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부연락선] 삶의 찬미
'삶의 찬미'
- 연극 '관부연락선' 관극 후기 -
- 공연일시 : 2021년 4월 9일 금요일 오후 8시(80분)
- 공연장 : 대학로 자유극장
- 출연 : 김주연(윤심덕), 혜빈(홍석주), 이한익(급사소년)
1926년 8월 3일, 부산행 관부연락선 도쿠주마루 호에 밀항한 한 여인의 나레이션으로 극이 시작된다. 나레이션은 그 여인이 절망적이며 죽음을 각오하고 있음을 알려 준다. 밀항선에 오른 지 하루, 화물칸의 답답함을 벗어나고자 야음을 틈타 갑판으로 올라 온 여인은 두 남녀가 바다로 투신하는 것을 발견, 바다로 뛰어 들어 여자를 구한다.
운명적 만남의 두 여인은 홍석주와 윤심덕. 이렇게 둘은 뜻밖의 관부연락선 화물칸 밀항 동지가 된다.
처음 서로를 무시하고 경멸하던 두 사람은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면서 차츰 상대방을 이해하고 연민하게 된다.
연극 <관부연락선>은 '사의 찬미' 윤심덕을 무대로 소환한다. 하지만 윤심덕을 다룬 이전까지의 많은 서사물과 달리 (선상에서 투신, 동반자살했다고 알려진) 김우진과 함께가 아니다. <관부연락선>은 김우진을 보내고 윤심덕을 살린다. 그리하여 지금까지 시대에 희생 당한 비련의 여주인공으로 불멸을 살고 있는(이미지를 소비 당해 온) 윤심덕은 이전까지와 전혀 다른 새로운 서사를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그 새로운 서사에 김우진 대신 가공의 인물 홍석주가 함께 한다.
홍석주는 첩을 둔 남편에게 버림받은 본부인, 윤심덕은 부유한 집안의 유부남과 불륜을 저지른 자유연애 모던걸 상간녀. 두 사람은 서로의 맞은 편에 적대적으로 위치한 캐릭터로 시작한다. 하지만 보여지는 것과 달리 서로의 삶이 평탄하지 않았으며, 남성들의 왜곡된 폭력적 욕망이 두 사람의 삶을 불행하게 만든 공통적 원인임을 이해하게 되면서 진심으로 서로를 연민하고 가슴 깊이 연대하게 된다.
비련, 비운의 정사라는 '사의 찬미' 서사를 전복시켜 새롭게 상상, 해석하여 창조한 여성 서사의 아이디어가 놀랍다. 윤심덕과 홍석주 본인들의 이야기는 물론 그녀들이 보고 들은 주변 여인들의 비극은 100년이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그렇게 <관부연락선>은 통시적 보편성으로 객석의 공감을 이끌어 낸다.
최근 대학로의 가장 핫한 배우 중 한 명인 김주연(연극 '템플'!)은 우리가 이제껏 한 번도 본 적 없는 윤심덕의 모습을 보여 주었다. 김주연의 윤심덕은 자신의 욕망에 충실함과 동시에 타인의 아픔에 진심으로 공감할 줄 아는, 스타라는 높은 자존감과 잊혀질까 두려움의 명암을 가진, 무엇보다 천연덕스럽게 밝고 긍정적인 사랑스런 사람으로 다시 태어난다.
홍석주를 연기한 걸그룹 현역 리더 혜빈은 연기에 대한 자신의 진심을 충분히 보여주었다. 정확한 딕션(반대급부로 그만큼 어색한 발성) 등 자신의 역량 안에서 기본에 충실하려 노력했고, 엔딩부 자연스럽게 젖어 드는 눈가가 캐릭터에의 몰입을 증명했다.
극 중 윤심덕은 홍석주에게 노래 '산타 루치아'를 가르쳐 주고, 홍석주는 헤어져 이탈리아 로마로 떠나려는 윤심덕에게 '루치아'라는 이름을 선사한다. 왜 산타 루치아(성녀 루치아)일까 궁금즘에 구글링을 해 보고 나서 충분히 납득을 하게 되었다.
극은 경쾌유괘하다. 너희들이 준 상처 따위에 지지 않을 거라고, 삶에 대한 힘찬 의지와 희망을 이야기한다.
재밌는 설정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