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드나이트' 초간단 리뷰
1. "나홍진 감독의 '추격자'는 영리한 영화였는가?"라고 묻는다면 섣불리 긍정하기 어렵다. 나홍진 감독의 영화들은 훌륭한 미장센을 갖추고 있지만 생략이 많다. 그래서 관객은 생략된 부분을 자신의 해석으로 채워나가는 수고를 해야 한다. 여기서 예외가 되는 작품이 '추격자'다. '추격자'는 대단히 단순하고 간결하다. 살인범이 있고 그를 쫓는 전직 경찰이 있다. 밤거리에서 둘은 추격전을 벌이고 육탄전도 벌인다. 이 단순한 구조 안에 나홍진은 미장센으로 엄청난 힘을 싣는다. 그리고 무게감 있는 배우들이 등장해 캐릭터에도 힘을 더한다. '추격자'는 좋은 연출과 연기가 어우러진, 매력적인 영화다. '영리함'은 복잡한 구조를 논리적으로 설계하는 것일까? 간결한 이야기 안에 영화적인 힘을 더하는 것도 영리해야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렇다면 '추격자'도 영리한 영화가 맞다.
2. 권오승 감독의 영화 '미드나이트'는 '추격자'를 떠올리게 한다. 청각장애인인 경미(진기주)가 연쇄살인범 도식(위하준)을 피해 도망가는 한밤의 추격전이다. 제한된 시간(한밤)에 제한된 장소(재개발촌)에서 벌어지는 추격전은 '추격자'의 배경설정과 닮았다. 그리고 두 배우는 '추격자'의 엄중호(김윤석), 지영민(하정우)만큼, 아니 그들보다 더 달린다. 그러나 '미드나이트'는 '추격자'처럼 막무가내로 밀어붙이는 영화는 아니다. 쫓고 쫓기는 자의 관계도 다르고 연쇄살인범의 캐릭터도 다르다. 여기에 '미드나이트'는 감독 나름의 감각으로 리듬을 조절한다. 이런 몇 가지 차이들은 '추격자'에 없는 재미와 단점을 더한다. '미드나이트'는 '추격자'와 닮았지만 '추격자'와 다르다.
3. 나는 배우 위하준이 참 인상 좋은 청년이라고 생각한다. 큰 입으로 서글서글하게 웃고 목소리도 신뢰감을 준다. 그러나 이 배우는 신기할 정도로 '나쁜놈'만 주구장창 연기했다('곤지암', '걸캅스', '미드나이트'). '미드나이트'는 위하준의 서글서글함을 잘 활용한다. 위하준이 연기하는 연쇄살인범 도식은 똑똑하다. 지능적으로 살인을 하고 위기를 모면하는 능력도 탁월하다. 포커페이스도 잘 구사해서 상대방이 자신을 신뢰하도록 만드는 재주도 있다(위하준의 서글서글함이 이때 발휘된다). 그러나 도식은 자신의 똑똑함을 지나치게 신뢰하는 덕에 다소 게으르다. 이는 캐릭터가 그렇게 형성돼 나오는 장면일 수 있지만 연쇄살인 스릴러의 템포를 죽이는 역할도 한다. 북유럽인처럼 느긋한 성격이라면 도식을 감당할 수 있겠지만 '빨리빨리'가 미덕인 한국인에게 도식은 조금 답답하다.
4. 도식의 답답함도 이해는 간다. 이야기의 핵심이 되는 도식과 경미의 관계는 '살인자-목표물'이다. '추격자'처럼 '잡으려는 자-살인자'의 관계가 아니다. 당연히 살인자는 목표물을 다 잡은 타깃으로 노려 여유를 부릴 수 있다. 이를 감당하기 위해 영화에서는 종탁(박훈)이 등장한다. 종탁의 역할은 '이웃사람'의 마동석이자 '추격자'의 김윤석이다. 다만 주인공이 아닌 만큼 이야기의 핵심은 경미가 도식을 극복하는데 있다. 경미는 청각장애인이다. 영화는 이를 활용해서 긴장감을 주는 상황을 만들어낸다. 다행스럽게도 이는 도식의 느긋함과 맞물려 느린 템포에서도 긴장감을 준다. 쫓고 쫓기는데 올인하는 대신 청각장애의 핸디캡이 주는 긴장감도 놓치지 않는다(쫓고 쫓기는 긴장감도 잡는다. 체감상 이 영화는 '추격자'보다 더 달린다).
5. 제한된 시간과 공간에서 사건이 일어나지만 '미드나이트'에서는 메인플롯에 개입한 인물이 많다. '추격자'의 경우 엄중호와 지영민, 김미진(서영희) 정도를 제외하면 메인 플롯에 개입한 인물은 사실상 없다. 그러나 '미드나이트'에는 경미와 도식, 종탁 외에 경미 엄마(길혜연)와 소정(김혜윤)이 더 메인플롯에 개입해있다. 이게 아주 단점이라고 보기 어렵지만 이야기가 더 복잡해지게 하는 역할을 한다. 여기서 잘못하면 장르적 특성이 약해지기 쉽다. 특히 '미드나이트'처럼 서스펜스를 극대화시킬 요건이 있다면 메인플롯에 개입한 인물이 많다는 점은 서스펜스를 반감시킬 수도 있다. 다행스럽게도 감독은 메인플롯에 개입한 인물을 적절히 활용한다.
6. 드러내고 싶은 장면도 몇 군데 있긴 했다. 그 장면은 대부분 청각장애인인 경미의 고충을 담고 있다. 영화가 엉뚱한 데 욕심을 부린 것 같아 우려가 되기도 한다. 스릴러나 공포영화가 다른데 한눈 판다면 장르적 매력이 반감될 수 있다. 이는 한국 장르영화의 '고질적'이자 '아주 짜증나는' 병폐다. 다행히 이 장면의 비중은 크지 않고 이야기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 후반부에 이야기에 영향을 줄 것 같은 (계몽적인) 장면이 나와도 스스로 수습해낸다(이건 정말 칭찬해줄만한 대목이다). '콰이어트 플레이스'에서도 (실제) 청각장애인 배우가 나온다. 그러나 '콰이어트 플레이스'는 청각장애인의 고충을 보여주는 장면을 집어넣진 않는다(대신 장르에 집중한다). '미드나이트'가 장르에 집중했다면 지금보다 더 밀도있는 영화가 됐을 것이다.
7. 결론: '추격자'보다 무게감은 떨어지지만 충분히 긴장감 넘치고 재미있다. 그동안 한국 장르영화(공포·스릴러)가 저지른 깽판에 비하면 '미드나이트'는 (상대적으로) 장르에 대단히 충실한 편이다. 이 정도면 '보급형 추격자'라고 부르기 충분하다.
추천인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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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중 긴장감을 제대로 느끼기 위해서라도 극장에서 봐야 할...
평을 보니 내일 시사회 갈 맘이 기대감으로 뿜뿜 솟아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