 그 와중에서도 캐릭터의 전체적인 경로는 잘 지켜나갔고 설득력 없는 각본을 깜쪽같이 말이 되게 만들어줬으니까요. 연기 이야기만 하게 되는데 그래도 현명한 건 몇몇 현지 배우는 본인이 연기를 잘해줬지만 몇몇은 항상 로케 영화의 문제인 발연기가 보이는데도 그런 부분들은 확실히 분량을 줄여내서 덜 루스하게 만듭니다. 그래도 현지 배우가 워낙 많이 나오기 때문에 완전히 그걸 막진 못했지만요. 소말리아의 참상을 보여주기 위해 아역 연기자도 많이 캐스팅해서 그걸 보여주는 부분들이 꽤 많은데 제가 말하는 작위적인 연출이 그런 부분들이 큽니다. 실제 배경을 찍는 게 아닌 이상 다 연기자들이 연기하는 건데 그걸 계속 보여줘버리면 그 사람들이 연기하는 티가 자꾸 보이고 흐름적으로도 부자연스럽기 때문에 영화 템포까지 죽여서 관람자를 지겹게 만들어버려요. 반면 소년병이라고 부르기에도 너무 어린아이들과 길거리에서 굶어 죽어가는 참상을 처음 영상으로 접하는 분들은 감정적 동요가 있을 겁니다. 사실 이들의 해적 질도 생계형 해적질이고 ‘아데만의 여명 작전’때 우리나라에 송환되어 감옥에 갇힌 이중엔 차라리 우리 가족과 같이 갇혀있고 싶다고 말할 정도로 세끼 밥을 먹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할 정도의 빈국입니다.
류승완의 차기작을 기대...
근데 이 영화 추천하기가 애매합니다. 데이트 용도 아니고 실제 사건을 완전 각색해버렸기 때문에 역사영화도 아니고, 정치물도 아니고, 액션물이라고 하기엔 액션이 턱도 없고요. 일종의 재난 영화로 보면 되는데 그걸로 치부하기엔 또 장르적으로 너무 약해요. 저는 류 감독이 다시 예전처럼 가벼운 영화들을 찍어줬으면 좋겠는데 그러기엔 이미 류승완 감독이 대작 영화를 많이 만들어버려서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있을지 알 수가 없네요. 부디 차기작은 메시지에 집중하지 않은 온전히 재미에만 집중하는 새 영화를 찍어주셨으면 좋겠네요.
추천인 14
댓글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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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조인성의 너무 오버스런 연기는 적응이 안되었습니다.
공감하는 댓글입니다.
저도 류승완 감독의 B급 감성이 묻어나는 액션 영화들이 그리워요. 이제는 제작사 대표이자 국내에서 대규모 영화를 주로 맡다보니 이전같은 영화는 어렵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어요.🥲
아르고와 캡틴 필립스는 내내 손을 꽉 쥐게할 정도로 심리적 완급과 뛰어난 오락성을 겸비한 수작인데, 모가디슈는 투박한 완성도가 아쉬워서 그런지 이글 무척 공감갑니다. 과도한 버스트샷과 클로즈업에 핸드헬드로 몰입감이 방해되고 현지촬영이라 어려운 점을 감안해도 촬영과 편집이 류승완 감독 이전 작품에 비해서 많이 아쉽더군요. 소재는 정말 최고인데, 올해 최고의 흥행작, 또는 올여름 최고 흥행작이 될꺼란 세간의 기대감에 못미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