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누가미 일족 (1976)
한동안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던 요코미조 세이시 작가와 그가 창조한 캐릭터 긴다이치 코스케를 당당하게 부활시킨 작품이다.
재계의 천황이라 불리던 이누가미 사헤이가 죽어가면서 뜬금없이 피도 섞이지 않은 양녀 타마요에게 모든것을 물려준다. 사헤이의 세 손자들 그리고 그들의 어머니들은 황당하다. 뭔가 음침하고 폐쇄적이고 잔인해보이는 이누가미 가에는 살벌한 분위기가 감돌기 시작한다.
스플래터무비를 연상시킬 정도로 잔인하고 기괴한 살인사건이 연속적으로 발생한다. 13일의 금요일 프레디가 도끼를 들고 하키마스크를 쓰고 등장해도 좋을 정도다.
마리오 바바의 bay of blood 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누군가가 정상인으로는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잔학하고 기괴한 살인을 저지르고 다닌다.
그는 살인을 저지른 것으로도 모자라 그것을 현란한 방식으로 과시하기까지 한다.
하지만 이 살인범은 본능 때문에 그러고 다니는 것이 아니다. 그는 치밀한 계산 하에 이러는 것이다. 잔학함과 기괴함은 살인범이 쳐놓은 위장이다.
명탐정 긴다이치 코스케는 이것을 꿰뚫어본다.
이 영화는 제인 오스틴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들과도 닮았다. 혼기가 찬 여자들이 등장해서 늘 결혼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상대남자와의 관계가 중요 관심사가 되는 영화 말이다. 제인 오스틴이 그 문제에 유독 관심이 많았다기보다 당시 영국 제도가 그러했다는 것이다. 여자가 재산을 상속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좋은 결혼을 하지 못한다는 것은 대번에 사회 아웃캐스트로 떨어지는 일이었으니까. 걸작 Persuasion (2007) 에서 샐리 호킨스가, 결혼을 못했다는 이유로, 귀족집 고이 자란 딸에서 천덕꾸러기가 되어 친척집들을 전전하며 설움을 겪는 내용이 아예 주제로 등장하기까지 한다. 이 영화 이누가미 가 사람들에서 범인이 연쇄살인을 저지르는 이유도 이것이다.
상속 결혼이 "사회적으로" 그의 모든 것을 결정한다. 그가 연쇄살인을 저지르는 것은 사회적으로 합리적인 행동이다. 여기서 13일의 금요일 프레디는 바로 "봉건적이고 폐쇄적이고 억압적인 일본사회"다. 잠깐, 그런데 Persuasion 의 무대는 19세기 영국 아닌가? 그런데 20세기 일본에서 똑같은 일이 발생했다는 것은, 일본이 얼마나 낙후되고 전근대적이라는 이야기인가? 요코미조 세이시는 이것을 비판한다. 오죽하면 연쇄살인을 저지른 범인이 자기 가족에게 마지막으로 "어서, 여기를 나가라"하고 말하는가?
그 폐쇄적인 가족에서 모든 호화를 누린 사람이 마지막으로 하는 말이 이거다.
그렇다고 해서 경제학에서 말하는 "선의의 독재자"가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사람들의 효용을 극대화하는 선의를 가진 독재자라면 효율적인 자원배분을 달성할 수 있다 하는 경제이론이 이누가미 가 사람들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 마약을 전쟁터에서 싸우는 군인들에게 풀고, 비열한 방법을 써서 재계의 우두머리가 된 이누가미 사헤이는, 죽어가는 와중에서도 자기가 경멸하는 가족들을 파멸시킬 궁리를 한다. 그는 독재자이기는 하되, 선의의 독재자가 아니라 비열하고 악의에 찬 독재자이다. 봉건적이고 폐쇄적인 억압사회와 비열한 독재자의 결합 - 최악이다. 이누가미 가 사람들은 악몽과 지옥에서 산다. 이누가미 사헤이는 그가 죽은 다음에도 비열한 술수로 이 지옥을 연장시킨다. 여기에서 13일의 금요일 프레디가 등장하는 것도 당연하다.
주제가 주제이니만큼 긴다이치 코스케가 선두에 나서지 못한다. 봉건적인 사회가 살인을 저지르고 다니니까. 긴다이치 코스케는 비판적인 관찰자가 되어 이를 기록할 뿐이다. 이 영화에서 긴다이치 코스케는 살인사건을 "해결"한다기보다 그것을 "해석"한다. 영화적 완성도는 단단하지만, 내 생각에 이 영화는 추리물이라기보다 사회물이라고 보아야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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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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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쇠” 와 함께 넘 좋아하는 영화죠
촬영 연출 연기 모두 최고입니다
일본가고 싶었는데
코로나 터졌죠ㅠ
추리물이라기보다 사회물 같은 분위기도 납니다. 연쇄살인만 아니었으면 사회물입니다.
정말 글 잘 읽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