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절한 시대변경 [아이들은 즐겁다], 원작과의 차이점
허5파6 작가님의 웹툰 중 <여중생A>에 이어 영화화된 <아이들은 즐겁다>
감명깊게 봤던 웹툰이라 꼭 보고 싶었는데 벌써부터 상영회차가 줄어들고 있네요..
이번주에 안보면 VOD로 봐야될 것 같아서 어버이날 아버지 모시고 다녀왔습니다.
<여중생A>가 <곡성>에서 뭣이 중한디?로 유명한 김환희 배우의
성장한 모습을 볼 수 있었던 게 유일한 장점이었던 것과 달리
<아이들은 즐겁다>의 경우 원작에서 지나치다 싶은 부분들과
영화화에서는 곁가지로 보일 수 있는 부분을 덜어내고
주인공 정다이의 행동과 심리를 묘사하는데 중점을 뒀는데, 옳은 선택이라 생각합니다.
<완벽한 타인>, <정직한 후보>, <자산어보>에서 봤던 모습과 전혀 다른 연기를 선보인
윤경호 배우님은 웹툰의 다이 아빠를 머리스타일만 다르게 해서 꺼내놓은 것 같았고
아역배우 전원이 연기를 잘했습니다.
그리고 시대 배경을
원작 웹툰의 1990년대 후반 → 최소 2017년 이후 (신비아파트, 꼬북칩 등장)
로 바꾸면서
초등학교 교사들의 자문을 받은 건지 요즘 학교 현장 재현도가 높습니다.
시골 초등학교에서 출산휴가 가시는 선생님 기간제가 구해지질 않아
급하게 투입되어서 초등학교 2학년 아이들을 가르쳤던 적이 있는데..
영화 속에서 태권도복 입고 있는 걸 보고 감탄했어요.
요즘 태권도 합기도 배우는 애들이 정말 많거든요;;
근무하는 동안 남자아이들이 아무렇게나 주먹 휘두르고 발차기를 해대서
싸움이 없는 날이 없던지라 합기도학원이 그렇게나 원망스러웠는데..
기대하지 않았는데, 영화 속에서 현실적인 학교 모습을 다루고 있습니다.
같이 본 아버지는 전원이 아역배우는 아니고
초등학교 교실에 카메라를 설치해놓고 장기간 촬영해서 나온 게 아니었을까 하시더군요.
그 정도로 아이들 언행이 자연스럽습니다.
아래부터는 원작 웹툰과 영화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상영시간 동안 '정다이' 한 명에게 집중하기 위해 웹툰에서 짤린 부분이 많습니다.
- 아이들의 가방고리(신비아파트)와 버스 안에서 먹는 과자(꼬북칩) 등으로 최소 2017년 배경인 걸 알 수 있습니다.
- 8살이 되어 입학했던 원작과 달리 초등학교 2학년에 전학을 온 걸로 변경되었습니다.
원작에서는 성씨도 없이 다이로 불렸지만 정다운 이미지를 주기 위함인지 정씨가 되었습니다.
- 다이 엄마와 아빠와 결혼하게 된 과정이 생략되었고
그냥 '당신은 잘못이 없고 애딸린 엄마랑 결혼해서 힘들기만 하지' 정도의 대사로 지나가듯이 언급됩니다.
원작에서는 전 여자친구였던 다이 엄마가 공장 사장 아들에게 성폭행을 당해 임신한 걸 알게 되자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 다이 아빠의 불륜 묘사가 없습니다. 대신 공사판 인부에서 화물차 기사로 일하는 것으로 변경되었고
시한부 환자를 둔 가장으로서 고생하는 모습과, 피가 이어지지 않은 아들 다이에 대한 고뇌 묘사가 추가되었습니다.
- 시대 배경을 바꾸면서 선생님이 촌지를 받고 아이들을 차별하는 모습이 사라졌습니다.
원작의 임시 담임 선생님정도로 좋은 것도 아니고, 딱 대한민국 평균 초등교사의 모습입니다.
- 다이의 친구 민호가 그냥 형이 있는 유쾌하고 착한 친구로만 남습니다. (이 영화의 개그 담당)
동네 일진인 형이 있던 원작과 달리 배경이 현대로 넘어왔고 다이에게 집중하기 위함으로 보입니다.
- 다이의 친구 유진이는 여자아이로 변경되었습니다.
할머니의 뺑소니 사고로 전학을 가게 되는 것은 동일한데
사고를 낸 사람이 돈을 많이 줬다는 묘사가 직접적으로는 없습니다.
전학가기 전의 유진이 대사로 추측이 가능한 정도.
영화 상영 시간 동안 원작 웹툰 절반 정도 분량의 슬픈 내용들이 연이어 나오다보니
자칫 막장 드라마로 오해받을 수 있을 요소들을 덜어내는 느낌입니다.
- 두 친구와 놀던 아지트가 폐박스에서 컨테이너로 스케일 크게 업그레이드 되었습니다.
원작에서는 아지트를 일진들에게 빼앗기지만 영화에서는 컨테이너가 철거됩니다.
- 다이의 친구 시아는 원작의 시아에다 책을 좋아하지만 오빠에 비해 차별받는 아리라는 아이를 섞었습니다.
부잣집 딸인 건 동일하지만 원작보다 비중이 늘었고, 원작의 아리만큼 착하면서
요즘 아이들처럼 태권도 학원에도 다니는 등 마냥 공주스럽지는 않은 아이입니다.
스마트폰과 막대한 재력(?)을 가지고 있어 다이 친구들의 브레인 역할도 합니다.
원작에서는 시아 엄마도 재경이 엄마 수준으로 문제가 있었지만 생략되었습니다.
- 다이의 친구 재경이는 원작에 비해 서브 주인공까지 올라섰습니다.
영화에서는 다이와 직접적으로 갈등을 일으키는데 참 리얼하게 싸웁니다.
애들 가르치면서 '얘들아.. 왜 이런 거 가지고 싸우는 거니...?' 했던 그 순간들이 바로 떠오르던 장면이었네요.
한편으로는 부모가 어떻게 하는가에 따라 아이의 행동이 정해진다는 걸 보여주는 캐릭터이긴 합니다.
원작에서는 안경으로 불리며 받아쓰기 틀린 갯수만큼 엄마에게 손바닥을 맞는 캐릭터였지만
시대가 시대인지라 엄마가 체벌을 하지는 않습니다.
- 원작과 가장 달랐던 점은 역시나 배경을 현대로 바꾸면서
아이들의 로드무비가 된 것입니다.
인천에서 청주까지 향하는 여정은 생각지도 못한 전개라 인상깊었습니다.
감독님의 영화 오리지널 전개 의도는
“주인공 다이의 성장 이야기라 학교와 동네에서 다른 공간으로 이동하는 걸 보여주고 싶어 ‘여행’이라는 요소를 넣었다”
라고 하네요.
태어나서 처음으로 무엇을 할 것인지 스스로 선택하고, 무거운 5학년 참고서를 내려놓고
다이와 친구들의 방해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여행을 스스로 포기하는
재경이의 성장한 모습은 서브 주인공이라 해도 부족함이 없었고
잠시 집에 돌아왔던 엄마가 잠든 다이에게 해줬던 사랑한다는 말을
요양병원의 엄마에게 그대로 말해주는 장면은 정말...
엄마 하나만 바라보고 살았던 다이에게
이렇게나 많은 아픔이 있었지만
함께했던 친구들과
"다이가 몸이 아프거나, 엄마가 보고 싶어 슬플 때는 절대 숨기지 말고 말해줄 거라고 약속해"
라 이야기해주는 아빠 덕분에
방학식날이 되자 누구보다도 더 활기차게 뛰어다니는 다이의 즐거운 모습과
밝은 표정으로 친구들을 다시 만나러 온 유진이를 마지막으로 영화는 막을 내립니다.
초등학교 2학년이 알 리가 없는 '상실'의 감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아이들,
그럼에도 아이들은 즐겁다.
추천인 33
댓글 25
댓글 쓰기정치,종교 관련 언급 절대 금지입니다
상대방의 의견에 반박, 비아냥, 조롱 금지입니다
영화는 개인의 취향이니, 상대방의 취향을 존중하세요
자세한 익무 규칙은 여길 클릭하세요
http://www.busan.com/view/busan/view.php?code=2021042118520243263&invenCode=9EA1fk&recCode=zQZZkf
찾아보니 시나리오를 전달하지 않고 촬영 3개월 전부터 시나리오 속 상황을 체험하게 하고
아이들 기준에 맞춰서 연기를 설명해주는 '연기 커뮤니케이터' 분이 계셨다고 합니다.
지금 기준으로는 'DIE' 랑 발음이 같아서 놀림받기 쉬운 이름이죠 ㅠㅠ
감사합니다. 요즘 아이들에 맞게 원작 내용 잘 다듬은 것 같아요.
아 재경이 문제집이 5학년 문제집이었나요...ㅠㅠㅠㅠ
글 넘 잘 읽었습니다
영화 장면 장면이 생각나서 울컥했네요, 좋은 영화였어요ㅠ
설명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그래서 요즘은 보기 힘든 이런 장면도 있어요 ㅎㅎ
사실 원작은 '즐겁지 않은 아이들의 즐거운 이야기'라는 반응이 보일 정도로 어두운 부분에서는 한없이 어둡긴 했어요.
각색 정말 작품 제목대로 잘 된 것 같습니다.
재경이가 싸움 직전에 먼저 움찔한거 보셨나요?
성인연기자였으면 혼낫겠지만
넘 귀엽던데요 ㅋㅋㅋㅋ
아이들 연기지도 어떻게 시켰을지 뒷얘기가 궁금해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