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이럴] 간략후기
익무의 은혜에 힘입어 '쏘우' 프랜차이즈의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영화 <스파이럴>을 개봉 전 시사회로 미리 보았습니다.
'쏘우' 프랜차이즈의 9번째 영화이자 스핀오프물인 <스파이럴>은 덜 알려진 배우들과 저예산으로 만들어진 이전 편들과 달리
크리스 록, 사무엘 L. 잭슨 등 유명 배우들이 출연하고 스케일을 키워 만들어진다 하여 기대를 모았습니다.
'쏘우' 프랜차이즈의 정수를 포착하면서도 시류에 맞는 변주도 시도하는 가운데 <스파이럴>은
충격적인 데뷔 후 고어물 시리즈 노선을 타던 프랜차이즈를 오랜만에 초심의 궤도 위에 올려 놓았습니다.
여전히 잔혹하지만 그것을 영화의 본질로 여기지 않았고, 그 덕에 흥미롭게 볼 만한 영화가 되었습니다.
서에서 트러블메이커 대접을 받는 강력계 형사 지크(크리스 록)는 새로 맞이한 신참 파트너 윌리엄(맥스 밍겔라)이 영 마땅치 않습니다.
존경 받는 베테랑 경찰인 아버지 마커스(사무엘 L. 잭슨)의 후광이 이제는 저주처럼 지크를 괴롭히는 가운데,
한 노숙자가 지하철에 치여 처참하게 숨진 채 발견되는 사건이 발생하며 지크와 윌리엄이 해당 사건을 맡게 됩니다.
그러나 그 노숙자는 그들의 동료 경찰이었음이 밝혀지고, 죽음 또한 사고가 아니라 누군가가 꾸민 '사건'이었음이 드러냅니다.
범인은 꼭두각시 인형을 내세운 영상과 소용돌이 모양 흔적으로 자기 존재를 드러내고, 경찰서에 보내는 택배로 자신의 범행 궤적을 예고합니다.
도시를 공포에 떨게 했던 '직쏘' 살인마는 분명 죽었는데 그에 버금가는 끔찍한 방법으로 살해 당하는 경찰들은 점점 늘어나고,
지크는 범인이 제안하는 게임을 따라가며 대체 누구이고 왜 이런 짓을 저지르는지 추적하기 시작합니다.
<쏘우> 2~4편을 연출한 대런 린 보우즈만 감독이 다시 메가폰을 잡은 <스파이럴>은 끔찍한 연쇄살인과 형사 콤비의 추적이라는,
<세븐>과 같은 어두운 형사물을 연상시키는 스토리를 전개하며 고어 자체보다 미스터리에 초점을 맞추는 프랜차이즈 초기의 기조를 띱니다.
지금은 호러 프랜차이즈 여럿을 성공시키고 블록버스터 대작까지 이끌며 거물이 된 제임스 완 감독의 시작점이었던 <쏘우> 1편은
고어 호러와 미스터리 스릴러가 절묘하게 얽힌 형식으로 장르 팬들을 열광시키며 즉시 프랜차이즈화되었습니다.
그러나 편을 거듭할수록 미스터리 스릴러보다 고어 호러에 치중하게 되었고, 그래서 프랜차이즈에 정을 뗀 분들도 적지 않았을 것입니다.
(특히 3편부터 그 흐름이 눈에 띄게 나타났는데, 저 또한 3편까지 보고 다음 편 챙겨보기를 그만두었었습니다.)
그런 입장에서 이번 <스파이럴>은 스핀오프라곤 하나 프랜차이즈의 초심작처럼 다가오기도 해 반갑습니다.
물론 그래도 여느 미스터리 수사물에 비하면 현저히 높은 고어 수위를 보여주기에 심장이나 비위가 약하신 분들은 조심하셔야겠습니다만,
이와 별개로 스토리를 분주히 뻗어나가는 덕에 관객의 주의가 고어 장면들에 매몰되지 않습니다.
영화는 '어떤 트랩을 보여줄까'보다 '누가 왜 살인을 저지르는가'라는 미스터리 스릴러 장르다운 질문에 집중하는 편이고,
평범치만은 않은 배경과 역사를 지닌 개성 있는 주인공을 통해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속도감 있게 추적합니다.
치밀하게 설계된 트랩이 연출하는 잔혹한 장면들이 중간중간 등장함에도 영화에 대한 몰입감을 해치지 않는 것은
스토리가 다양한 트랩을 보여주기 위해 산발적으로 배치되지 않고 핵심 인물들을 중심으로 꽤 응집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쏘우' 프랜차이즈의 직계 속편이 아닌 스핀오프이기 때문에 이전 편들에 대한 배경지식이 그다지 필요 없는 가운데,
영화는 주인공인 형사 지크를 중심으로 그가 대면한 살인사건의 양상과 그를 둘러싼 세상, 살아온 삶에 대한 단서를 던진 후
그 사이에 구축된 관계성을 서서히 벗겨나간 끝에 클라이맥스에 이르러 진실의 설계도를 완전히 펼쳐 보여줍니다.
살인사건의 타겟이 다름 아닌 경찰이 되면서 나타나는 경찰 조직 내부에 관한 이슈나 흑인 형사인 주인공을 중심으로 다뤄지는 인종 문제 등
세태 반영도 겉핥기식으로나마 어느 정도 되어 있어, '쏘우' 프랜차이즈로서는 드물게 동시대의 사람들과 호흡한다는 느낌을 줍니다.
그런만큼 크리스 록, 사무엘 L. 잭슨 같은 굵직한 배우들이 출연한다는 것은 단순한 이름값 이상의 가치를 지닙니다.
우리에겐 시끄러운 캐릭터의 코미디 배우로 잘 알려져 있는 크리스 록의 어두운 스릴러 연기는 생각보다 꽤 자연스럽습니다.
명망 있는 경찰이었던 아버지의 그늘 아래에서 한껏 반항하던 문제적 경찰이 끔찍한 사건들과 연이어 맞닥뜨리며
극심한 고뇌를 겪는 형사 지크의 변화를 연기 톤의 극적인 변화를 통해 꽤 묵직하게 보여줍니다.
지크의 아버지이자 베테랑 경찰인 마커스 역의 사무엘 L. 잭슨 또한 출연 비중과 상관없이 강렬한 임팩트를 보여줍니다.
사회를 풍자하는 스탠드업 코미디로 명성을 쌓은 크리스 록과 영화에서 세상의 누구에게든 가리지 않고 육두문자를 퍼붓는 사무엘 L. 잭슨이
사회와 무관하지 않은 잔혹한 연쇄살인사건에 휘말리며 분투한다는 영화의 내용도 어찌 보면 일종의 패러디가 아닐까 싶습니다.
트랩의 참신성이나 고어의 강도 외에도 내용상 감정선이 어느 정도 살아있어야 하는데, 이 배우들이 감정선을 웬만큼 살리는 데 성공합니다.
1편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하는 이미지부터 1편이 보여줬던 영화적 트릭과 반전의 쾌감, 1편에 버금가는 충격적인 엔딩까지.
<스파이럴>은 '쏘우' 프랜차이즈의 정통 속편이 아님에도 프랜차이즈의 본령을 지키려는 태도가 인상적인 영화입니다.
우리가 '쏘우' 프랜차이즈에 열광하게 된 것은 고어의 향연 이전에 한껏 가슴 졸이게 했던 추리 게임과,
섬찟 놀라면서도 금지된 쾌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하는 '악을 악으로 처단하는' 뒤틀린 정의감 때문이기도 했다는 것을 상기시킵니다.
한껏 망가진 길을 뒤로 하고 마음은 간직한 채 새로운 길에 서서, '쏘우' 프랜차이즈의 새로운 출발을 기대하게 하는 영화입니다.
익무 덕에 영화 재미있게 잘 보았습니다.
추천인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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