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치콕/트뤼포' - (우리 시대의) 영화란 무엇인가
'영화란 무엇인가'라는 일곱 글자는 씨네필들에게는 오랜 이야기꺼리다. 영화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마음껏 발산하며 그토록 좋아하는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밤새도록 할 수 있게 만든다. 그렇다면 대체 영화란 무엇일까? 이 질문에 사람들은 저마다 생각을 말한다. 하지만 그들 중 누구의 대답도 '영화'라는 두 글자를 온전히 정의내릴 순 없다. 사람은 다양하고 그 다양한 사람은 환경과 생각에 따라 그것이 담긴 이야기를 쓰고 영화로 담아내기 때문이다. 심지어 우리는 한 사람의 영화감독이 가진 세계에 대해서도 온전히 정의내리지 못한다. '갱스터 영화의 거장'같았던 마틴 스콜세지는 여러 편의 음악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다. '가족의 이야기를 따뜻하게 담는다'고 생각한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비극적인 환경에 빠진 아이들이나 리얼돌과 사랑에 빠진 남자의 이야기를 만들었다. '잔혹하고 기괴한 영화' 전문이라고 생각한 박찬욱이 멜로영화를 만드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한 사람의 감독에 대해서도 섣불리 정의내리기 어려운데 심지어 영화라는 거대한 예술세계를 정의내릴 수 있을까?
프랑스 누벨바그의 기수였던 프랑소와 트뤼포는 '까이에 뒤 시네마'의 저명한 영화평론가였다. 그는 알프레드 히치콕의 영화에 깊은 애정을 드러냈으며 그에게 일주일의 인터뷰를 제안했다. 이미 할리우드를 접수해 '서스펜스의 거장'이라는 칭호를 얻은 알프레드 히치콕은 트뤼포의 제안에 흔쾌히 응했고 두 사람은 일주일동안 매일 오전 9시부터 6시까지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이 대화는 '히치콕 트뤼포'라는 책으로 출간됐고 이름만 대면 알만한 현대영화의 거장들은 모두 이 책으로 영화에 입문했다. 두 사람의 대화는 꽤나 세세했다. 히치콕의 영화에서 빛과 어둠은 어떻게 구성했고 촬영과 편집, 배우와 관계, 대사 등등. 말 그대로 '영화의 모든 것'에 대한 대화를 주고 받았다. '영화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거장이 된 노년의 영화감독과 젊고 총명한 평론가 겸 신인 영화감독이 그토록 오랜 시간동안 대화를 나눴다. 그렇다면 그들의 대화는 '영화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이 될 수 있을까?
이들의 대화는 영화의 기원으로 접근한다. 무성영화 시대에는 시각적인 것만이 표현의 수단이 됐다. 때문에 미장센은 영화적 언어를 만드는 중요한 과정이 됐고 이는 영화문법의 표준으로 자리잡았다. 이것을 고전적 문법이라고 부를 생각은 없다. 오히려 무성영화 시절의 영화언어는 영화이기에 가능한 문법이다. 타오르는 민중의 의지를 표현하기 위해 사자상을 배치하고 창문과 창문 사이의 풍경으로 대상의 심리를 담아낸다. 영화문법은 시각화 할 수 없는 것을 시각으로 담아낸다. 알프레드 히치콕은 이 같은 작업에 능한 사람이다. 히치콕의 영화에는 강박증을 가진 사람이 등장한다. 히치콕은 강박증을 표현하기 위해 활자를 줄줄이 읊는 대신 카메라와 편집기를 사용한다. 예를 들어 '현기증'에서 스카티(제임스 스튜어트)의 현기증을 표현하기 위해 줌아웃 트랙인을 쓰는 것과 같다. 알프레드 히치콕에 대해서는 '강박증을 이야기로 담아냈다'가 아닌 '강박증을 어떻게 담아냈는가'가 중요하다. 이를 위해 그는 할 수 있는 모든 촬영과 편집을 동원했다.
현재 활동 중인 영화글쓰기 스터디 모임에서 영화 '승리호'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주요하게 등장한 이야기는 플래시백을 과하게 사용하는 이 영화의 표현방식에 대한 지적이었다. 플래시백은 태호(송중기)의 서사를 표현하는 가장 쉽고 편리한 방법이다. 태호는 우주를 떠도는 딸의 시신을 찾기 위해 돈이 필요하다. 그래서 그는 돈에 집착하다. 돈에 대한 강박은 영화적으로 표현하기 정말 좋은 소재지만 '승리호'는 플래시백으로 퉁쳐버린다. 히치콕의 영화는 긴 설명이 없이 촬영과 편집, 조명만으로 인물에 대해 온전히 설명한다. 그 역시 쉬운 방법을 모르진 않았을텐데 많은 것을 함축할 수 있는 길을 택하고 그것을 위해 고뇌한다. 마틴 스콜세지의 말처럼 히치콕의 영화는 '시(詩)'와 같다. 간결한 언어로 많은 것을 담고 표현한다. 히치콕의 영화는 철저하게 시각적이다. 그는 시각적인 장치를 통해 시각으로 담아낼 수 없는 것을 담아낸다. CG도 없던 시절에 말이다.
한때 배우의 연기에 대해 깊게 생각한 적이 있었다. 오래전 '지옥의 묵시록'을 극장에서 보다가 눈 뜬 채로 가위 눌린 경험을 하고 나서다. 그때 나를 압도한 장면은 말론 브란도가 지긋이 카메라를 응시하는 장면이었다. 그 경험을 한 후 오랫동안 생각해봤지만 "대체 그 장면에서 말론 브란도가 뭘 했지?"에 대한 답을 찾기 어려웠다. 얼마 뒤 '무릎팍도사'에 출연한 유지태가 '올드보이' 촬영 당시 에피소드를 들려주는 장면이 있었다. 당시 유지태는 극 중 이우진이 연기하는 요가자세를 실제로 하기 위해 오랫동안 연습했지만 도저히 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박찬욱 감독에게 고민을 털어놓자 박찬욱 감독은 "피아노줄 걸면 돼"라고 답했다. 이후 그는 유지태에게 "그냥 연기해"라고 주문했다. 박찬욱 감독은 유지태에게 진한 메소드 연기를 주문한 적이 없다. 그제서야 나는 말론 브란도가 그 장면에서 뭘 했는지에 대한 답을 찾았다. 그는 분장과 조명, 카메라, 편집, 미술, 상대배우 등 프레임 안의 모든 것에 기대어 연기를 했다. 누군가는 '포스', '아우라'라는 말을 하겠지만 그런 추상적인 것을 믿지 않는 입장에서 좋은 연기의 답을 찾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좋은 연기는 배우 혼자서 다 하는 연기가 아닌 스탭과 연출, 상대배우와 어우러지며, 그들에게 기대서 만드는 연기다. 영화는 혼자서 만들 수 없듯, 캐릭터도 혼자서 만들 수 없다.
알프레드 히치콕은 배우들과 사이가 좋지 않기로 유명했다. 제임스 스튜어트나 잉그리드 버그만, 킴 노박 등 당대의 스타들을 캐스팅하면서 그들을 철저하게 자신의 통제하에 뒀다. 배우들이 자신의 통제에서 벗어나려고 한다면 그는 배우들과 갈등을 일으켰다. 히치콕은 자신의 연출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 그는 "빛을 받기 전에 배우는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말을 했다. 하나의 인격체로써 배우는 존재하지만 영화 안에서 배우는 철저하게 영화의 일부가 돼야 한다. 히치콕은 영화감독이라는 직업이 영화의 책임자임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배우들에게 "내가 책임질테니 내 영화의 일부가 돼라"고 요구하고 있었다. 그가 배우들을 대하는 방식이 다소 과하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영화를 정의내리는데 있어서 그의 방식은 매우 중요하다. 빛과 어둠을 조율하고 시선을 정한 다음 그 안에서 배우들을 움직이게 하는 일. 이는 영화의 모든 것이다.
'승리호' 얘기에 이어서 2021년의 영화에서 히치콕의 정의는 통할 수 있을까? 코로나19로 극장산업이 재편되면서 영화는 중대한 도전을 받고 있다. 알프레드 히치콕은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둔 감독이다. 즉 그의 방식은 대중들에게 통용되고 있었다. 이는 강박증을 기반으로 한 서스펜스의 영향이지만 결국 강박증을 어떻게 담아냈는가에 기인하기도 한다. 우리는 '현기증'이 개봉했던 1958년보다 더 편리하고 발달된 세계에 살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현기증'만큼 영리한 영화를 볼 수 있을까? 기술이 편리해진 만큼 표현도 편리해졌다. 이제는 누구도 히치콕과 같은 고민을 하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히치콕과 트뤼포의 시대는 그들의 죽음과 함께 막을 내렸을지도 모른다.
알프레드 히치콕은 1980년 4월에 사망했다. 그가 죽고 4년뒤 프랑수아 트뤼포도 향년 52세에 숨을 거뒀다. 두 사람은 일주일간의 대화 이후에도 끊임없이 편지를 주고 받으며 대화를 이어갔다. 다른 나라에서 다른 영화를 만들던 두 감독의 교류는 많은 영화학도들에게 자극을 주는 유산이 됐다. 영화 '히치콕 트뤼포'에서 인터뷰에 참여한 데이빗 핀처, 마틴 스콜세지, 웨스 앤더슨, 리차드 링클레이터, 올리비에 아사야스, 제임스 그레이, 구로사와 기요시, 피터 보그다노비치, 아르노 데스플레셍, 폴 슈레이더는 그 유산으로 태어난 감독들이다. '영화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은 영화를 사랑하고 연구하고 만드는 자들이라면 끊임없이 가져야 하는 물음이자 숙제다. 때문에 우리 시대의 '히치콕 트뤼포'가 필요하다. 영화를 보고 난 후 나는 썩 행복한 상상을 했다. '봉준호 감독이 마틴 스콜세지에게 인터뷰를 제안한다. 두 사람은 할리우드 모처에서 만나 일주일간 영화에 대한 대화를 원없이 주고 받는다'. ...그런 책 나오면 수단과 방법 안 가리고 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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