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비커밍 아스트리드] 말괄량이 삐삐에서 독립적인 여성으로의 성장담
롤 모델까지는 아니어도, TV에서 봤던 말괄량이 삐삐의 모습은 무척이나 부러웠습니다.
내 기억 속 삐삐는 주근깨가 한가득한 빨간 머리를 한 아이였습니다.
어린 나이지만 상당히 독립적이고, 하고 싶은 말과 행동을 솔직하게 하지만, 미워할 수 없는 삐삐.
자유롭지만, 원칙이 있고, 매운맛이 필요한 어른에게 보기 좋게 한 방 먹이는 당당하고 거침없는 삐삐.
아이도 하나의 인격체로 인정해 준다는 느낌을 받았던 책과 영화를 보면서, 대리 만족을 느꼈었습니다.
늘 공주처럼 곱게 키우시려고 했던 엄마와 사회 분위기 속에서 여자아이는 어떻게 자라야 한다고 무의식중에 주입당하면서 살았던 유년시절을 떠올리면, 더욱 그렇습니다.
책이나 영상물을 재미나게 봤어도 작가가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사실 궁금하지 않았습니다.
어느 순간 알게 된 작가에 대한 비하인드스토리들은 그녀가 책 속의 삐삐나, 다른 책 속 주인공들처럼 보수적이고 부당한 사회 속에서 활발하게 싸웠던 분이었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녀 책 속의 주인공들은 전형적이지 않았습니다.
작품 제목 중 하나처럼 주인공들은 모두 뭐든지 할 수 있었습니다.
안되는 게 너무 많았던 그때 그 시절을 생각하면, 뭐든지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믿어주고 그렇다고 이야기해 줬던 어른들이 소수였기에 그녀의 책들은 여러모로 대단했습니다.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작품들
전 세계가 사랑하는 스웨덴의 아동문학 작가이자 사회활동가, 두 아이의 엄마이자 늦깎이 작가, 다양한 사회 이슈에 맞서 치열하게 20세기를 살아낸 혁신적 인물, 전 세계에서 6,000만 부 이상이 판매된 `삐삐 롱스타킹` 시리즈의 작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을 표현하는 말은 많지만, 그녀는 과연 어떤 삶을 살았을까요?
※영화를 보지 않은 분들에게는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주의 부탁드립니다.
아이들은 뭐든지 극복할 수 있어요.
외롭고 배고파도 맞서 싸우는 사람이 될래요.
비커밍 아스트리드
작가가 되기 전까지의 아스트리드의 삶을 다루고 있는 영화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생애에서 영감을 얻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영화는 노년의 아스트리드가 어린 팬들에게서 온 편지를 하나하나 읽어보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녀의 작품인 주인공들을 그린 팬 레터, 혹은 녹음테이프들 속 아이들은 공통적으로 궁금해합니다.
아이들 마음을 어떻게 잘 아세요?
어른이 된지 한참 지났는데도요.
비커밍 아스트리드
그렇게 노년의 작가의 회상으로 다큐 속 드라마가 시작됩니다.
1920년 보수적인 스웨덴의 어느 시골 마을, 청교도의 영향을 받은 엄숙한 주말 교회 예배에서 소돔과 고모라 이야기를 듣고 가는 아스트리드와 가족들.
소돔에서는 아이들이 아침에 소다만 마실 수 있다면서, 굿모닝 소다라며 형제, 자매들과 익살스럽고 재치 있게 웃는 아스트리드가 있습니다.
그런 아스트리드를 매의 눈으로 바라보는 어머니, 자상하게 바라보는 아버지 사이에서 별 걱정 없이 살았던 그녀.
사교 댄스장에서는 짝없어도 혼자 씩씩하게 막춤을 잘만 추는 그녀의 모습은 어딘가 말괄량이 삐삐를 연상케 합니다.
파트너 없이 쓸쓸히 앉아있기 보다 혼자 신나게
춤추는 걸 선택한 아스트리드
여자니까 늦으면 안 되고, 집안 허드렛일은 돕고, 어린 동생을 돌보는 게 당시 여성의 주된 역할이었습니다.
그래도 영민한 아스트리드의 재능을 알고 있던 아빠는 지역 신문사에서 면접을 볼 수 있도록 도와주고, 남다른 표현력과 문장으로 빛나던 그녀는 당당히 편집장과의 면접에 합격해서 신문사에서 일하게 됩니다.
엄마가 집안일을 계속 도와야 한다고 제약을 걸지만, 열차 개통식 독점 기사를 작성하면서 경험한 신문물처럼 그녀를 향한 세계도 활짝 열린 것만 같았습니다.
아마 이대로 탄탄대로 인생을 아무런 굴곡 없이 보냈어도, 그녀는 행복한 삶을 살았을 것이며 작가가 되었을 것입니다.
인생 속에서 예고 없이 다가오는 변화는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습니다.
너무나도 무지했던 당시의 피임 상황은 성냥의 인을 먹어서 피임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황당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딸을 잃고 부인과 이혼 중이던 편집장과 덜컥 사랑에 빠지게 된 아스트리드.
넌 별처럼 반짝여. 나도 좀 비춰줘, 필요해.
비커밍 아스트리드
땋은 머리를 과감하게 자르고 단발머리를 했다는 것만으로도 마을의 모든 사람들과 어머니의 따가운 눈총을 받게 되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인생을 즐기며, 신여성의 삶을 살아갑니다.
머리 스타일을 바꾸면서 소녀에서 여성으로 변화한 아스트리드 앞을 막는 건 아무것도 없어 보였습니다.
하지만, 그녀 인생에서도 일대 전환기가 옵니다.
보수적이고 작은 시골 마을, 청교도적 분위기가 강한 교회 가까이에서 사는 가족들의 곁을 떠나, 결국 자신과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존재에게 당시로썬 최선인 선택을 하게 됩니다.
나를 둘러싼 익숙하고 안정된 삶과 사람들을 떠나, 새 출발을 하기까지 쉽지 않았겠지만 누구나 인생엔 그런 순간이 옵니다.
선택의 순간마다 포기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할 때, 사람은 강해지고 나아가 비슷했던 타인의 상황과 사회문제에도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자신에게 닥쳐왔던 커다란 인생의 전환점에서 함께할 거라 생각했던 사람은 전혀 도움을 주지 않았으며, 오로지 아스트리드 혼자 해결책을 찾아서 도움을 청해야 했습니다.
그녀 작품에 투영된 주인공들처럼, 고향을 떠나 홀로 스톡홀름에서 비서 공부를 하면서 일자리를 얻어야 했고, 사랑하는 사람과의 사이에서 얻은 아들 라세는 덴마크의 위탁 가정에 맡겨놓아야 했습니다.
가족과 사랑하고 믿었던 연인이 반대하고 아니라고 할 때, 아스트리드는 쉽지 않은 선택으로 자신의 인생을 개척하고, 아들과 함께할 방법을 찾아냈습니다.
오래 떨어져 있어서 아이가 엄마보다 위탁모를 더 좋아하고, 다시 아들과 함께 살면서 겪는 문제를 겪는다. 아이도 엄마도 서로에게 익숙해지는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갑자기 낯선 환경과 음식, 다른 언어로 고생하는 라세가 익숙해지도록 돕기엔 아직은 미숙했던 아스트리드. 사랑만 많이 있으면 엄마를 할 수 있다는 위탁모가 이야기했듯이 그녀는 결코 포기하지 않고 인내했습니다.
워킹맘의 고된 일상, 백일해를 앓는 아들을 진정시키기 위해 들려주는 타고난 이야기꾼의 면모를 보여주면서 직장과 아들과 함께 하는 새로운 환경에 다시 익숙해져갑니다.
영화는 익히 우리가 기억하고 있는 위대한 작가이자 사회 운동가인 아스트리드의 모습을 보여주기 보다, 그녀가 처음으로 겪어야 했던 사회적 차별과 소외의 순간들을 보여줍니다.
그 순간을 어떻게든 해결하려고 고군분투하면서 보낸 시간과 노력들이 결국 그녀들의 작품 속에 그대로 반영된 게 아니었을까요?
인생의 매 순간이 늘 처음이고 혼란의 연속인 우리들에게 거는 마법 같은 문구로 하루하루 버티게 된다. 두려움을 극복하고 한발 내딛는 순간 우리 앞엔 더 큰 세계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언제나 열심히 사는 사람 곁에는 응원해 줄 누군가가 존재합니다.
아스트리드가 힘든 시간을 보낼 때, 그녀를 지지해 주던 스투레 린드그렌을 만났듯이 말입니다.
두렵지 않아. 난 괜찮아질 테니까
삐삐 롱스타킹
열심히 워킹맘이자 미혼모의 삶을 살아나가던 그녀 곁에 생긴 든든한 지원군이었던 스투레 린드그렌
<영혼의 집>, <사일런트 하트>, <리스본행 야간열차>, 넷플릭스의 <행복한 남자>의 감독인 빌 어거스트의 딸인 알바 어거스트가 실제 아스트리드 린드그렌과 매우 유사한 모습을 보여주면서, 사회의 편견에 맞서는 상황을 잘 연기해냅니다.
삐삐가 없었다면, 감독이 되지 못했을 것이라는 페르닐 피셔 크리스텐센 감독의 한마디처럼, 많은 어린이들의 롤 모델이 되었던 아스트리드의 비하인드스토리를 감상해 보아요.
가정의 달 5월, 나를 위해서 많은 것들을 희생하셔야 했던 부모님들의 삶과 21세기 다양한 가족의 형태를 생각해 보게 하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삐삐가 롤 모델이었던 페르닐 피셔 크리스텐센 감독, 빌 어거스트의 딸인 알마 어거스트가
실제 아스트리드 린드그렌과 굉장히 실감 나게 연기한다.
할머니도 놀고 싶은가 봐요.
우리를 이해하죠, 아이들 편이에요.
비커밍 아스트리드
영원히 아이들의 롤 모델 될 삐삐 롱스타킹.
* 함께 보면 좋을 여성 작가들의 영화
각 시대별로 불합리한 시대적 편견에 맞섰고, 시대를 앞서갔던 여성 작가들의 작품들을 함께 추천해본다.
비커밍 제인 - 전 세계 연인들을 사로잡은 로맨스 대가, 천재 작가 ‘제인 오스틴’의 삶과 사랑.
메리 셸리 : 프랑켄슈타인의 탄생 - 열여덟 소녀 메리 셸리가 완성한 걸작의 숨겨진 진짜 이야기, 그녀의 삶과 사랑.
콜레트 - 편집자 남편의 이름에 가려져있었던 베스트셀러 소설 작가 콜레트의 삶을 다룬 작품.
미스 포터 - 피터 래빗의 전설적인 작가 베아트릭스 포터의 비하인드스토리
(이미지 및 정보 출처 : 다음영화)
비커밍 제인, 메리 셸리, 콜레트, 미스 포터
쥬쥬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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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삐삐 책 관련해서 리뷰 작성한 적도 있었는데,
그땐 몰랐거든요.
오... 글을 보니 함 보고싶어지네요 ^^
어렸을때본 만화의 "주근깨 빼빼마른 빨강머리앤 예쁘지는 않지만 사랑스러워" 요 노래가 괜히 떠오른다는...ㅎ
삐삐 노래는 이 노래인데, 빨강머리 앤이 좀 연상되기도.
스웨덴이나 덴마크쪽 작가나 화가의 이야기나 사랑 이야기에는 살짝 포함되어 있는 요소가 늘 존재하는데...
그거에 익숙하시다면 볼만하실 꺼예요.
저는 괜찮게 보았습니다.
잔잔하니 보기 괜찮은 작품이었어요.:)
후기 잘 봤습니다. 삐삐에 작가의 실제 삶이 투영돼 있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