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 레이니 블루스 / 마 레이니 블루스 못다한 이야기 (스포O)
<마레이니, 그녀가 블루스>의 메이킹 영상입니다.
Ma Rainey's Black Bottom
2021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여우주연상, 미술상, 의상상, 분장상 후보
마 레이니의 블랙 보텀은 마 레이니란 가수의 밴드 이름입니다.
이 작품은 영화만 단독으로 봐서는 이해가 좀 힘들고 영화를 다 보시고 나면, 알고리즘 추천으로 스페셜 <못다한 이야기>를 바로 추천해 주는데요. 작품의 대한 호불호를 떠나서 작품에 대한 온전한 이해를 위해 이 다큐까지 보시라고 추천드립니다.
본 영화를 보시게 되면 영화보다는 연극을 한편 봤다고 생각하실 텐데요. 실제로 유명 극작가 오거스트 윌슨의 희곡을 옮긴 작품입니다. 덴젤 워싱턴은 이번 작품에서 제작만 맡았는데 이전에 같은 작가의 희곡 <펜스>의 감독과 주연으로 선보였고, 덴젤 워싱턴은 10편의 오거스트 윌슨의 작품을 스크린으로 옮겨놓는 작업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미 영화화된 두 작품 다 상업성이 워낙 없는 작품들이었으니 넷플릭스와의 협업이 여기서 끝나진 않을 듯합니다.
마 레이니란 가수가 당대에 어떤 가수였는지 현세대 미국인도 모를 거 같은데 굳이 그녀의 명성도 제대로 알려주지 않고 경외 받아 마땅한 대상으로 그려냅니다. 누군지 모르고 이 작품을 접한 사람이 보기엔 그냥 거만한 블루스 가수일 뿐입니다. 작품이 그리고자 한 마레이니는 흑인을 동등한 인간 대접도 하지 않은 시대에 자기만의 방식으로 기득권층 백인과의 싸움을 했던 그 시대 기준의 스타 가수 포지션이었던 것이죠. 하지만 그 대가는 음반 판매에 대한 인세도 없는 녹음비에 대한 비용만 받는 거고요. 이런 뒷이야기는 작품만 봐선 알 수가 없고 <못다한 이야기>까지 봐야 알 수 있어요.
채드윅 보즈먼이 맡은 레비란 인물은 작중에서 마 레이니와 대립하는 인물이기도 하지만 백인 세상에서 살아남으려는 신세대를 상징하기도 합니다. 그 이면엔 유년 시절 백인들의 폭력적인 아픔이 있어 그 PTSD로 인해 가슴속에 독을 품고 있으면서도 자신의 실력을 토대로 음악가로서 성공에 대한 야심이 대단한 인물로 묘사됩니다.
이 두 인물은 예술과 사랑을 두고 경쟁함으로써 극 내내 둘 사이에 흐르는 긴장감의 묘사가 주내용이지만 실상은 둘은 그다지 경쟁 거리도 되지 않는 대상이기도 합니다.
<못다한 이야기>는 인터뷰하는 인물들의 의상을 보면 촬영 때 찍은 거 같은데 아쉽지만 채드윅 보즈먼의 인터뷰는 나오지 않습니다.
스포일러
레비란 캐릭터는 확실히 젊은 흑인들의 이야기를 대변합니다. 백인들에게 억눌리고 폭력을 당하고 착취당하고 나서 가슴속 그 분노를 표출하는 건 같은 밴드 단원에게 향해있습니다. 그러한 모습은 현대 흑인 폭동의 피해의 대부분이 같은 계층 사람이 당하는 모습에 대입되어 마지막 시퀀스의 레비가 사소한 시비에서 촉발된 분노가 가져온 비극은 이를 상징합니다. 엔딩에서 결국 레비로부터 헐값에 사들인 악보로 백인들이 자신 취향의 빅밴드 음악으로 바꿔 만들어 부를 축적하고요. 이런 미국 사회의 부조리한 모습이 1920년대를 그리고 있는 이 작품이 100여 년이 지난 지금에도 시사점이 있다고 생각됩니다. 이렇게 흑인음악을 백인 음악으로 무단 편곡해서 사용하는 내용은 드림걸스(2006)에서 더 잘 다루고 있습니다.
이 작품의 아쉬움은 연극 대본을 극영화로 옮겨오는데 있어 영상화에 맞는 각색 과정을 거쳐야 했는데 오로지 희곡에 대한 존중 때문에 연극적인 한정된 공간과 시간 속에서 펼쳐지는 인물들의 대립을 그대로 옮겨 옵니다. (사실 연극을 보진 않았지만 보시면 작품이 너무 연극을 그대로 올렸단 느낌이 드실 겁니다.) 그게 잘 맞는 영화도 있지만 이 작품의 경우는 잘 맞지 않았어요. 연극이란 매체는 관객들은 이미 시간과 공간의 한계를 인지하고 있고 눈앞에서 배우가 실시간으로 직접 연기를 하고 관객과 호흡하듯 극이 전개되어 나가기 때문에 인물들의 감정선에 동화되어 따라가기 쉽지만 이 작품 속 레비는 이 사건이 일어난 날의 몇 시간 사이에 일어난 일이기에 극 중 레비는 마치 조현병에 걸린 사람인 것 같아 보입니다. 원래 의도는 관객들 중 레비의 감정에 동조해주는 부분이 있길 원했겠지만 영상물을 보는 우리는 감정 기복이 문제가 심각할 정도로 심한 인물로 밖에 안 보이는 거죠. 그래서 레비란 인물의 감정선에 동조해서 따라가지 못하면 마지막 장면의 그의 행동이 그냥 정신 나간 남자가 벌인 사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바이올라 데이비스와 채드윅 보즈먼의 연기만으로도 볼만한 작품이긴 합니다. 특히 이 시기 채드윅 보즈먼은 건강을 우선적으로 돌봤어야 했을 시기에 자기 상황을 숨겨가며 작품을 했을 만큼 욕심나는 작품이었던 거죠. 영상물로서 완성도가 좀 더 높았다면 레비란 캐릭터가 좀더 설득력을 가지게 돼서 여러 연기상을 더 많이 수상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더군요. 우리 정서에 안 맞아서 영화를 보는 내내 힘들었지만 <못다한 이야기>까지 보니까 작품의 텍스트가 새롭게 들어오는 부분이 있으니 두 영상을 다 보시길 권해드릴게요. 영화는 90분 내 외고 다큐는 30분밖에 안 하니까 부담 없이 보실 수 있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