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을 향해 폭주하는 저주받은 걸작

당대엔 흥행과 비평에서 실패했지만 훗날 스티븐 킹, 폴 토마스 앤더슨, 쿠엔틴 타란티노, 로저 에버트 등의 인물들이 모두 열광한 영화가 있습니다. 바로 윌리엄 프리드킨 감독의 1977년작 소서러(Sorcerer)입니다. 이 작품은 앙리 조르쥬 클루조 감독의 <공포의 보수>(1953)를 리메이크한 작품입니다. 원작과 리메이크가 둘 다 걸작인 경우는 드문데 바로 그 드문 경우라고 생각합니다.
이 영화, 박력이 엄청납니다. 무슨 악마나 괴물이 등장하는 것도 아닌데 지옥으로 기어들어가는 듯한 무시무시한 체험을 선사합니다. 그만큼 괴이한 마력의 영화입니다.
영화는 원작과 동일하게 아주 조그만한 충격에도 폭발해버리는 '니트로글리세린'이라는 폭발물을 트럭으로 운반해야 하는 임무를 맡은 네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주인공들에겐 그 상황 자체가 빌런이고 재난인 상태에서 영화는 관객을 '똥줄 타는' 서스펜스의 지옥(혹은 천국?) 한가운데로 던져놓습니다. 그 지옥은 언제 누가 어떻게 어디서 목숨이 날아갈지 모른다는 불안이 시종 감돕니다. 특히 포스터에도 나타나있는 폭발물을 실은 트럭이 출렁다리 위를 건너가는 장면은 정말 말도 안되는, 사람 잡는 명장면입니다.
주술사, 마법사라고 번역할 수 있는 단어 소서러(Sorcerer)는 작품에 등장하는 트럭의 이름입니다. 주술사라는 단어처럼 영화에는 최면적인 분위기와 기이한 리듬이 존재합니다. 이런 측면은 영화를 지배하는 불안이라는 감정을 탁월하게 형상화 합니다.
감독인 윌리엄 프리드킨은 70년대 미국에서 가장 광기 어린 영화들을 만든 대표적인 감독입니다. 그의 걸작들인 <프렌치 커넥션>(1971) <엑소시스트> (1973) 모두 어딘가 광적인 에너지가 가득합니다. 그리고 이 소서러에서 그 광기의 절정을 찍습니다. 그럼에도 이 영화는 한때 잊혀졌고 감독의 경력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결과론적인 얘기지만 그래서인지 이 영화에는 마치 망해버려도 좋으니 난 기어이 지옥으로 폭주해버리겠다는 감독의 결기가 느껴집니다. 하지만 이 작품은 결국 재평가, 재발견되어 걸작의 반열로 치솟아 흔한 말로 '저주받은 걸작'이 되었습니다.
살아있는 지옥이 펼쳐지는 소서러는 광기 어린 영화의 대가 윌리엄 프리드킨의 가장 '미친 영화'가 아닐까 싶습니다. 저주받은 걸작은 기어이 지옥을 향해 폭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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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의 보수>라는 걸작의 아우라로 인해 더욱 저평가되었던 측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원작과는 또 다른 매력의 걸작이라고 생각합니다! 후일에라도 컬트 반열에 올라 다행입니다^^



저도 그 때 보고 충격받았습니다. 정말 무시무시한 미친 영화입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본 후로 '미친 영화'라는 표현을 함부로 안 쓰게 되었습니다.

저도 이 영화를 처음 마주 했을 때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이런 쇼킹한 작품이 왜 상대적으로 묻혀 있었던거지? 라는 의문에 제가 다 억울한 심정이었네요ㅜㅜ 서울아트시네마에서 3편 동시심야상영 프로그램에서 상영했을 때도 블레이드 러너와 에일리언을 보러갔다가 뜻밖의 걸작을 만났다는 식의 느낌을 받은 분들이 많으셨으리라 생각합니다ㅎㅎ 정말 '미친 영화'라는 수사는 이런 영화에 써야하는 것 같습니다!






이 글 덕에 <공포의 보수>가 리메이크된 적이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찾아보니 <소서러>는 판권 문제로도 시끄러워서 공동 제작을 했던 파라마운트 픽처스와 유니버설 픽처스 중 어디에 판권이 있는지로도 싸움이 있었다네요. 결국엔 워너 브라더스가 판권을 사서 블루레이로 출시했다는 얘기도 있었대요.
전성기 시절의 윌리엄 프리드킨은 정말이지 대단했다죠. <엑소시스트>를 본 적이 있는데 왜 그렇게 회자가 되는지 알 만 하더군요. 프리드킨이 70대 중반에 내놓은 <킬러 조>라는 영화에선 매튜 맥커너히가 살벌한 또라이(?)로 나오는데, 길길이 날뛰는 게 아니라 내내 차분해서 더 무서운 역할이었어요. 막판으로 갈수록 막장스러운 전개가 펼쳐지는데 그 와중에 맥커너히가 내뿜는 광기는 공포 그 자체인 거 있죠. 매튜 맥커너히가 40대로 들어서면서 보여준 최고의 연기 변신이었어요. 건조한 분위기를 만들어 숨막히게 하던 프리드킨의 연출도 좋았고요.

<킬러 조>는 아직 보지 못했는데 추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역시나 프리드킨 하면' 광기'죠 ㅎㅎ 매튜 맥커너히의 연기도 아주 궁금하네요. 씬스틸러로 등장한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에서 보여준 상또라이 연기와는 또 다른 상또라이 연기가 기대됩니다!






<공포의 보수> 정말 걸작이죠👍 운이 좋게도 <공포의 보수>와 <소서러> 모두 극장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소서러>는 대단한 원작의 품위에 누를 끼치지 않으면서도 뭔가 좀 더 어둡고 미쳐버린 에너지를 투여한 파괴력 있는 영화였습니다. 원작과 리메이크 모두 훌륭하기 참 쉽지 않은데 말이죠 ㅎㅎ

<공포의 보수>도 보려고요
1번만 봤는데 이상하게 기온 엄청 높거나 습한날 다시보고 싶어요ㅎㅎ


엄청 열광했던 영화에요^^
3년전 익무에 제가 뒷이야기 번역글 2개를 올렸을 정도..ㅎㅎ
https://extmovie.com/trivia/38317182
https://extmovie.com/trivia/38336036



정말 열거하신 영화 모두 광기가 드글거리는 작품이네요 ㅎㅎ 70년대의 미친 영화들 아주 애정합니다 👍



언젠가 보고 싶은데 국내도 워너가 블루레이 출시해줬으면 하는 바네요.





원작이 더 재밌었던..



극장 개봉은 요원하더라도 시네마테크같은 곳에서 일회성 상영이라도 이루어졌음 하는 바람입니다^^ 유튜브에 풀 영상이 올라와있었군요.. 저작권은 괜찮으려나요ㅜㅜ

유툽 저작권AI가 알아서 검열?! 하지 않을까요? ㅎ

찾아보니 2015년 아트시네마의 영화행사인 '시네바캉스 서울'에서 상영한 바 있네요
더구나 심야상영까지...
조만간 또 다른 포맷으로 '소서러'는 상영될 듯합니다

저도 여기서 이 영화를 처음 알게 되고 보았습니다^^ 정말 다시 한번 극장에서 보고싶네요 ㅜㅜ 윌리엄 프리드킨 감독님은 충분히 특별전이 열릴만한 감독인데 꼭 그런 자리가 마련 되었으면 좋겠습니다ㅎㅎ
현재 컬트 반열에 오른 명작이더라고요. 리메이크가 그렇게 되기 쉽지 않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