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씨'의 주인공은 여성이 아니다? (영화 아가씨 리뷰)
제가 가장 사랑하는 영화 중 하나가 바로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라눈 영화입니다. 아가씨를 보고 영화가 이렇게 마음 속에 울림과 해방감을 줄 수 있다는 걸 알았고, 또 이 영화를 통해서 모 배우의 팬이 되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처음에 이 영화을 봤을 때, 그리고 그 후로 계속 '아가씨는 여성주의 영화다'라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아가씨에서 나오는 남성과 여성과 가부장의 구도가 너무도 선명했기 때때문이죠. 그것도 제국주의와 피식민 - 국적 - 신분제도 - 빈부 - 젠더라는 사회 구조들의 중복되는 억압이라는 점에서 여성주의 중에서도 경제적, 인종적, 계급적 질서와 연관짓는 제3세계 페미니즘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극단주의적인 사람들이 여성주의를 한답시고 여성우월을 부르짖으며 반인권적 남성비하 표현을 남발하는 것을 보고 여성주의의 본질에 대한 대한 의문과 함께 아가씨에 대한 생각도 깊어졌습니다. 그들이 주장하는 대로 여성주의가 여성우월이라면, 아가씨도 정의로운 여성의 해방과 추악한 남성의 몰락이라는 이분법에서 해석해야 되는 것 아닌가라는 고민이었습니다.
하지만 한발짝 떨어져서 생각해보니 무언가 보이더군요. 이 영화는 여성이 주인공이 아니라 '사랑'과 '연대'가 주인공이라는 것을요.
히데코와 숙희가 사랑에 빠지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아마 고판돌의 계략이 성공해서 고판돌은 돈을 얻고 숙희는 정신병원에 갖히겠죠. 히데코는 아마 코우즈키가 보낸 낭인에게 금세 잡히고, 또 숙희의 코우즈키에 대한 분노도 없었을 테니, 아마 코우즈키의 기괴하고 변태스러운 장서들은 온존할 겁니다. 둘의 사랑이 없었다면 악인들만 좋은 꼴을 보겠죠.
이 때 숙희와 히데코의 사랑은 연대이기 때문에 의미가 있습니다. 여성이라는 공통점을 빼고 보면 그 둘은 신분, 빈부, 민족을 뛰어넘은 연대를 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질적인 두 인간이 연대하여 사회의 폭력적 억압에 대항하여 승리한 스토리가 바탕이고, 이 바탕 위에 여성, 퀴어 등을 색칠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연대가 영화 속 모든 갈등과 폭력보다 더 강하다는 점에서 관객이 주인공과 같은 성별이나 성정체성, 국적, 인종이 아니더라도 타인과의 연대와 그로 인한 해방이라는 뭉클한 감정을 공유할 수 있는 겁니다. 따라서 아가씨 속 연대는 성별에 상관없이 유효할 겁니다.
구질구질한 현실 세계에서는 성별이 다르다는 이유로, 혹은 자신과는 외모, 국적, 이념, 성지향성 등이 다르다는 이유로 갈등과 억압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어쩌면 누군가는 고판돌의 잘린 손가락과 추레한 코우즈키를 보며 남성의 허장성세를 실컷 비웃을 지도 모르겠지만, 그보다 만배는 더 중요한 건 차이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사랑과 연대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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