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가위 리마스터링 감상평] - 화양연화
불현듯 엄습하는 농밀한 감정
치명적이다.
계단, 벽, 담배 연기, 국수, 소나기, 그리고 전화 어느 것 하나 놓치지 않고 모든 부분에서 혼이 담긴 감성을 보인다. 0과 1로 이루어진 디지털 세상이 아닌 날 것 그대로의 아날로그적인 감성. 보통의 것이라면 이조차 호불호가 어쩌고저쩌고 할 텐데 [화양연화]만큼은 그런 게 없다. 분명히 날 것 그대로를 담았을 뿐인데 미치도록 아름답고 치명적이다.
첫 경험이다.
이런 영화는 처음 겪어본다. 짙은 안개 속에서 보이지 않는 서로를 더듬으며 정사를 다루는 그런 느낌이다. 단 하나의 손짓조차도 아름다우며, 배경으로 깔리는 자욱한 연기와 그들을 받쳐주는 단단한 벽과 목소리가 하나가 되어 완벽한 조화를 이룬다.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불륜’이라 부르는 이 진흙탕에 소심한 듯 혹은 과감한 듯 몸을 담그는 두 남녀를 보고 있자니 사랑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다. 어떤 결과를 맞이할지 눈에 훤했지만, 그 과정을 지켜보며 언제부터 심장이 두근거렸는지 알 수 없을 만큼 ‘사랑’이라는 감정이 내 가슴에 엄습했다.
역설적이다.
‘불륜’이라는 더럽고 추악한 불편한 이야기가 이토록 낭만적이라니 역설이다. 마치 시 같은 영화였다. 느린 호흡에 규칙적인 리듬을 갖고 운율을 보인다. 짧은 몇 마디의 시가 평생을 가슴에 내려앉아 회자되는 것과 같이 [화양연화] 역시 그렇다. 이 짧은 99분이 주는 여운이 아직도 잊히지 않고 오히려 짙어진다.
노래가 들리자.
남자는 짙은 담배 연기를
공기 중에 마구 흩뿌리며,
여자는 전화는 건다.
비가 내리자.
두 남녀가 마주한다.
또다시
노래가 나오자.
두 남녀는 하나가 되어간다.
노래가 멈추자.
남자는 자신의 이야기를
오래된 유적지에 담아두고,
여자는 떠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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