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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검은 사제들' 초간단 리뷰

수위아저씨
2808 3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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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원작이 있는 걸 보는 일은 불행하다. 특히 원작을 이미 본 상태라면 새롭게 만들어진 작품이 원작과 비교되는 일은 외나무다리의 결투처럼 피할 수 없는 숙명과 같다. 대학로의 작은 극장에서 공연하는 뮤지컬을 거대자본이 투입된 영화와 비교하는 일은 분명 가혹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 '검은 사제들'은 개인적으로 큰 의미가 있는 작품이기 때문에 뮤지컬 '검은 사제들'을 원작과 비교하는 일은 불가피한 운명과 같다. 

 

2. 영화와 공연은 분명 다르다. 공간의 제약이 생길 수 밖에 없고 캐릭터의 연속성을 유지해야 한다. 촬영하는 순간에만 캐릭터로 살아야 하는 게 영화라면 공연은 2시간 동안 다른 세계의 다른 캐릭터가 되는 일이다. 뮤지컬 '검은 사제들'이 공간의 제약을 해결하는 방법은 대단히 멋지다. 공연이 시작되면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에서나 봤을법한 초현실적인 무대가 관객을 압도한다. 그곳은 가톨릭 성당이 될 수도 있고 명동거리가 될 수도 있다. 그리고 구마의식을 벌이는 좁고 습한 방이 될 수도 있다. 초현실적인 특징 때문에 이 공간은 무한한 가능성을 갖는다. 그래서 이 공연에는 '암전'이 없다. 시간이 흘렀다던지 공간이 바뀌었음을 노래로 이어가면서 초현실적인 공간의 특성을 극대화한다. 애시당초 무대공연에서 리얼리티를 추구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3. 영리하고 세련된 공간은 몇 가지 기가 막힌 장면을 연출한다. 프레임의 경계가 없는 무대를 보고 있음에도 프레임이 느껴지고 그 사각형 공간 안에 흡사 이명세 영화에서나 봤을 법한 장면이 연출된다. 특히 최부제(김찬호)가 향로를 들고 걷는 장면은 조명으로 스모그 연출을 극대화해 대단히 멋진 장면으로 연출된다. 그 밖에 조명과 그림자를 적재적소에 잘 활용하면서 초현실적인 공간과 어울리는 초현실적인 장면이 만들어진다. 무대공연을 보면서 이토록 강렬하게 시각적 만족을 느낀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다. 

 

4. 반면 대중적으로 만들어진 노래들은 이 작품의 단점이다. 대학로 공연이고 불특정 다수에게 공연되는 만큼 노래가 대중적인 것은 불가피한 일이다. 가톨릭 성가 스타일로 모든 노래를 만들었다가는 작품이 망할지도 모를 일이다. 때문에 다른 뮤지컬에서 봤을 법한 대중적인 노래들에 불만을 제기할 수는 없다. 다만 딱 두 번 등장하는 댄스곡은 심히 거슬린다. 최부제의 첫 등장 장면과 성 프란치스코의 종을 찾으러 가는 장면에서 등장하는 노래는 작품 전체의 무드를 해친다. 아무래도 전반부를 경쾌하게 끌고 가다 후반부에서 몰아치려고 한 모양이다. 영화는 구마의식 장면에서 막강한 힘을 가졌기 때문에 전반부에 다소 무게감이 생겨도 대비효과를 이끌어낼 수 있다. 뮤지컬의 구마의식 장면의 화려하고 묵직한 연출을 생각한다면 전반부가 이 정도로 경쾌하지 않아도 충분했다. 돼지를 처음 데려갈 때 나오는 노래도 좀 거슬렸지만 그건 용서하자. 극의 전체 분위기를 지금보다 더 무겁게 끌고 가도 좋았을 것 같다. 어차피 이건 오컬트 호러가 아니던가. 

 

5. 인물을 구성하는데도 다소 변화가 있다. 영화와 뮤지컬의 가장 큰 차이점은 최부제의 과거 서사에 비중을 크게 두고 있다는 것이다. 최부제는 어린 시절 여동생이 큰 개에 물려 죽었을 때 두려워서 도망쳤다. 이는 영화에도 언급된 부분이지만 비중있게 다루지 않는다. 김신부(송용진)의 서사도 비중이 더 커졌다. 다른 것보다 김신부가 꾸는 악몽까지 직접 표현해내면서 그의 내면으로 파고든다. 두 인물의 비중이 커진 만큼 줄어든 부분도 당연히 존재한다. 영화이기 때문에 필요한 배경 장면이나 영화이기에 연출이 가능한 장면들은 대부분 제거됐다. 그리고 꽤 재미있었던 삼겹살집 장면도 제거됐다(삼겹살집에 돼지를 끌고 오는 건 중대사항입니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영신(김수진)의 비중이 꽤 줄었다. 

 

6. 영화 '검은 사제들'의 구마의식 장면은 영신(박소담)의 역량이 압도적이다. 영화 속 김신부(김윤석)의 대사인 "영신아, 네가 다 했다"라는 말은 비단 구마의식만 하는 말이 아닐 것이다. 뮤지컬 속 구마의식은 최부제와 김신부가 영화보다 큰 비중을 차지한다. 그리고 영신이 혼자서 다 했던 역할은 4명의 앙상블이 함께 한다. 무대에서 악령을 시각화하는 것은 영화보다 더 화려해야 한다. 영화에서처럼 분장으로 만들면 객석 맨 뒷자리는 안 보이기 때문이다. 영신을 연기한 김수진 배우는 벽까지 기어오르면서 악령 들린 모습을 잘 연기했다('엑소시스트'인 줄 ㅎㄷㄷㄷ). 그러나 이야기의 구조에서 영신은 영화보다 돋보이지 않는다. 배우의 연기가 문제가 아니라 이야기 구성의 문제다. 무대공연의 특성상 영화처럼 영신을 연출할 수 없었던 점이 그녀의 비중을 줄이게 된 것으로 보인다. 

 

7. 결론: 만약 영화에 대한 기억을 지우고 이 뮤지컬을 봤다면 "아주 재미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영화와 비교하게 되는 이상 아쉬운 점이 생길 수 밖에 없다. 이것은 원작을 가진 작품이 안고 가야 하는 숙명과 같다. 뮤지컬은 영화가 채워주지 못한 스펙타클을 안겨주긴 하지만 영화의 짜임새와 분위기를 확보하진 못한다. 영화와 떼어놓고 본다면 뮤지컬 '검은 사제들'은 분명 매력적인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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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티라미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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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등
노래와 구마의식 장면이 가장 궁금하더라고요
00:26
21.03.07.
2등
은철이
삭제된 댓글입니다.
00:26
21.03.07.
profile image 3등
영화와 달리 암전없이 퇴마 분위기를 연출했다는 것이 궁금하네요.
02:22
21.03.07.
profile image

근데 영화를 안 보면 서사를 이해하기가 어렵죠. 원작과 비교하는 재미가 있기는 한데 영화보다 짧은 러닝타임에 많은 부분이 삭제되게 아쉬워요. 알앤디답지 않게 넘버가 너무 무난하고 순한맛이라서 중독성이 없어요ㅋㅋㅋ

11:02
21.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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