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이의 아내> 후기 - 내면을 집어삼킨 환영의 시대
<스파이의 아내> 보고 왔습니다.
아시안, 특히 일본 호러에 트라우마가 있어서 구로사와 기요시의 작품은 처음입니다.
그래서 그보다는 각본을 맡은 하마구치 류스케의 이름에 좀 더 끌렸던 것 같아요.
2년 전 본 하마구치 류스케의 영화 <아사코>는 포스트 311의 정신 세계를 이보다 독특하게 그려내기 어렵다고 생각할 정도로 빼어난 작품이었습니다.
훨씬 민감한 소재를 두고, <스파이의 아내>에선 어떤 식으로 극을 풀어나갈지 궁금했어요.
제작진을 보고 결코 평면적인 에스피오나지 영화일 것이라곤 생각하지 않았으나
이 소재를 이렇게 다룰 수 있다는 것에 새삼 놀라웠네요.
많은 부분이 의뭉스러운 영화입니다.
명확한 설명이 필요한 부분을 소위 떡밥으로 채우는 끝에,
설사 어떠한 것이 진실로 드러날 지라도 '이것이 과연 진실이 맞는지' 관객마저도 의심하게 됩니다.
관객의 입장에서 믿을 수 밖에 없는 그러나 의구심이 갈 수 밖에 없는 상황을, 성실하고도 영민하게 만들어낸 하마구치 류스케의 각본이 정말 훌륭했습니다.
영화를 보다보면 왜 영화의 제목이 '스파이'가 아니라 <스파이의 아내>인지 서서히 인지하게 됩니다.
아내인 사토코의 관점에서 극이 전개되기 때문에, 관객은 사토코와 동화되어 믿을 수 밖에 없어요.
그리곤 영화가 의심의 눈초리를 몇몇 인물에게 보낼 때, 관객 역시 의구심이 갈 수 밖에 없습니다.
마치 혼란과 광기의 시대에선 의심만 가득하다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처럼요. 이러한 시대에 무엇을 믿을지는 각자가 선택하게 되는거죠.
이렇게 직조해낸 당시의 시대상은 정말 위선 그 자체입니다.
국가 단위에서 다른 인간에게 반인륜적인 행위가 당연하게 행해지던 끔찍한 시대였어요.
그러나 영화 속 일본의 사회는 군국주의 망령의 흔적만 남아있을뿐, 모여서 단편 영화를 찍으며 희희낙락하고 있죠. 수백 km 밖에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인지하지 못한채로요.
잠에서 깨어나 스스로의 믿음에 따라 행동하는 이들조차 결국 위선의 늪에 빠져버립니다.
무엇을 믿을지는 선택할 수 있으나, 시대를 감안하면 그 모두가 하나의 거대한 '환영'에 가깝습니다.
일련의 사건을 통해 인물들의 믿음이 신기루처럼 사라지면서 내면을 잠식하는 과정이 <스파이의 아내>에서 가감없이 묘사됩니다.
이 과정에서 인물의 내외적인 변형을 정말 훌륭하게 묘사한 '스파이의 아내' 아오이 유우에게 찬사를 보냅니다. 타카하시 잇세이도 훌륭했지만, 이 영화는 결국 아오이 유우의 영화일 수 밖에 없네요. 사실 그녀의 영화는 이번이 처음인데, 연기력이 놀라웠습니다.
(스포일러 포함한 부분은 가려 놓았습니다)
주인공 사토코와 남편 유사쿠가 가치관의 충돌을 일으키는 장면이 흥미로웠어요.
모든 것이 의심이 가는 영화에서 선명하게 진실된 목소리처럼 느껴졌거든요.
그러나 사토코도 결국 위선자입니다. 개인의 행복을 중요시하지만, 그 과정에서 외조카의 인생은 무자비하게 짓밟아버리죠. '희생'이라는 미명 하에요.
사토코의 관점에서 전개되는 만큼, 관객은 사토코와 함께 생각하게 됩니다. 사토코처럼, 개인의 행복과 집단의 정의는 같이 갈 수 있다고 믿게 됩니다. 남편과 함께라면 그 둘 모두를 달성할 수 있을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종국에 이르러 그것은 큰 착각이었음이 드러나죠.
광기의 시대에서 환영을 쫓은 위선자에겐 허무함만 남게 됩니다.
유사쿠 역시 위선자입니다. 정의를 우선하지만, 결국 그 과정에서 소위 '대의를 위한 희생'을 치뤄야 했습니다. 자가당착에 빠지게 되는거죠.
부인을 배반한 유사쿠도 뜻을 이루었을까요?
영화는 사토코의 정서와 서사에 더욱 초점을 맞추기 때문에 유사쿠의 허망함은 담아내지 않지만, 시대적 배경을 감안하면 그 역시도 사토코와 같은 처지로 끝을 맞이했음이 분명합니다.
유사쿠는 위에서 언급한 부인과의 설전 장면에서 '이 자료를 미국에 가지고 가면 미국이 참전하여 일본은 패망할 것이다'라고 말하죠.
그러나 자신은 일본 패망을 목도하지 못하고 허무하게 생을 마감하는데다,
미국에 가져가면 '보편적인 인간의 정의'를 이룰 수 있다고 믿었던 731 부대 관련 자료는
도리어 일본과 미국의 합의 끝에 묻혀서 오랫동안 수면 아래에 가라앉아 있었습니다.
관련자들은 처벌받지 않고 오히려 떵떵거리면서 잘 살았죠.
끔찍한 현실을 담은 필름을, 단편 영화라는 낭만으로 덮는 아이러니.
역시, 광기의 시대에서 환영을 쫓던 위선자에게 허락된 것은 허무함 밖에 없습니다.
끔찍한 현실을 낭만으로 뒤덮는 시대.
끔찍한 현실을 외면하고 환영을 쫓는 시대.
뭔가 기시감이 들지 않나요.
현대 일본은, 과거의 잘못은 위대한 성취와 화려한 낭만으로 덮어버리고 오로지 이상만을 꿈꾸는 집단 최면에 갇혀 있습니다.
당장 올해만해도 그렇죠. 후쿠시마의 잔상이 아직도 선명한데 '먹어서 응원하자'라는 모습이 소름끼치기까지 합니다.
하마구치 류스케는 <아사코>에서 관객에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당신은 이상에 취해서 살 것인가? 잠에서 깨어나 불안과 불신을 가득 담은 세상에서 살아나갈 것인가?'라고 묻습니다.
<스파이의 아내>에선 비록 각본만 맡았지만, 질문하는 것은 상당히 비슷하다고 느껴지네요.
다시 한번 '환영의 시대'에 살고 있는 현대 일본에게 경종을 울리는 작품입니다. 추천해요.
★★★★☆
추천인 17
댓글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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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경화가 심각해진 일본에 기요시 같은 명감독이 양심의 소리를 내준다는 것이 그저 반가울 뿐입니다.
큐어, 회로 이후 이분 작품을 보지 못했는데 꼭 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