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장선생 (1998) 거장은 살아있다
일본 영화 암흑기에 찬밥 신세였던 과거 거장들이 걸작들을 쏟아내기 시작한 것은 일본영화가 부흥하기 시작한 1980~1990년대다.
과거 거장들이라고 해서 모두 이때 걸작들을 낸 것은 아니고,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 그리고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 등이 특히 걸작들을 만들어낸 것 같다.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은 특히 이때 작품들로 자기 위상을 한단계 업그레이드하고 죽은 것이 아닌가 할 정도다.
이제는 걸작으로 남은 나루야마 부시코, 에이자나이카, 블랙 레인, 우나기, 붉은 다리 아래 따뜻한 물, 간장선생까지...... 나오는 작품들마다 화제가 될 정도로
거장으로서의 위상을 자랑했었다.
이마무라 쇼헤이와 가장 닮은 감독을 지금 찾자면 말년의 우디 알렌이나 클린트 이스트우드 아닐까? 젊었을 적 스타일이야 어쨌든 간에, 이마무라 쇼헤이의 후기작들은 따스함, 조용함, 예지, 관조, 세상의 어리석음과 비열함에 대한 포용력 등이 두드러진다. 말하자면 거장급이다.
간장선생도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이 말년에 도달한 깊이와 따스함을 보여준다. 간장선생은 먹는 간장이 아니라 인체의 장기인 간장을 의미한다.
오카야마현의 어느 외딴 섬에서 의사생활을 평생 해 온 아카키는 벌명이 간장선생이다. 툭하면 간장이 문제야, 간염이야 하고 진단을 내리는 바람에 조롱의 의미로 붙은 이름이다. 2차세계대전 말기에 일본인들이 굶주렸던 시절, 약도 제대로 없던 시절이다. 아카키는 명의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약도 없고 굶주렸던 시절, 어떻게든 병을 치료하기 위해 온몸으로 발버둥쳤던 사람이다. 모든것이 부족하고 가난하고 고통받던 시절 존재할 수 있었던 최고의 양심이자 행동인이다. 마을사람들도 그것을 알기에, 아카키가 명의는 아니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두 말 없이 자기 목숨을 맡긴다.
마을사람들과 아카키 간의 이런 유대는 감동적이다. 특히 이차대전 말기 군대가 일상을 통치하고 사람들은 가난과 질병, 비참에 시달리던 시대라서 더 그렇다. 간장선생은 필요한 약을 얻어오기 위해 군인들과 거의 멱살잡이로 싸우고 관리들에게 호통 치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그의 이런 필사적인 투쟁이 이 영화의 중심 줄거리다.
간장선생은 환자의 병과의 싸움에서 자주 패배한다. 하지만 그는 최선을 다해 아주 치열하게 환자의 병과 싸운다. 그는 위대한 의사는 못될 지 몰라도 위대한 사람이다.
그 섬에 있는 또다른 의사는 몰핀 중독자다. 그는 만주전쟁 때 전쟁영웅이었으나, 전쟁의 참상을 겪고나서 반전주의자에 쾌락주의자가 되어 자책하는 심정으로 산다. 날이 선 예리한 군인이 마약중독자 폐인이 되어 사는 것이다. 그는 아카키와 죽이 잘 맞는 친구다.
하지만 아카키처럼 절망 속에서 사람들을 위해 고군분투할 의지력은 없다.
아카키는 마을 처녀 소노코를 간호사로 들인다. 가난해서 먹을 것이 없어 어린 동생들을 위해 창녀가 된 소노코를 딱히 여긴 아카키는 먹여준다는 조건으로 소노코를 고용한다. 창녀였던 소노코의 어머니는 어린 소노코에게 "명심해라. 평생에 진짜 사랑하는 남자는 딱 한명이어야 한다.
그 외에는 어느 남자에게도 널 주지 마라." 라고 했다. 소노코는 아카키를 그 한 명 남자로 찍는다. 마을 유일한 지식인에다가 엘리트, 존경 받는 의사, 남들을 위해서 필사적으로 사회와 싸우는 의지력과 이타성, 고결한 성품같은 것이 눈에 들어온 것이다. 그때부터 소노코는 아카키를 위해 궂은 일 위험한 일 불법적인 일 모두 마다 않는다.
영화는 인간 아카키에 대한 찬미같은 것이 아니다. 아카키는, 어둡고 잔혹하고 비인간적인 사회체제 속에서 발버둥치는 개미에 불과하다. 영화는 이 암흑에 포커스를 맞춘다. 아카키는 유럽인 포로 환자를 치료해주었다는 이유로, 군대에 끌려가 고문을 받는다. 그의 친구 의사는 모르핀을 찾아 약창고에 숨어들어가 모르핀에 취한 상태에서 군대에게 총질을 하며 싸우다가 벌집이 되어 죽는다. 아카키의 아들은 군의관으로 군대에 갔는데, 환자를 구하는 숭고한 일 같은 것이 아니라, 인체실험부대에서 잔혹한 인체실험을 하다가 죽는다. 아카키도 이것을 안다. 그리고 괴로워한다.
영화 마지막에 아카키는 소노코와 함께 먼 섬으로 환자를 보러갔다가 바다 한가운데서 바다에 빠져 허우적거린다. 소노코는 자기 목숨을 걸고 바다에 뛰어들어 아카키를 보트에 올려준다. 자기 딸뻘이라는 이유로 소노코를 밀쳐버리던 아카키는 아마 이때 소노코에게 마음을 열었을 것이다. 그러자 멀리에서 버섯구름이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것이 보인다. 아카키나 소노코는 이후 방사능 때문에 서서히 암에 걸려 죽어갔을 것이다. 배드엔딩인가? 뭐 딱히 그렇지도 않은 것이, 엔딩에서 아카키와 소노코는 마침내 맺어지는 식으로 로맨틱하게 끝났으니 배드엔딩이라기도 애매하다. "핵폭탄이 터지는 그 곁에서 로맨틱한 두 남녀" - 이 장면을 뭐라 요약해야 할 지......
영화는 구로자와 아키라 식이다. 주정뱅이 천사라는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 영화를 연상시킨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 영화는 1950~1960년대 일본 황금기 고전영화를 1990년대에 성공적으로 부활시킨 것이다.
주연배우 에모토 아키라의 인생작이 될 것이다. 엄청난 명연기보다는 훌륭한 노력상 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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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마무라의 '검은 비黒い雨(1989)'와 비교해 본다면 또 다른 흥미와 재미를 가진 영화이기도 하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