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얼굴 (1966) 걸작
귀재라는 호칭이 딱 맞을 감독 테시하가라 히로시의 역작이다.
테시하가라 시로시 감독은 모래의 여자라는 걸작을 감독했는데, 작품 수가 엄청나게 작고 다큐멘터리에 주력한 감이 있어 어떤 사람이었는지 궁금해진다.
이 영화 타인의 얼굴은 SF영화가 아니다. 페이스 오프나 다크맨같은 영화가 이 영화에 엄청난 영향을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말이다.
원작자 아베 코보가 의사였다고 하는데, 그런지 몰라도, 사고로 얼굴을 잃은 남자의 얼굴을 가면으로 씌우는 장면이 아주 상세하고 리얼하다.
이렇게 얼굴을 만들어서 이런 과정을 거쳐 이렇게 그의 얼굴에 씌운다 하는 과정이 다큐멘터리적 정확성을 가지고 보여진다. SF적인 장면이면서도
다큐멘터리같기도 한 그런 장면이다. 페이스 오프나 다크맨같은 영화가 심하게 말하면 이 영화 한장면을 베꼈다.
이 영화 전체가 의학 논문같다. 해부학적인 정확성을 가지고 주인공 남자의 심리를 분석하고 해부해간다. 염상섭이 상상으로 개구리 해부하는 장면을 그린 상상화가 아니라, 의사가 해부학적 지식을 가지고 근육 한 가닥 한 가닥 신경 한 줄기 한 줄기 묘사해나간 그런 느낌이다. 이 영화는 인간에 대해 차갑게 분석하는 영화다.
SF영화고 스릴러물도 아니다.
이렇게만 말하면, 이 영화가 인간에 대해 분석하는 그런 사실적인 영화가 아니냐 하고 오해하기 쉬운데 그렇지 않다.
이 영화와 가장 가까운 영화는 파우스트이다. 이 영화 줄거리는,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의 유혹을 받아 인간 바깥의 경계로 나아갔다가 자기를 잃고 파멸하는 이야기다.
의사 출신 작가가 해부학 정확성을 가지고 인간을 섬세하게 분석해서 그려내는 이야기가 가장 고전적이고 상징적인 파우스트라니 기막힌 조합이다.
이 영화 자체가 인간에 대한 심오한 상징이자 성찰이다.
나카다이 타츠야는 사고로 얼굴을 잃은 엔지니어다. 그가 경영하는 회사가 있지만 나가지 않은 지 오래다.
그는 아름다운 아내를 괴롭힌다. 그는 중얼거린다.
"나는 얼굴이 근육이나 뼈인 줄 알았지. 그런데, 얼굴은 영혼으로 통하는 문이었어. 문이 없으면 안으로 들어갈 수 없어. 그러니까 얼굴 없는 영혼은 썩어가는 거야."
아내는 말한다. "아무도 당신 영혼을 거부하지 않아요. 당신이 스스로 문을 닫는 것일 뿐."
그러나 다음 순간 나카다이가 아내를 만지려하자 깜짝 놀라며 피한다. 나카다이는 순간 분노를 느끼고 아내에게 복수하려 마음 먹는다.
그는 의사인 친구를 찾아간다. 의사는 인간의 신체를 대체할 수 있는 가면을 만들고 있었다. 그는 나카다이에게 가면을 씌워주겠다고 한다. 나카다이는 아내에게 복수하기 위해 가면을 쓰고 의사의 실험에 협조하기로 한다. 의사는 나카다이에게 한가지 조건을 내건다. 나카다이에게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세밀하게 보고하라는 것.
나카다이의 계획은 이렇다. 완전히 다른 미남으로 변신해서 아내를 유혹하겠다는 것. 얼굴은 중요하지 않다, 사람들로부터 스스로를 폐쇄하는 당신에게 문제가 있다 하는 아내의 말을 정면으로 부정하려는 것이다. 사랑하는 아내를 되찾고 싶다 하는 욕망도 있고......
영화가 굉장히 심오하다. 의사는 계속해서 나카다이의 귀에 속삭인다. 마치 파우스트의 메피스토펠레스처럼. "이 가면은 그냥 당신의 사회 복귀를 돕는 것이 아니야. 이 가면은 당신으로부터 벗어나서 스스로 생명을 가지고 자기 욕구를 위해 움직이게 될 거야." "당신은 이 가면을 쓰고 나서, 전에 안 입던 화려한 옷을 입고 젊은 여자 다리를 흘낏흘낏 보고 했지? 전의 당신이라면 상상도 못할 일이야. 가면이 당신을 조종하는 거야." "가면을 쓰고 아내를 유혹한다는 계획을 버려. 그럼 삼각관계가 일어날 거야. 가면, 당신 그리고 당신 아내. 그러면 누군가 죽어." 나카다이는 처음엔 웃는다. "나는 사회에 복귀하기 위해 가면을 쓰는 거야. 그게 다야."
하지만 나카다이는 가면이 자기를 바꾸고 자기 자아가 약해지는 것을 느낀다.
나카다이와 의사 친구들 앞에 선 군중이 갑자기 가면을 쓴 모호한 얼굴들이 되어버리는 장면도 인상적이다. "가면을 쓴 것은 자네만이 아니야.
모두들 자기 가면을 쓰고 있지. 모호한 자아라는 것은 자유를 의미하는 거야. 즐거움도 고통도 슬픔도 아무것도 없는 자유. 그런데 그게 뭘까?"
나카다이에게 일어나는 사건보다, 의사 친구가 나카다이를 데리고 거리를 다니며 인간이란 무엇인가, 가면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말하는 장면이 더 많다.
의사 친구는 특이한 어조로 말한다. 메피스토펠레스가 파우스트에게 하듯, 유혹적인 어조로 속삭인다. 그의 목적은 나카다이를 가면에 종속시키려고 자아를 잃게하려는 것이다. 의사 친구는 나중에 밝혀지지만 새디스트다. 그는 가면을 씌운 사람들을 파멸시키고 이것에서 쾌감을 느낀다. 하지만 그조차도 완전한 자유인이 아니다.
그의 일거수 일투족을 CCTV로 보듯 감시하고 관찰하는 부인이 있어 그를 속박한다.
나카다이 타츠야는 부인을 유혹하는 데 성공할 수 있을까? 만일 성공한다면, 나카다이 타츠야가 결국 자기 자신을 폐쇄할 뿐이라는 부인의 말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가면은 과연 나카다이 타츠야의 자아를 잠식해들어갈까? 인간의 자아란 무엇일까? 가면이란 또 무엇일까?
부인은 나카다이 타츠야가 가면을 쓰고 자신을 유혹하려 했다는 것을 알자 조용히 말한다. "여자는 자기가 화장을 하면 화장을 했다는 것을 상대에게 말해요. 여자에게 화장은 가면이예요."
나카다이 타츠야는 가면도 잃고 자아도 잃고 거리에 혼자 내팽개쳐진다.
"얼굴은 영혼으로 통하는 문이다"라는 나카다이 타츠야의 말과 "가면은 자아를 잠식해들어가고 자기를 위해 움직이게 된다"는 의사의 말
그리고 "당신의 영혼을 폐쇄하고 있는 것은 당신 자신뿐이다"라는 아내의 말 - 그렇게 세가지 주제가 이루는
화음으로 만들어진 실내악같은 영화가 바로 이 영화다. 귀재가 아니고서야 이런 영화를 만들 수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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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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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은, 다큐멘터리에 상당히 주력했고, 일본 다도의 달인 리큐에게 상당히 매료된 듯해요. 스페인 건축가 가우디에 대한 다큐멘터리도 굉장하다고 하더군요.
영화도 소설도 당장 찾아보고 싶어지는 글이네요 소개 감사합니다
60년대에 이런 주제의식으로 고민했다는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