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리카투] 간략후기
익무의 은혜에 힘입어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 국제영화상 부문 인도 대표로 출품작인 영화 <잘리카투>를 시사회로 보았습니다.
2019년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소개되기도 했던 이 영화는 전대미문의 에너지를 지닌 영화로 입소문이 난 바 있는데요,
과연 실제로 영화는 뭐라고 설명할 수 없는, 그러나 압도적이라고는 장담할 수 있는 에너지로 돌진하는 영화였습니다.
'푸줏간에서 탈주한 물소를 쫓는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매우 단순한 스토리라인으로부터 통제 불능의 가속도를 붙여가는 영화는,
걷잡을 수 없이 들불처럼 솟구치는 사람들의 광기를 일일이 이해하려 들지 말고 그저 느끼라고 하는 것만 같았습니다.
하긴 이해할 수 있다면 그것을 광기라고 할 수도 없겠죠. 그 소용돌이에 주체할 수 없이 빠져드는 경험을 하게 되는 영화였습니다.
인도라고 모든 곳에서 다 소를 신성시하진 않습니다. <잘리카투>의 배경은 소를 엄연히 식량으로 쓰는 인도의 어느 마을입니다.
허름한 푸줏간에서 물소를 도축한 후 고기를 만들어 내다 팜으로써 마을 사람들의 생계와 대소사가 굴러갑니다.
어느날 도축당하려던 소가 푸줏간을 뛰쳐나가는 일이 발생하고, 마을은 소란에 빠집니다.
고기를 해 먹고 살아야 하니까, 농작물을 망쳐놨으니까, 놔두었다가는 마을이 위험에 빠지니까
마을 남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물소를 쫓지만, 본래의 목적에 저마다의 욕망과 야심과 꿍꿍이가 뒤엉키기 시작합니다.
산비탈을 굴러가며 불어나는 눈덩이처럼, 물소 추격은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점점 더 큰 혼돈을 뿜어내며 흘러갑니다.
'탈주한 물소를 사람들이 쫓는다'는 매우 단출한 이야기는 그 안에 이루 말할 수 없이 거대한 에너지를 품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잘리카투>에는 인도 영화 하면 흔히 떠오르는 노래와 춤, 음악이 없습니다만 그럼에도 영화는 시종일관 리드미컬합니다.
인위적으로 짜여진 리듬과 비트의 장으로 인물들을 안내하는 것이 아니라, 영화 속 세계 구석구석에 리듬과 비트가 박혀 있는 듯
영화는 시작부터 마을 사람들의 반복되는 일상과 그 순간들을 채우는 소리들의 결합으로 리듬을 만들어 냅니다.
숏에서 숏으로의 박자감 또렷한 편집, 음향 효과인지 음악인지 구분이 무의미해지는 사운드,
특히 낯설게 들리는 인도의 말라얄람어 억양과 어휘까지 맥박처럼 박동하며 영화를 서서히 펌프질해 갑니다.
탈주한 물소가 불시에 이곳저곳에서 나타나며 마을 사람들을 혼비백산하게 만드는 가운데,
중간중간 이 소란에 끼어드는 개별 인물들의 서사가 등장하는데 좀 난데없다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런 중구난방식 서사는 어떤 일관된 질서가 잡힌 내러티브를 보여줄 생각은 없다는 의도로 보이기도 합니다.
물질이든 명예든 마음이든 저마다 다른 목적을 띤 욕망들이 뒤엉켜 물소보다 더 요란하게 거칠 것 없이 질주할 따름입니다.
짐승보다도 노골적이고 야만적인 욕망을 품은 인간군상들이 곳곳에서 파열음을 내는 영화 초중반부는 블랙코미디처럼 다가옵니다.
공권력을 행사하는 자마저도 안일하고 이기적이어서 사람들이 알아서 자기 안위을 챙기고 자기 욕망에 솔직할 수 밖에 없는 곳에서,
그런 웃지 못할 파열음은 마침내 물소가 도망나온 현장으로 모여들면서 스파크를 내고 종잡을 수 없는 폭주를 일으키기에 이릅니다.
영화는 지금 이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 즐거운지, 위험천만한지, 흥미진진한지 분위기의 경중을 파악하는 것을 보류한 채
이성의 끈을 놓아버린 채 달려드는 인물들의 등에 올라타 그저 넋을 잃고 돌진에 동참하는 것만 같습니다.
리드미컬하지만 상당히 현실감 있게 그려지던 마을에서 주체할 수 없이 쏟아지고 마는 비현실적인 광경은,
도망나와 날뛰는 물소보다도 더욱 격렬하게 이성을 내던지고 날뛰는 인간 내면의 밑바닥을 드러냅니다.
캄캄한 밤, 어두운 숲속에서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공포심과 분노가 만들어내는 통제 불가능한 폭력.
이쯤 되면 저들이 물소를 쫓는 목적이 무엇이었는지 되짚는 건 더 이상 불가능한 것이며 이젠 무의미한 것이기도 합니다.
영화는 배우들이 저걸 맨정신으로 찍을 수 있었을까 싶을 정도의 집요한 연출과 촬영을 통해 그 아수라를 생생하게 재현하고,
관객은 이걸 재밌어 해야 할지 안타까워 해야 할지 무서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한 채 그저 입을 벌리고 빠져들 따름입니다.
도망치는 물소도 나 하나 살자고 도망나왔을 뿐인데 어째서 마을 전체, 나아가 옆 마을까지 온통 다 휩쓸려 나왔는지 의아했을 것입니다.
오직 생존 욕구 하나만으로 필사적으로 탈주하기에 어쩌면 영화 속에서 가장 고결해 보이기까지 하는 물소는,
역으로 온갖 욕망이 뒤엉킨 늪에서 허우적거린 끝에 야만적인 존재로 추락하고 마는 인간의 딜레마를 보여주는 듯도 합니다.
<잘리카투>는 자연을 정복 대상으로 여기며 달려든 끝에 가장 하등한 존재임을 스스로 자처하는 꼴에 처하는 인간들의 재앙을 통해,
갖은 욕구를 자랑처럼 표출하며 의기양양해 하는 인간이 실은 야만의 함정에 가장 취약한 존재일 수 있음을 신명나게 까발립니다.
익무 덕에 좋은 영화 잘 보았습니다.
영화 마니아라면 놓치지 말아야할 작품이네요.
역시나 좋은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