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둘] 1 더하기 1은 그렇게 '0'(영)이 되었다.
딱히 흥미가 가는 소재가 아니라서 원래 패스할 생각이었던 영화였습니다. 그런데 평론가 평도 좋고 영어판으로 리메이크한다는 소식을 들으니 흥미가 가더군요.
문화의 날 혜택도 있겠다 오늘 보고 왔는데 은근 여운이 많이 남네요. 뭐 내용은 노년 한쌍의 퀴어 드라마라 할 수 있겠지만 형식 면에서 뻔한 방식을 답습하지 않는 달까요.
초반부는 마도의 입장에서 진행되다가 어떤 사건 이후로는 애인 니나의 시각으로 바뀌는 지점이 흥미로웠고, 살짝 서스펜스 느낌도 가미되어 있어서 처지지 않게 볼 수 있었습니다.
20년 가까이 서로 사귄 사이지만 영화는 오롯이 현재진행중인 사랑의 광경만 비춥니다. 굳이 과거를 보여주지 않더라도 지금 서로를 바라보고 있는 표정만 봐도 분명 그들의 젊은 세계는 찬란한 사랑으로 가득차 있었던 걸 짐작할 수 있게 해줍니다.
어린 소녀가 없어지는 오프닝과 이후 물속에서 나타나는 환상같은 씬들, 빙고판에서 마도가 가리키는 숫자들 등 지나쳤지만 곱씹어보면 큰 의미를 지닐 것 같은 장치들도 영화를 더 감각적으로 만들어 준 것 같아요.
하나와 하나가 만나 둘이 되진 못했지만 의심가득한 타인들로부터 벗어나 아예 처음부터 없었던 사랑의 형태인 것처럼 '0'(영)이 되고야마는 그들의 모습이 체념이라기보다 용기로 비춰지는 건 왜였을까요.
그래서인지 귀에 익숙한 멜로디인 Betty Curtis의 노래 'Chariot'이 한층 더 이들의 결단을 축복하는 것처럼 들렸습니다.
<캐롤>이후 비슷한 소재의 영화 중 딱히 마음을 이끄는 작품이 없었는데 보고 나니 왜 영어판으로 리메이크하는지 이해가 가네요.
할리우드에서 점찍었을 정도면 신선하고 좋은 작품이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