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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해변에서 혼자>

영화초보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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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보. 불교에서 쓰는 말이다. 선악의 행업을 말미암아 삼은 과보를 뜻한다. 이 업보의 주체는 상황마다 다르다. 인간관계에 정답이란 없으니 당연하다. 내가 업보를 돌려받을수도 있고 타인이 누군가에게 줬던 상처를 내가 입힐수도 있다. 불교를 정의하는 또 다른 가치관이 있다. 윤회다. 생명은 계속해서 반복된다. 내가 지금 태어났다고 한 건 언제쯤 죽는다는 걸 의미할 것이다. 또 나는 다른 무언가로 태어날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삶도 좋은일 나쁜일이 끊임없이 반복된다. 지금 하품을 크게 하며 글을 쓰고있는 나도 업보가 돌아가고 있을 것이다. 알게 모르게 누군가에게 크게 준 상처의 댓가를 돌려받고 있는 셈이다. 

 

 이 가정을 계속해서 곱씹다보면 인생이 허무해진다. 공감을 못 받으면 어떡하지. 이겨내도 막상 같은 시련이 덮치면 어떡하지. 시간이 지나면 다 없어지는 일인데. 이러다 내가 받은 상처가 세상의 기준에 끼지 못한게 된다면 참 외롭지 않을까. 이 감정이 내가 단 1마디도 반박할 수 없는 고통이었다면 충분히 이해 할 수 있다. 내가 잘못한거니까 그런거겠지. 바로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총동원해 상대를 모욕할 방법을 고민한다. 그리고 알게된다. 일어날 일이 일어났고, 나 역시 어떤 것에 대한 책임이 있으며 주변인들에게 더 감사해야 한다는걸. 갑자기 나더러 화려하다고 했던 내 스승 중 한명의 얼굴이 떠오른다. 잘 지내고 계신가요. 연락할 일은 없어 마음으로만 그 분의 행복을 기원한다. 나는 내가 성공했던 일들보다 훨씬 더 초라한 사람이다. 내가 생각하지 못한 무언가에 휘둘리는 인간이기도 하고. 

 

 

 

<밤의 해변에서 혼자>는 아무것도 없는 영화다. 영화는 1부와 2부로 나눠진다. 한국의 인기 여배우가 유명 영화감독과 불륜설이 난다. 국내여론은 당연히 난리가 나고 베를린으로 도피한다. 그리고 아는 언니랑 대화를 나눈다. 1부 끝. 2부는 여배우가 한국으로 돌아온다. 불륜이 났던 남자 감독과 만난다. 2부 끝. 이 영화는 줄거리만 단촐한게 아니다. 영화의 화법도 조용하다. 플롯이랄게 없다. 조명도 제대로 안 된것 같고. 인물 갑자기 튀어나오고. 대화도 사실 의미가 없다. 난 왕가위를 좋아한다. 왕가위 영화의 핵심은 때깔이라고 생각한다. 이 영화는 왕가위의 감성과는 전혀 딴판이다. 왕가위는 스트릿룩으로 멋을 뽐낸 사람쯤 된다면 (이 영화에서의) 홍상수는 맨투맨에 슬랙스만 입었는데 신발이 짚신인 사람이다. 난 난해한 옷차림인 그를 이해할 수 없었다. 이 사람이 하고 싶은 말은 뭘까. 이렇게 평범한 일상을 비춰서 과연 뭘 말하고 싶은걸까.

 

없다. 이 사람이 말하고 싶은건 없다. 2021년 오늘 영화를 다시 보고 나서 알았다. 이 사람은 우리에게 하고 싶은 말이 없다. 딱히 우리에게 무슨 말을 걸고 싶은 사람이 아니다. 혼자 밤 해변에서 느끼는 감정들을 공유하고 싶었던거라고 생각한다. 말이 아니라 상황을 보여주려고 했다. 감독은 어떤 감정을 생각하고 이 영화를 쓴걸까? 난 외로움과 후회라고 생각한다. 주인공 영희가 유일한 속마음을 털어놓는 공간은 해변이다. 그녀는 애인을 좀 많이 신경쓴다. 친한 언니에게도 애인 이야기를 한다. 지인들과 술 먹을때도 애인 생각을 한다. 해변에서도 애인의 얼굴을 그린다. 그러다가 해변에서 잔다. 시간이 지나고 한국으로 돌아온다. 한국에 어떻게 돌아왔는지는 묘사되지 않는다. 그냥 그녀는 그러고 만다. 아무 일 없는듯이. 시간이 지나 그녀의 그리움이 어떻게 됐는지는 보여주지 않는다. 2부를 보자. 바다에서 지인들끼리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는게 전부다. 근데 이건 꿈이었다. 영화가 보여주는건 결과적으로 아무것도 없는것 같은데 2부가 끝났다. 영화 안에서 사랑하는 애인을 만났던 건 시간이 지났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근데 아니다. 모든게 꿈이었다. 결국 그녀는 혼자서 길을 걷는다. 영화의 시작은 친구와 함께 대화하는 장면이었는데 끝은 혼자다. 갈등의 해결? 그런것 없다. 주인공의 해피엔딩? 없다. 새드엔딩? 당연히 없다. 아무것도 없다. 이 상황은 우리가 외로움을 느끼는 것과 비슷하다.

 

외로움이란 무엇일까. 이 세상에 나밖에 없는것같은 기분이 외로움이다. 아무도 나를 이해하지 못할거라는 그런 막연함이 외로움이라 생각한다. 영희는 혼자서 소리친다. 나는 사람들에게 상처만 주냐고 주변인들에게 묻는다. 근데 이게 꿈이다. 내가 진짜 나쁜년이라고 고래고래 소리지르는것 마저도 혼자만의 착각으로 끝났다. 그 뿐일까? 영희의 애인인 감독은 여자를 사랑하지 않는다. 본인만 사랑하는 나르시스트다. 결과적으로 비행기 타고 13시간이나 걸리는 베를린에서 남자를 생각했던 것이 헛수고로 돌아가버렸다. 시간이 모든걸 해결할거라 생각했는데 그녀의 그리움은 꿈으로 매몰됐다. 남는게 없는 셈이다. 이게 홍상수가 말하고 싶었던 감정이다. 외로움이다. 우리는 초입 10분만에 이 영화가 결국 이러다가 끝날거란걸 알고있다. 감독이 홍상수니까. 근데도 이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밤 해변을 보는것처럼 멍하니 앉아있다. 어차피 세상에 나를 공감할 수 없는건 나밖에 없단걸 우리 모두 알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외로움엔 이유가 없다. 그냥 이 세상에 혼자라는 생각이 문득 들 때 가장 외로워진다. 그리고 그게 내가 만든 이유때문이란걸 알면 겉잡을수 없이 후회가 커진다. 바닷가에 홀로 누워서 잠을 자고싶다. 그냥 멍하니 시간만 지나면 좋을테니까. 좌절과 외로움을 겪는 사람들, 그러니까 나 포함한 모든 이들이 어려움이 있으면 시간이 해결해줄 것이라 믿는다. 아무것도 없을 땐 진짜 아무것도 하기 싫어진다. 마지막 엔딩신 바로 전까지를 보니 아마 홍상수 감독도 그런 것 같다. 외로우니까. 이 모든게 내가 자초한 일이라고 하더라도 결국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라고 믿나보다.

 

근데 마지막 엔딩신을 보자. 영희는 일어나서 똑바로 걷는다. 이 모든게 꿈이었단걸, 다 의미가 없어서 외로워하고 있단걸 아는데도 앞을 보며 걸어간다. 1부에서 남자 등에 업혀 가던 모습이 아니다. 2부는 혼자서 걷는다. 이제 더 이상 후회하지 않는 것 같다. 난 이 영화의 그녀 모습에게서 무언가가 느껴졌다. 외롭지 않은가보다. 아무도 찾지 않아도 될 정도로 씩씩해졌나보다. 후회는 어차피 우리의 곁에서 영원히 떠나가지 않는다. 결국 모든게 꿈처럼 사라진다. 타인은 나를 이해할 수 없어서 용서를 해주지 않을때가 많다. 이 영화도 마찬가지다. 결국 그녀를 이해하는 사람이 몇명이나 될까. 영희는 이 모든게 허상임을 알고도 이제 누군가의 도움 없이 앞으로만 걷는다. 난 그녀의 모습이 우리의 삶에서 후회가 작동한 후의 방식과도 닮았다고 생각한다. 누군가에게 받은 상처. 나라는 인간이 비호감덩어리라 멀어질 수 밖에 없던 모순적인 순간들. 뭐 그런 순간이 우리의 일생에서 끊임없이 반복되된다. 그리고 그걸 벗어나지 못하면 후회가 된다고 생각한다.  또 막상 그걸 세상이 이해해주지 못할때도 있다. 그러면 그냥 방 안에서 가만히 있어야 하나. 우리는 걸을 수밖에 없다. 어찌보면 이기적일지도 모른다. 세상에게 상처를 주고도 앞으로 걷는다는건 받은 이들의 입장에선 피가 거꾸로 솟는 셈일테니까. 현실의 이야기를 안할 수가 없다. 홍상수는 부인에게 큰 상처를 줬다. 사실 어찌보면 질이 안 좋은 사람이다.  그는 이런 자기의 모습을 영희에 투영해 우리의 한 모습을 관객에게 보여주고 있다. 그래. 알아. 아무도 날 이해할 수 없단걸. 그리고 내 애인도 이해할 수 없겠지. 내가 누리던 인기 영희의 주변인처럼 다 꿈처럼 사라지겠지. 사랑도 언젠가 실패할테고. 그럼에도 영희는 벌떡 일어나서 앞으로 걸었다. 외로움과 후회를 보여줘도 사실 자기는 선택지가 없단걸 보여주고 싶었을 것이다. 이건 홍상수라서 할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니다. 당연하다. 사실 어쩔 수 없다. 내가 잘못한 일에 내가 외로움을 느끼던 타인이 나에게 가한 이기심이던 우리는 앞으로 나아갈 수 밖에 없다. 이게 인생사의 전부라고 생각했다. 그는 어쩔 수 없다. 이 모든 상황이 모순이고 후회속에 갇혀 나를 이해할 수 없더라도 내 인생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를 지켜볼 수 밖에 없다고 변명한 셈이다. 나도 외롭고 후회한다고. 이게 내가 느낀 감정들이라는걸 보여줬다. 그러니까 구체적으로 말하는 바도 없이 자기 인생의 한 부분을 완벽하게 비유했다. 

 

그래서 이 영화에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 많을거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끊임없은 루틴의 반복속에 산다. 반복되는 일상속 비호감덩어리인 나. 누군가에게 받은 상처가 부정당한다면 대체 나는 뭐하는 인간일까.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한때의 나만 있진 않을 것이다. 우리는 알고 있다. 지나간 세월을 돌이켜보면 이 모든게 꿈같아서 즐거웠던 시간은 우리를 아프게 만든다. 그러면 어때. 이 세상은 모순덩어리다. 내가 보이는 것들이 타인은 눈치 못채는 순간의 연속이다. 타인과 교감하는 순간까지 심지어 꿈같이 사라질 때가 부지기수다. 이건 결국 후회나 외로움이 된다. 그러면 어때. 우리는 잠에서 깨어난 영희처럼 앞에서 걸어갈 수 밖에 없는걸. 시간 속에 우리의 삶을 가만히 놔둘수밖에 없는걸. 회의감이 가득한게 우리의 삶이라고 한다. 홍상수는 이 회의감 속에서도 자기의 내면세계를 솔직하게 드러낸다. 여러모로 제정신이 아닌 감독이다. 홍상수를 좋아하지 않았던 나지만 나도 그에게 설득당해버렸다. 처음엔 양홍원의 <오보에>를 리뷰하려고 시작했던 글이 점점 길어졌다. 굉장히 중요한 기획서를 써서 모 교수님에게 내야하는데 한 3시간동안 이 글만 썼다. 이제는 해변에서 혼자 배회하지 않아야 할 텐데. 공부도 다시 시작해야 할 텐데. 7월 말의 밤이 조용히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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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서도 무사 통과되시길 바랍니다.
댓글
글쓴이 추천
08:16
21.07.26.
2등
무슨 글이 이렇게 아프고 좋습니까.

<밤의 해변에서 혼자> 50번도 더 본 것 같아요.
죽을때 가져가고 싶은 영화 하나 뽑으라면
전 이 영화입니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는 마법 같은 힘이 있습니다.
감독님의 열렬한 팬으로 정말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댓글
글쓴이 추천
22:20
21.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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