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도 배우를 꿈꿀 권리가 있다
소리에 민감한 괴물이 나오는 영화 '콰이어트 플레이스'에는 리(존 크라신스키)와 에블린(에밀리 블런트)의 딸 리건을 연기하는 배우 밀리센트 시몬스가 나온다. 2003년생인 이 배우는 생후 12개월 무렵 잘못된 약물복용으로 청각장애 판정을 받았다. 농아학교에서 연극반 활동을 하다 배우로 데뷔해 '콰이어트 플레이스'와 '원더스트럭', 그리고 몇 개의 드라마에서 작은 역할을 맡았다. 2018년 '원더스트럭'과 '콰이어트 플레이스'를 봤을 때 관객을 이끄는 낯선 분위기를 가진 배우라고 생각했다. 밀리센트 시몬스는 말을 할 수 없는 배우다. 말을 하지 않는 대신 눈빛과 표정으로 인물의 감정을 표현하고 행동(수화)으로 이야기를 이끄는 배우가 밀리센트 시몬스다. 이 배우는 자신의 강점이 충분한 배우였다.
자주 볼 줄 알았던 이 배우를 다시 본 것은 코로나19로 개봉이 늦춰졌던 영화 '콰이어트 플레이스2'에서였다. 전편과 연결을 위해 밀리센트 시몬스가 출연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전편에서 보여준 재능을 감안한다면 연결을 고려하지 않더라도 이 배우를 1순위에 둘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원더스트럭'과 '콰이어트 플레이스2' 사이 3년여간 밀리센트 시몬스는 몇 개의 드라마에서 작은 역할을 했다. 이런 재능을 갖추고 주목받은 배우치고는 활동이 지나치게 적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물음을 이해하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았다. '말을 할 수 없는 배우'를 활용할 수 있는 이야기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실제 생활이라면 청각장애인이 주변에 한명쯤 있어도 이상한 상황은 아니다. 그러나 영화 속 상황은 지켜보는 관객이 존재하고 그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줘야 한다.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 상대가 있는데 말을 할 수 없는 배우를 쓴다면 연출자나 작가 모두 골치 아픈 상황이 될 수 밖에 없다.
밀리센트 시몬스가 많은 일을 할 수 없었던 상황을 이해하지만 그렇다고 이 재능있는 배우가 자신의 꿈을 꺾어야 할까? 다시 말해, 청각장애인은 배우를 꿈꿀 권리가 없을까? 올림픽과 별개로 패럴림픽이 열릴 정도로 장애인의 육체적 가능성은 열려있다. 농구와 육상, 사격 등 극한의 신체능력을 요구하는 스포츠도 가능한데 카메라 앞에서 감정표현하는 일은 할 수 없는 것일까? 앞서 언급한대로 연기는 감정을 끌어올려 표현하는 작업이다. 기술적인 것과 함께 감수성도 요구하는 작업이다. 신체적 능력을 요구하는 연기 기술이 스포츠 종목에서 요구하는 신체능력보다 고난이도라는 생각을 하진 않는다. 그리고 장애인의 감수성이 비장애인보다 떨어질거라는 생각도 '당연히' 하지 않는다. 장애인이 연기활동을 하는 데 있어 불이익을 받아야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밀리센트 시몬스가 '장애인 배우' 중 처음은 아니다. 1996년 영화 '제8요일'에 출연한 배우 파스칼 뒤켄은 이 작품으로 칸영화제 남우주연상까지 받았다. BBC 드라마 '콜 더 미드와이프'에 출연한 배우 사라 고디는 2018년 대영제국 훈장을 받았다. 이들은 모두 다운증후군을 앓고 있다. 다운증후군은 염색체 이상에 의한 질환으로 특징적인 얼굴과 신체 구조가 나타나게 되며 지능 장애를 갖는다. 한국에서도 배우 강민휘가 다운증후군을 극복하고 연극과 드라마, 영화 등 여러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다운증후군이 아니더라도 사고로 신체 일부가 손상된 배우들이 무대를 중심으로 연기활동을 펼치고 있다. 그러나 이들 모두가 비장애인 배우만큼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진 않다. 파스칼 뒤켄은 칸영화제 남우주연상에도 불구하고 '제8요일' 이후 출연작이 단 3작품('더 룸', '미스터 노바디', '이웃에 신이 산다')에 불과하다.
연출자와 작가의 사정을 감안한다면 장애인 배우의 출연을 강요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상업영화에는 그들만의 사정이 있다. 이 글에서도 영화와 드라마 시장에 장애인 배우의 출연을 강요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장애인 배우는 새로운 이야기의 뮤즈가 될 수 있다. 이를 증명한 영화가 '콰이어트 플레이스'다. '콰이어트 플레이스'에서 리건은 괴물과 반대방향에 선 인물이다. 괴물은 극도로 예민한 청력으로 대상을 발견해 공격한다. 반면 리건은 청력을 상실한 인물이다. 압도적인 대립관계와 물리력의 상하가 명확한 가운데 이야기는 리건이 이를 극복하는 것을 중심으로 흘러간다. 리건의 역할을 비장애인 배우에게 맡길 수도 있다. 실제 영화나 드라마에서 청각장애인을 연기한 비장애인 배우를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말을 할 수 없어서 발달된 다른 감각을 온전히 표현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연기력으로 이를 가능하게 하는 배우가 나올 수도 있지만 이 경우에는 그냥 청각장애인 배우를 쓰는 게 더 쉬운 선택이다. 즉 '콰이어트 플레이스'는 리건이 밀리센트 시몬스라서 가능한 이야기였고 지금의 결과물을 만들 수 있었다.
이는 '제8요일'도 마찬가지다. '제8요일'의 조지(파스칼 뒤켄)는 '레인맨'의 레이몬드(더스틴 호프만)와 닮았다. 다시 말해 비장애인 배우가 연기할 수 있는 영역이었다. 그러나 파스칼 뒤켄이 연기한 덕에 이야기는 힘을 얻었고 감동은 더해졌다. 조지의 해맑은 미소가 감동을 더한 이유는 파스칼 뒤켄이 연기했기 때문이다. 이는 어느 비장애인 배우가 와도 대체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콰이어트 플레이스'나 '제8요일'이 실제 배우 때문에 만들어진 이야기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이야기를 쓰고 장면을 표현하는 데 있어 이 배우들의 영향은 분명 있었을 것이다. '오아시스'에서 뇌성마비 장애인을 연기한 문소리는 그 해 여러 상을 휩쓸 정도로 호평을 받았다. 그러나 정작 뇌성마비 장애인들에게는 큰 공감을 얻지 못했다(이는 문소리가 연기한 뇌성마비 장애인 연기보다는 '한공주' 캐릭터 자체에 대해 공감하지 못한 것으로 판단된다). 연기 자체의 고통을 감내하며 성공적으로 표현했지만 결국에는 한계에 부딪히기 마련이다. 뇌성마비 장애를 가진 배우가 실제로 있는지 알 수는 없다. 다만 뇌성마비 장애인도 배우를 꿈꿀 수 있기를 바래본다.
누구나 배우를 꿈꿀 권리는 있다. 장애인이나 비장애인 모두 올림픽(패럴림픽)에 참가해 극한의 운동능력을 경쟁하고 메달을 따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전 세계 미디어 시장에서 장애인에게 열린 공간은 얼마나 될까? 나는 밀리센트 시몬스가 작품을 고르느라 출연작이 적었을거라 생각하진 않는다. 혹은 그 배우가 그만큼만 연기하길 바랬을거라 생각하진 않는다. 분명 더 많은 작품에서 재능을 선보이길 원했을테지만 그 배우에게 주어진 공간은 딱 그만큼이었다. 창작자에게 장애인 배우의 출연을 강요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장애인 배우를 두고 본다면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 수 있다. '오아시스'와 같은 고통스런 이야기나 '제8요일'처럼 감동을 주는 이야기도 좋다. 그리고 '콰이어트 플레이스'와 같은 이야기도 만들 수 있다. '장애인 서사'의 확장성은 비장애인의 상상 이상으로 무한하다. 그 무한한 영역은 먼저 선점하는 사람이 임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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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넛 버터 팔콘'의 잭 고츠아전도 실제 다운증후군 베우이며 영화 '런'의 키에라 앨런도 실제 거동이 불편한 장애인 배우죠. 과거 이런 배우들은 컨트롤이나 통제가 안된다고 (생각했을) 기용이 안되었지만 지금은 시스템이 좋아지고 리얼함을 위해 이들을 적극 기용하는 것이라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