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산어보] 중년 이준익이 청년 이준익에게(스포)
※ 이 글에는 <자산어보>의 스포일러가 담겨져 있습니다. 영화를 보지않았거나 스포일러를 피하고싶다면 이 페이지에서 나가거나 뒤로 가기를 눌러주세요.
<자산어보>를 보면 극중 시대상이 과거임에도 불구하고 캐릭터들의 이야기가 마치 오늘날 우리의 이야기처럼 다가옵니다.
이준익 감독의 영화에서는 인간미 넘치는 이야기, 즉 사람냄새가 느껴진다고 보는데 바로 이것때문이 아닐까싶습니다.
창대의 설정이나 행보는 이 영화의 오리지널 스토리인데 어떻게 관객들의 공감을 살 수 있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영화를 보고나서 이준익 감독의 예전 인터뷰 (출처: 씨네21)를 찾아 보다가 흥미로운 부분들이 보여서 끄적여봅니다.
100%라고 볼 수는 없지만 정약전에게서는 중년의 이준익 감독의 모습 그리고 창대에게는 이준익 감독의 젊은 시절 감정이 어느정도 녹아든 게 아닐까라고요.
- 자화상 -
아마 많은 분들이 영화 시작부터 흑산으로 유배가는 정약전의 모습에서 이준익 감독을 떠올렸을겁니다.
영화광고계에서 잘 나가다가 야심차게 <키드캅>으로 감독 데뷔를 했으나 실패했을 때의 모습.
그리고 10년만에 <황산벌>로 재기하고나서 <왕의 남자>로 천만 영화를 달성하면서 잘 나가다가 그 뒤로 흥행이 저조해지면서 <평양성>에서 상업영화 은퇴라는 불명예를 안고 떠났던 모습.
<소원>으로 재기해서 <박열>까지 명작들을 보여주다가 <변산>에서 미끄러져버린 모습 또한 겹쳐보였을거라고 생각합니다.
임금의 총애를 받고 잘 나가다가 정권의 교체로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진 정약전의 심리를 잘 표현할 수 있었던데는 감독도 마찬가지로 이런 고난을 경험해봤기 때문이 아닌가싶습니다.
-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
<자산어보>를 보기전까지만해도 변요한 배우보다 설경구 배우에게 이목이 집중되었습니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나서 예상외로 창대를 연기한 변요한 배우의 얼굴이 기억에 남더군요.
이 영화를 보고 놀란 점은 설경구 배우가 맡은 정약전이 극을 전체적으로 지배할거라는 예상과 달리 창대의 얼굴이 영화를 표현한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그걸 살린 변요한 배우의 연기력도 좋았지만 지표가 되는 시나리오와 연출이 좋았던 것도 무시할 수 없는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초반에 창대의 눈빛에서는 세상이 나를 인정해주지 않는 것에 대한 원망과 분노가 느껴졌습니다.
이준익 감독의 청년 시절을 보면 어떤 곳에 지원하든 모두가 하는 말이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라는 냉대 뿐이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이준익 감독은 20대 초반부터 30대 중반까지 세상에 대한 적개심으로 살았다고 회고합니다.
어찌보면 이런 애환을 경험했기에 창대의 감정이 단순히 설정이 아닌 진심으로 다가왔던게 아닐까요?
- 미국영화에 대한 적개심 -
창대는 정약전을 사학을 배운 인물이라서 경계합니다.
이걸 보며 정약전은 "주자는 참 힘이 세구나"라고 쓴웃음을 짓죠.
극중 정약전은 천주교의 이치와 조선의 전통이 충돌하는 순간, 배교를 결심합니다.
정약전 또한 창대와 비슷한 생각을 가졌던 때가 있었고 자신의 과거를 눈앞에서 보면서 비로소 당시의 자신이 어땠는지를 실감하게됩니다.
사람은 지금의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없지만 타인을 통해서 그 모습을 발견하는 것처럼 말이죠.
이준익 감독은 영화광고로 영화계에 입문했었고 당시에 잘 나갔습니다.
정작 미국영화(직배영화) 광고로 먹고살았지만 미국영화 반대 운동을 하는 자기모순이 있었다고 합니다.
마치 극중 서학과 전통 사이에서 고민했던 정약전의 모습이나 처음에는 서학을 배척했던 창대의 모습이 마치 미국영화 반대 운동을 하면서 미국영화 광고로 돈을 벌었던 시절의 이준익 감독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다보니 극중 정약전이 창대를 바라보며 쓴웃음을 짓는 장면은 마치 지금의 이준익 감독이 과거의 자신을 마주보면서 하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 셰익스피어 서문에 아리스토텔레스가 극을 만드는 6대 요소에 대해 말한 걸 써놓은 게 있더라고. 플롯, 캐릭터, 스펙터클 등등. 여기서 꽂힌 거는 소트, 사상이야. -
<키드캅> 흥행 실패 이후 이준익 감독은 외국영화 수입 / 배급으로 활동영역을 바꿨습니다.
그 기간동안 국내에서 보기 힘든 다양한 해외 작품들을 접했고 여기서 영향받은 부분을 작품에 실현시키는 시도를 합니다.
그 과정 속에서 어설픈 흉내보다 자신만의 세상을 보여주기로 결심을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왕의 남자>를 만들면서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을 보고 자신의 영화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깨달았다고 합니다.
후반부에 정약전은 창대에게 서학이나 성리학이나 대립하는게 아닌 서로 같이 가는 학문이라고 합니다.
어찌보면 미국영화에 대한 적개심을 가졌던 입장에서 미국영화에서 쓰이는 기법을 배운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느껴질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이준익 감독은 다양한 국가의 작품을 통해서 좋은 것을 본받아 자신의 영화에 도입하게되었습니다.
극중 정약전이 서학이든 성리학이든 좋은 것은 모두 가져오자는 주의는 어찌보면 이런 감독의 경험에서 나온게 아닌가라는 생각도 듭니다.
이 영화는 그동안 이준익 감독이 살아온 경험과 감정이 묻어있기에 그만큼 깊으면서 진실되게 다가온게 아닌가싶습니다.
예전에 이준익 감독은 "나이 먹은 것은 훈장이다"라는 발언을 한 적이 있습니다.
이 말이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된다고 볼 수 없지만 <자산어보>를 보고나면 적어도 이준익 감독에게만큼은 이 말이 적용된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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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영화 해설가 해야게씁니다
껄껄껄 X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