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완벽한 타인' 초간단 리뷰
1. 어떤 영화는 대단히 연극같다. 반대로 어떤 연극은 대단히 영화같다. 한국영화 '완벽한 타인'을 처음 봤을 때 "연극같다"라는 인상이 강했다. 그래서 원작이 연극인가 찾아보니 2016년에 이탈리아에서 제작된 '영화'라고 한다. 한국영화도 좋은 성과를 거뒀고 스페인, 터키, 인도 등 18개 국가에서 리메이크됐다. 이 연극같은 영화가 무대에 오르는 것은 시간싸움이다(뮤지컬도 생각해봤는데 저 방대한 대사를 뮤지컬로 퉁치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리고 그 어려운 일을 한국의 누군가가 했다. 연극 '완벽한 타인'은 영화와 대부분의 내용이 비슷하다. 오랜 친구들이 월식을 앞두고 저녁식사를 위해 모인다. 그 자리에서 핸드폰을 공개하는 게임을 시작하고 대환장이 벌어진다. 큰 줄기는 영화와 거의 똑같지만 작은 디테일에서 다소 차이를 보인다.
2. (한국영화 기준) 우선 영화라서 깨알같은 재미를 줬던 부분들이 사라졌다. 예를 들어 세경(송하윤)과 전남친(조정석)의 대화는 조금 직접적이고 큰 재미가 사라졌다. 태수(유해진)의 캐릭터는 꽤나 한국적이었다. 영화에서는 가부장적인 태수의 모습이 무너지면서 반전재미를 선사한다. 연극에서는 가부장적인 면이 줄어들었지만(원작에 더 충실한 것으로 추정) 영화에 근접한 재미를 추구한다. 자유분방한 준모(이서진)와 세경은 나이차이가 많은 커플이었지만 연극에서는 나이차이가 부각되지 않는다. 이는 주요 인물들 중 여성 캐릭터들의 관계를 수직선상에 놓게 해서 더 다양한 티키타카를 유도한다. 이 밖에 영화에서 카메오들이 만들어준 재미의 대부분이 연극에서는 직접적으로 묘사된다. 역시 원작의 영향으로 보인다.
3. 대신 이야기가 쉴 틈 없이 전개된다. 군더더기를 빼고 이야기에 속도감을 더했다. 엄청난 대사량으로 분위기를 띄우고 나면 곧장 게임이 시작된다. (정작 러닝타임은 영화보다 5분 짧고 이탈리아 원작보다는 15분이 길지만) 방대한 대사량을 빠르게 쳐내는 연기와 무대에 걸맞는 연출로 속도감이 느껴진다. 특히 무대라는 공간의 특성상 영화보다 더 몰입해서 보게 만든다. 배우들의 통통튀는 연기도 제 몫을 한다. 낯선 배우들과 익숙한 배우들이 여럿 등장한다. 내가 봤던 회차에는 '걸스데이' 박소진과 '대배우' 이시언이 출연했다. 다른 회차에는 '사랑의 불시착', '빈센조'의 양경원과 '악의 꽃' 장희진(이 배우의 첫 연극), '여신강림' 임세미가 출연한다. 이들 외에 모든 배우는 처음 보는 배우들이다(그러나 대부분 무대 짬밥은 꽉 찬 배우들이다).
4. 이 수많은 배우들 중 시선을 사로잡은 배우는 김설진이다. 대충 춤추던 분인 건 알고 있었는데 연기까지 하는 줄은 몰랐다. 김설진은 페페(한국판에서 윤경호 배우가 연기함) 역을 맡았다. 이 역할에 임철수 배우와 더블캐스팅됐다. 임철수 배우는 '사랑의 불시착'과 '빈센조'에 출연했다. 김설진 배우도 '빈센조'에 출연했다(대체 '빈센조'는 뭐하는 드라마인가?). 김설진 배우의 다른 작품을 본 적이 없어서 말하기 조심스럽지만 '완벽한 타인'에서 그의 연기는 무대짬밥을 잔뜩 먹은 배우처럼 '대사연기'가 자연스럽다. 혹시나 싶어 찾아보니 무대연기는 연극 '뜨거운 여름' 이후 두 번째다. 그 밖에는 춤공연이 전부다. 대체 이 배우는 춤추던 분이라면서 대사연기가 이렇게 좋을 수 있는지 귀를 후벼파게 만들었다. 대사가 잘 들리지만 '또박또박' 말한다는 인상은 주지 않는다. 대사전달에 집중하는 대신 연기에 집중하면서도 대사가 잘 들린다. 페페는 특히 난해한 감정을 가진 인물인데 그 감정까지 고스란히 전달한다. 김설진의 영화경력은 사실상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JTBC '전체관람가' 속 단편영화 출연, '구미호가족' 안무팀). 이 배우, 매체에서 제대로 하는 거 보고 싶다.
5. 지난해 '좀비크러쉬 헤이리'에서 연기하는 거 처음 보고 식겁했던 배우 박소진도 연기를 잘한다(해당 영화는 최애배우인 '연기괴물' 이민지와 독립영화 짬밥 꽉 찬 공민정도 무너진 영화다). 자유분방하고 사랑스런 비앙카를 연기하다가 후반부에 확 돌아야 하는 캐릭터인데 잘 돈다. 영화와 마찬가지로 주요 배역에 비하면 옆으로 밀린 인물이지만 자기 분량에서는 존재감이 살아난다. 이 밖에 출연한 대부분의 배우이 단점을 찾을 게 없을 정도로 좋은 연기를 보여준다. 특히 여러 인물이 무대에 동시에 등장해 연기하는 만큼 합이 중요한데 그 합도 잘 맞다. 연극은 여러 인물이 무대에 동시에 등장한 가운데 공간 구석구석을 활용하며 개별 장면을 끌어낸다. 이런 장면전환의 합이나 동작이 커지는 장면에서의 합도 좋다. 당연히 연습을 충분히 했겠지만 숙련된 감각으로 익혔다는 게 느껴진다.
6. 결론: 영화(한국판)와 연극은 장단점이 갈라진다. 영화의 카메오 대잔치가 연극에서 없다고 서운해 할 필요는 없다. 연극이 주는 몰입감은 영화를 뛰어넘어 색다른 재미를 선사한다. 여러모로 괜찮은 연극이다.
추천인 7
댓글 7
댓글 쓰기정치,종교 관련 언급 절대 금지입니다
상대방의 의견에 반박, 비아냥, 조롱 금지입니다
영화는 개인의 취향이니, 상대방의 취향을 존중하세요
자세한 익무 규칙은 여길 클릭하세요
영화를 재밌게 봐서 연극도 궁금한데 대학로 다니기 바빠서 세종 갈 시간이 통 안 나네요^^;;;;
후기를 보면 영화에 비해 쉴 틈 없이 나간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대사가 많아보이는데 이걸 소화해내는 배우들도 대단하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