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죽기를 바라는 자들] 간략후기 (약스포)
- 스포일러로 해석될 수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
안젤리나 졸리 주연, 테일러 쉐리던 감독의 영화 <내가 죽기를 바라는 자들>을 보았습니다.
마이클 코리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원작 작가와 테일러 쉐리던이 함께 각본 작업을 한 이 영화는
그간 특유의 스타일로 영화 팬들을 사로잡아 온 테일러 쉐리던 감독의 집필 또는 연출작들과 궤를 같이 하면서도 확연히 다릅니다.
미국의 드넓은 대지를 배경으로 비정한 세계에 휘말린 비정하지 못한 인간들을 좇는다는 점은 비슷한 부분이지만,
늘상 혼돈과 비극으로 인물들을 이끌었던 전작들과 달리 헌신과 구원으로 이끈다는 점이 다른 부분입니다.
그의 영화들을 줄곧 보면서 한번은 그의 영화 속 인물들이 구원 받았으면 했는데, 이 영화가 그 바람을 이뤄준 느낌입니다.
공수소방대원 한나(안젤리나 졸리)는 큰 산불에서 세 명의 소년을 구하지 못한 트라우마로 감시탑에 배치되었습니다.
동료들은 한직으로 밀려났다며 위로할지 모르지만, 한나에게는 오히려 홀로 죄책감과 싸울 수 있는 공간인지도 모르죠.
불시에 뇌우가 들이닥치면 전기와 통신도 끊기기 일쑤인 고립되고 위험한 공간에서 근무하던 어느날,
한나는 혼자 숲속을 달려가는 한 소년과 마주칩니다. 이름이 코너(핀 리틀)인 그 소년의 얼굴에는 남의 피가 묻어 있습니다.
코너는 의문의 두 남자로부터 아버지(제이크 웨버)가 참혹하게 살해당하는 걸 눈 앞에서 목격한 후 도망쳐 온 참입니다.
코너를 쫓는 잭(에이단 길렌)과 패트릭(니콜라스 홀트) 형제는 모종의 이유로 코너를 죽이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믿을 사람이라곤 한나 밖에 없는 코너를 한나는 도와주기로 결심하고, 그를 살리기 위해 험난한 여정을 떠납니다.
그러나 문제는 잭과 패트릭이 보통 돌+I가 아니라서, 코너를 죽이기 위해 살인은 물론 산불도 불사한다는 겁니다.
영화는 베테랑 소방대원 한나와 연약한 소년 코너, 그들을 쫓는 잔악무도한 형제 킬러의 추격전이라는 틀에
뇌우와 산불이 들이치는 재난적 상황까지 곁들이며 곳곳에 배치된 변수로 긴장을 늦출 수 없게 합니다.
<내가 죽기를 바라는 자들>은 100분도 채 되지 않는 단출한 러닝타임 안에서 상당한 수준의 몰입감을 자아냅니다.
한나-코너와 잭-패트릭의 추격 구도에 붙는 부가 스토리를 최소화하며 이야기의 부피 대신 돌파력을 키우는 전략을 구사합니다.
시작부터 잭과 패트릭은 무자비한 면모를 보이지만, 누군가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는 듯한 그들의 위에 누가 있는지 보여주지 않습니다.
그들이 코너를 쫓는 이유에 대해서는 일부 대사를 통해 암시적으로 제시되지만 중요한 것은 그들이 코너를 쫓는다는 것 그 자체일 뿐,
왜 쫓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유를 물을 수 없는 자연 재해처럼, 코너에게는 그들의 추격 또한 불현듯 들이닥치는 재난일 뿐입니다.
테일러 쉐리던 감독은 필모그래피 사상 처음으로 사건의 중심에 어린 아이를 놓았지만, 그를 둘러싼 세상은 여전히 비정합니다.
꼬마 아이 한 명을 죽이기 위해 장정 2명이 발길 가는 곳마다 총질을 해대고 산에 불을 내기까지 하는,
신뢰와 호의를 베푸는 이들에게는 외려 피를 불러오는 냉혹한 세상이지요.
그만큼 신뢰와 호의가 가장 쓸모 없는 것만 같은 세상을, 한나와 코너는 오히려 신뢰와 호의로 돌파합니다.
생면부지인 한나와 코너는 서로를 구하기 위해 내민 그 신뢰와 호의가 어린 손길로 비정한 폭력의 불길을 무모하리만치 돌파해 나갑니다.
테일러 쉐리던이 쓰거나 연출한 영화들이 늘 황량한 미국을 싸늘하게 가로지르는 가운데에도 마음을 움직였던 것은,
비정한 세계의 섭리에 천착한 듯 하다가도 결국에는 그 세계 가운데에 선 차마 비정하지 못한 인간에게 시선을 향하기 때문이었습니다.
혼란과 좌절, 후회와 복수심 같은 지독한 감정에 휩싸인 그들에게 영화 속 세계는 동정을 거두었지만 영화는 그렇지 않았던 거죠.
<내가 죽기를 바라는 자들>은 그렇게 세상에 남겨진 이들에게 좀 더 적극적으로 구원의 손길을 내밉니다.
구하지 못한 이들의 죽음을, 내가 세상에서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었던 존재의 죽음을 내 잘못으로 받아들여야 했던 이들은
이미 지나간 죽음을 복원할 순 없을지라도 어쩌면 만회할 수는 있을지도 모를 또 한번의 분기 앞에서
그들의 목숨을 빼앗으려는 자들의 비정함만큼이나 뜨겁게 서로의 목숨을 지키려는 의지로 불타오릅니다.
세상의 가혹함은 갑자기 들이닥친 재앙처럼 그 근본적인 원인도 해결책도 알아낼 수 없도록 아득하게 뻗어 있지만,
영화는 한나와 코너에게 통곡 어린 눈물 대신 치열한 돌파 의지를 쥐어주며 악착같이 맞서도록 이끕니다.
절대적으로 선한 두 주인공에게 감독은 그동안 마음으로만 품어왔을 구원의 손길을 비로소 내민 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한나 역의 안젤리나 졸리와 코너 역의 핀 리틀은 철철 넘치게 감수성에 호소하지 않더라도 두 사람의 유대를 진하게 그려냅니다.
오랜만에 성인극으로 돌아온 안젤리나 졸리는 너무 선하기 때문에 트라우마로부터 큰 고통을 겪는 이의 내면을 담백한 연기로 보여줍니다.
조용하면서도 침착하게 상황을 판단하고 행동으로 옮기는 강인한 인물의 모습을 믿음직하게 그리며 신뢰감을 줍니다.
내면의 상처를 안고 있지만 어떤 새로운 동기로 인하여 일어서고 나아가는, 믿을 수 있고 응원하고 싶은 인물을 만들어내죠.
아역 배우 핀 리틀은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엔 너무 큰 절망에 힘겨워 하면서도 버티어내는 기특한 소년의 모습을 호소력 있게 보여줍니다.
무자비한 살인과 폭력, 재앙으로 뒤덮인 영화 속에서 코너라는 존재는 이 이야기가 그런 어둠에 무너져서는 안되는 중요한 동기가 되는데,
신뢰를 가장 멀리하라고 가르치는 세상에서 누군가를 신뢰하는 순수한 용기로 그 세상을 돌파하는 소년의 의미를 뭉클하게 그려냅니다.
한나와 코너를 재앙처럼 뒤쫓는 잭과 패트릭 형제를 연기한 에이단 길렌, 니콜라스 홀트의 '돌+I 미'도 인상적입니다.
타인의 목숨 알기를 우습게 여기는 냉혈한이면서도 주어진 임무에 대해 광기보다 사무적인 나른함마저 느껴지는 모습이 묘하게 매력 있습니다.
한나의 절친한 동료 커플인 보안관 이든과 생존 캠프 책임자 앨리슨을 연기한 존 번탈, 메디나 생고르도 뜻밖의 신스틸러 역할을 합니다.
단순할 수 있는 인물과 이야기 구도 속에서 이 두 배우는 예상치 못한 이야기의 새로운 결을 만들며 긴장감을 톡톡히 형성합니다.
<내가 죽기를 바라는 자들>은 테일러 쉐리던의 전작들에 비하면 특유의 하드보일드적 개성보다는 인간성이 좀 더 느껴집니다.
사막, 설원에 이어 드넓은 숲을 배경으로 한 영화는 산불처럼 세상을 자비 없이 쓸어버리는 재앙 같은 인간의 면모와
너른 숲처럼 강인하고 끈질기게 세상을 끌어안는 대자연 같은 인간의 면모를 대비시킵니다.
스스로 지옥을 더 끓어오르는 불지옥으로 만드는 인간에 대한 좌절과 그 안에서도 몸 뉘일 곳을 만들어내는 인간에 대한 희망이 공존하는 가운데,
우리는 이 동정 없는 세상에서 '죽기를 바라는 자들'과 '살기를 바라는 자들' 중 어떤 자가 될 것인지, 영화는 묻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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