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국은 언제까지 특권의식을 가질 것인가
지역 공중파 방송국 FD도 해보고 외주제작사 방송작가도 해봤지만 방송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절대적 '갑(甲)'의 위치에 있다고 믿는 편이다. 프로그램 촬영을 위해 사전 허가없이 거리에서 사람들의 보행이나 차량의 운행을 방해한다. 색다른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해 예민한 역사적 주제를 건드려 빌미를 제공하기도 한다. 색다른 재미를 주기 위해 올림픽 개막식 자막에 이상한 장난을 치기도 한다. 지상파가 케이블, 종편, OTT와의 경쟁에서 자리를 내주기 시작한 후 이 같은 조급함은 더 심해졌다.
KBS, MBC, SBS 등 지상파 3사는 분명 이전과 달리 조급해졌다. 여전히 자신들을 '갑'이라고 믿지만 그 영향력은 영 시들하다. 한때 20%는 쉽게 넘기던 드라마 시청률은 이제 8% 넘기기도 버거울 지경이다. 올림픽이라는 특수를 맞았지만 예전처럼 큰 반향을 불러 일으키기 어렵다. 그래서 그 어마어마한 '갑'들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낸다. 그러나 기껏 낸 아이디어가 조선의 왕을 악령에 씌어서 백성을 학살하는 망나니로 만들었고 올림픽 자막으로 다른 나라를 모욕하는 수준이다. 그들은 자신들을 '갑'이라고 믿는다. '시청자들을 위한다'라는 명목으로 뭐든지 해도 용서받을 수 있는 위치. 지상파는 더 이상 시청자들을 위하지 않고 있다.
넷플릭스와 유튜브의 등장으로 시작된 미디어 시장의 재편에서 가장 크게 흔들리는 곳은 지상파 방송국이다. 미디어 시장에서 그들은 절대적 '갑'의 위치에 있었다. 국민의 수신료와 광고수익이 더해져 거대한 자본을 자랑했고 이를 기반으로 다양한 콘텐츠를 제작했다. TV가 콘텐츠를 접할 유일한 플랫폼이었고 방송시장에서 오직 그들 셋만이 전국구 방송사로 존재했을 때, 그들은 풍요로웠다. 그러나 종편채널이 등장하고 케이블 방송사의 역량이 커지면서 무게중심은 서서히 지상파 방송사에서 옮겨가기 시작했다. 종편과 케이블은 지상파 방송사의 고립된 자체심의와 고질적인 제작환경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도로 시청자들의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이런 변화는 전혀 새로운 미디어 플랫폼인 넷플릭스와 유튜브의 등장으로 완전 뒤집어졌다. 더 이상 전파로 프로그램을 받아서 시청하던 시대는 끝났다. 콘텐츠의 길이부터 시작해 시청자의 기호, 콘텐츠를 보는 플랫폼까지, 모든 것이 변했다. 지상파에서 종편·케이블로, 유선방송에서 IPTV로, 텔레비전에서 스마트폰으로, 90분짜리 예능 프로그램에서 10여분짜리 숏폼 콘텐츠로, 모든 것이 변했다. 그럼에도 지상파는 여전히 자신들이 절대적 우위에 있다고 믿는다.
공영방송은 반드시 필요하다. 국가기간망으로써 방송은 재난정보나 국민생활에 필요한 공익정보를 전달해야 한다. 즉 공영방송의 콘텐츠는 그 어느 콘텐츠보다 공정하고 합리적이어야 한다. MBC의 올림픽 개막식 자막논란에 SBS '조선구마사' 논란이 오버랩된다(SBS는 민영방송이다. 그러나 그들은 공영방송에 준하는 역할을 한다). 이는 방송인으로서 직업윤리가 얼마나 땅에 떨어져 있고 특권의식이 여전히 하늘을 찌르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나는 한때 지상파 방송인들에 대해 "너희들이 뭐 얼마나 대단한 거 만든다고 특권의식을 가지냐"라고 비난한 적이 있다. 기껏 만드는 게 '조선구마사'나 다른 나라 조롱하는 자막이라면 특권의식은 커녕 부끄러움을 가져야 한다. 남들 다 하는 관찰예능이나 트롯 프로그램 베끼기 수준이라면 역시 부끄러움을 가져야 한다. 공영방송의 핵심이 돼야 할 뉴스를 보도하면서 공정하지 못한 소식을 전한다면 부끄러움을 가져야 한다. 지금 지상파 3사는 아무리 뒤져봐도 특권의식을 가져야 할 부분이 없다.
지상파 방송국은 혁신해야 한다. 찌들어버린 특권의식과 낡은 시선으로 방송을 만들고 뉴스를 보도한다면 그들은 더 이상 존재해야 할 이유가 없어진다. '시청자를 위한다'라는 말이 정말 시청자를 위하는 것인지 광고주를 위한 것인지 고민하게 된다. 군인이나 의사처럼 타인의 생명이나 재산을 지키고 다루는 일에는 직업윤리가 특권의식보다 절대적으로 앞서야 한다. 방송의 영향력은 타인의 생명이나 재산에 지대한 영향을 준다. 방송인(언론인)들에게 필요한 것은 하찮은 특권의식이 아니라 직업윤리다. 올림픽 개막식 자막논란을 보고 나니 새삼 궁금해진다. MBC는 직원들에게 직업윤리 교육을 시키기는 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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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가 문제인걸까요...
타국 방송에서 한국 입장하는데 세월호 참사, 삼풍백화점 붕괴, 대구 지하철 참사 등이 설명사진으로 올라오면
기분 엄청 나쁘겠죠... ㅠㅠ
공감 능력이 결여된 사람이 MBC 올림픽 개막식 맡은 것 같더라고요.
형식적인 사과를 해놓고
어젠 한국 vs. 루마니아 축구 경기 중 또 병크를...
대표가 나와서 사죄해야할 수준같던데
나머지는 선 넘었죠... 그것도 많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