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미싱 영 우먼. 각본상 수상이 이해가 가지 않네요.(스포).
방금 봤는데 산만하게 본다고 놓친 부분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도통 이 영화를 둘러싼 호평과 수상이 납득가지 않습니다.
이 영화는 끔찍한 범죄의 피해자를 잊고살아가는 뻔뻔한 가해자들에게 피해자의 친구가 하는 복수극을 골자로 합니다.
문제는 이 영화의 스타일과 주제가 전혀 상응하지가 못한다는 겁니다.
이 영화는 피해자를 잊고 무시하고 가해를 했던 자들에게 복수를 하고자합니다. 그러니까 성폭행 피해자를 둘러싼 폭력에 대한 비판이겠죠. 그런데 극 중에서의 등장인물만이 아니라 영화도 니나에 대해서 관심이 없습니다. 이 영화가 성폭력 피해자를 다루는 방식은 기능적이라고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저 카산드라라는 캐릭터의 동력에 불과하죠.
극 중 가장 어이가 없었던 장면은 변호사 조던과의 대면장면입니다. 변호사 조던은 이와 비슷한 경우에 피해자를 협박해 재판을 포기하도록 했죠. 그리고 그는 스스로 잘못을 깨닫고 죄책감을 느끼며 삽니다. 자신의 죄를 자책하고 스스로를 용서하지 않는 가해자.
문제는 캐시의 대사입니다. 스스로를 용서하지않겠다라는 조던의 말에 캐시는 내가 용서하겠다 라고 말합니다.
제가 든 의문은 '용서가 가능한가?' 였습니다.
제 말은 니나는 죽었습니다. 캐시는 니나가 아닙니다. 캐시는 조던을 용서할 수가 없어요. 물론 캐시의 절친으로서 받은 고통에 대한 용서일 수는 있겠죠. 그런데 그렇게 되버리면 캐시는 니나가 아니라 그냥 본인의 고통에 대한 복수를 하는 것이지 않을까요?
복수의 방식도 문제입니다. 가해자들에게 똑같이 돌려주는 것. 등가교환의 법칙. 그런데 그것이 가능할까요?
더군다나 문제는 캐시는 똑같이 성폭행의 방식을 사용하는데..
이 영화에서 니나의 죽음은 테이큰에서의 딸의 납치와 큰 차이를 느끼지 못하겠습니다. 오프닝과 지속적으로 대사를 통해 말은 하지만 (그저 복수극의 통쾌함을 원하는 듯한)서사와 연출과 어긋납니다.
이 영화는 가해자들처럼 피해자(니나)의 고통에 대해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추천인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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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씩 아카데미가 엉뚱한데가 있긴 하죠 ㅋㅋㅋ
다만 기존 복수극의 역할을 뒤집으면서 새롭게 보이는 것들이 있긴 하죠
밖이라서요.
변호사 용서는 이해가 가던데요.
니나만이 용서할 자격이 있다면
피해자가 사망한 경우 그 사건 관련자들은 무슨 일이 있어도 영원히 용서받지 못한다는 말이 되는데.
가해자와 그들의 편에 선 사람들 중 유일하게 니나를 기억하고 잘못을 뉘우치고 있는 사람인데 용서할 수 있죠.
새로움과 신선한 측면에서 점수를 많이줬던거같아요 제 생각에는ㅎㅎ 이런 의견 너무 좋은거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