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eonjuIFF. 조금 스포] '당신은 믿지 않겠지만' 초간단 리뷰
1. 일본인 영화감독이 한일관계에 대해 이야기하는 영화를 만든다면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기 쉽다. 이는 내가 한국인이라는 배경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본 이시이 유야 감독의 '당신은 믿지 않겠지만'은 리뷰 쓰기가 몹시 망설여진 영화였다. 이시이 유야의 사상검증을 해본 적도 없고 영화리뷰를 쓰는데 그게 필요하다는 생각도 한 적이 없다(실제로 한국 스탭과 배우들을 데리고 한국 올로케로 찍은 영화라면 그의 사상검증은 어느 정도 끝났다고 봐도 좋다). 다만 이 영화가 우리나라 일반 관객의 정서에 어느 정도 공감을 얻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리고 글을 쓰는 나 역시 이 영화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 지 난감했다. 어려운 영화는 아니다. 오히려 가슴 따뜻하면서 적당히 유머러스하기까지 한 영화다. 그게 이 영화에 대한 글을 쓰기 어렵게 하는 이유다.
2. '당신은 믿지 않겠지만'은 츠요시(이케마츠 소스케)와 그의 어린 아들이 서울에 상경하면서부터 시작한다. 차로 가득한, 복잡하고 인심 야박한 서울을 지나 츠요시는 형(오다기리 죠)이 일하는 회사로 찾아간다. 내내 인심 야박한 서울을 경험하면서 츠요시는 아들에게 "그래도 상대방을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형은 한국인 동료(박정범)와 사업을 하다가 사기를 당하고 새로운 아이템을 찾아 강릉으로 떠난다. 한물 간 가수인 최솔(최희서)은 오빠, 여동생과 함께 부모님의 묘에 성묘를 하기 위해 강릉으로 떠난다. 츠요시 일행과 솔 일행은 강릉 가는 길에서 우연히 만나 동행하게 된다. 여기까지 읽으면 이야기가 말도 안되는 우연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이보다 말이 안되는 장면 투성이다. 무려 일본 걸그룹의 아저씨팬처럼 생긴 '천사'가 등장한다(이 영화의 영어제목은 'The Asian Angel'이다).
3. 첫 장면부터 츠요시가 보는 뉴스에는 냉각된 한일관계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한다. 영화 초반부에 묘사되는 서울은 나라도 별로 안 가고 싶을 정도로 삭막하고 야박하다. 박정범 감독이 연기하는 동료는 다짜고짜 츠요시의 멱살부터 잡는다. 이토록 살벌한 서울은 냉각된 한일관계를 상징한다. 이야기 떄문에 불가피한 선택이겠지만 그 모습을 온전히 서울의 풍경과 사람에서만 찾는 건 조금 이기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특히 서울에 오래 거주한 사람이라면 영화의 첫 장면부터 거부감이 들 수 있다. 차로 꽉 막힌 도로(서울의 어느 다리로 추정)에는 자동차 경적소리가 가득하고 택시기사는 꽉 막힌 도로에 짜증을 낸다. 서울에서 막히는 도로는 일상과 같고 거기에 짜증내거나 경적을 울리는 운전자는 본 적이 없다. 이는 다소 과장된 표현이다.
4. 서울에 대한 시선, 인상은 솔의 3남매를 만나면서 변한다. 솔의 일행과 츠요시의 일행이 우정을 쌓아가는 과정은 로드무비처럼 복고적이고 재미있다. 그런데 여기에 갑자기 '천사'가 난입한다. 솔은 몸과 마음이 지쳐서 마포대교 어딘가를 걷다가 갑자기 천사를 만난다. 이는 츠요시도 어릴 때 경험한 일이다. 츠요시와 솔은 같은 천사를 만났다. 이 천사는 일본 걸그룹의 아저씨팬처럼 생겼고 사람을 무는 습성이 있다. 어떻게든 갖다 붙여서 의미를 찾을 수 있겠지만 나는 아직도 이 천사가 뭔지 모르겠다. 심지어 솔과 츠요시의 멜로라인을 만들기 위해 천사가 활용되기도 하지만 그 장면은 영화의 첫 장면과 함께 내가 꼽은 '최악의 장면'이다. 천사가 이야기에 끼어든 순간, 이 이야기는 불가능한 판타지로 치닫는다.
5. 대체 이 판타지는 왜 만들어진 것일까? 단순히 현재 한일관계를 관찰한 이시이 유야의 시선으로 보기에는 다소 편협하다. 한일관계의 특수성을 활용한 가슴 따뜻한 휴먼 로드무비? 과연 한국의 관객들이 그것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그러기에는 개봉과 동시에 욕이란 욕은 다 먹으며 200만 관객을 겨우 넘기는데 그친 대작 블록버스터 영화 '마이웨이'가 눈 앞에 아른거린다(여기에도 오다기리 죠가?). 게다가 한국인 가족과 일본인 가족의 화합을 도모하려는 메시지는 다소 섣부르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 생각을 가진 일본인이건 한국에 대해 선행돼야 할 것은 화합보다는 사과다. 일본 주류 정치세력과 반대되는, 진보적인 생각을 가진 일본인도 화합보다 사과의 메시지를 전하는 경우는 드물다. '당신은 믿지 않겠지만'은 그 함정에 갇혀버린 영화다.
6-1. 결론: 나는 모든 일본인이 아베나 스가와 같은 생각을 할거라고 보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 대부분이 일본식 역사교육을 받았다는 점은 부정하기 어렵다. 이 때문에 일본인은 한국인에 대해 '무지(無知)에서 비롯된 무례(無禮)'를 범하기 쉽다. 이시이 유야나 오다기리 죠나 한국인에 대해 부정한 의도를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그러기에 그들은 한국영화와 밀접하게 연관돼있고 공동작업도 한다). 그러나 이 영화의 몇몇 장면은 한국 관객이 보기에 다소 불쾌할 수 있다. 게다가 '화합보다 사과가 먼저'라는 태도에 대해 응답한 일본인이 많지 않다. 이 말이 부당하게 들릴수도 있다. 어쩌겠는가, 전범국가의 후손으로 태어난 업보인 것을.
6-2. 결론: 그나마 다행스러운 점은 이 영화가 대규모 논란을 불러 일으킬만큼 주목받는 영화는 아니라는 사실이다. 일본 아트하우스 영화의 한계이기도 하지만 흥행할 요소도 많지 않다. 주목받는 영화가 아니라면 그만큼 논란이 생기지 않을지도 모른다. 또 '마이웨이'처럼 논란이 될 사실이 전면에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불편해지려면 어느 정도 해석을 요구한다. 차라리 해석하지 않고 이야기만 쫓는 게 나을지도 모를 영화다. 이야기만 읽으면 꽤 재미있는 영화다.
추신) 생각해보니 또 거슬리는 장면: 츠요시 일행과 솔 일행은 마지막에 다 같이 밥을 먹는다. 그런데 불고기에 잡채 다 해놓고 육개장 컵라면이 함께 등장한다. 엔딩크레딧까지 살펴봤는데 농심 PPL도 아닌 것 같다. 불고기, 잡채에 육개장 큰사발을 더하는 기이한 식탁을 차리는 가정이 있다면 제보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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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기대는 말아야겠어요. 잘 읽었습니다 :)
한국 사람이 보기에 이래저래 걸리는 부분들이 있겠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