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야와 마지막 드래곤> 후기 - 거대한 야심 못지 않은 만듦새
디즈니 신작 <라야와 마지막 드래곤> 보고 왔습니다.
20년전 개봉된 디즈니의 애니메이션 <뮬란>은
처음엔 이머징 마켓인 중국의 돈을 쓸어담기 위한 심산으로 기획된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저를 포함한 많은 아시아 아이들에게 '나와 닮은 캐릭터가 영화에서 활약한다'라는 색다르고도 즐거운 느낌을 주기에 충분한 작품이었어요.
신작 <라야와 마지막 드래곤>은 이러한 <뮬란>의 연장선상에 있는 영화입니다.
지지부진했던 00년대를 지나 <겨울왕국> 시리즈의 메가 히트로 자리를 잡은 디즈니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는
요즘 <모아나>를 필두로 여러 문화의 다양한 이야기를 작품 안에 담아내려는 데에 집중하고 있는 듯 보여요.
<라야와 마지막 드래곤> 말고도 올해 남미 지역을 배경으로 한 디즈니 애니메이션이 개봉 준비 중이지요.
기획 의도가 무엇이 되었든 앞서 <뮬란>에서 증명한 것처럼, 디즈니 콘텐츠의 문화적 파급력이 로컬 아이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어마어마할 것입니다.
어찌보면 거대한 야심을 가진 프로젝트라고 할 수 있어요.
다행히 <라야와 마지막 드래곤>은 이런 야심의 크기 못지 않은 만듦새를 갖추고 있습니다.
각본 단계에서부터 베트남과 말레이시아계가 참여했으며, 실제로 제작진이 동남아시아 지역을 탐방하며 여러 자료를 수집하는 노력을 했다고 들었어요.
작품의 전체적인 테마는 인도네시아 느낌이 나면서도, 중간중간 베트남 등 동남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레퍼런스를 따온 것 같습니다.
주인공의 무기를 보니 액션 동작은 필리핀 무술인 칼리 아르니스를 참고한 것 같네요.
현지 문화에 진중하게 접근하려는 이런 시도는 분명 칭찬할 만했어요.
존중따윈 개나줘라는 비호감 일변도의 <뮬란> 실사판과는 사뭇 달라서 좋았습니다.
기본적인 태도뿐만 아니라 이야기나 기술적인 성취도 훌륭해요.
'믿음에 대한 믿음'을 굳건히 견지하는 모습이 우스꽝스러울 때도 있지만
혐오가 혐오를 낳는 이 시대에 가장 필요한 이야기이라고 느끼기 때문에 그 울림은 생각 이상으로 컸으며,
그 필요한 이야기를 흥미진진한 모험담과 결부시켜서 진부하지 않게 건넵니다.
역시나 디즈니답게 비주얼도 굉장히 뛰어났어요.
다양한 테마의 배경도 웅장하고도 예쁘게 그려져서 좋았고, 용들이 뛰어댕길때는 정말 황홀의 극치였네요. 액션 연출도 상당했구요.
제임스 뉴튼 하워드의 로컬 풍 음악도 장면장면을 멋지게 장식합니다.
성우들도 좋았어요.
주인공만큼은 동아시아계 배우를 캐스팅하지않고 동남아시아계 배우인 켈리 마리 트란을 캐스팅한 것이 굉장히 마음에 들었습니다.
이 배우는 <라스트 제다이>를 나름 좋게 본 저조차도 정치적 올바름을 위해 억지로 끼워넣은 듯한 느낌이 들었던 로즈 티코 캐릭터의 아쉬움을 뒤로 하고
멋진 서사를 갖춘 '라야' 캐릭터로 다시금 발돋움할 것 같네요 :)
젬마 찬, 산드라 오, 다니엘 대 김, 베네딕트 웡 심지어 성강 등 가히 아시아계 올스타 느낌의 성우진을 구축했는데(이 와중에도 리얼 현지 출신인 헨리 골딩은 참여하지 않은 것이 의외였네요)
그 중 탑 오브 탑은 단연 아콰피나입니다.
그냥 어떤 천장이든 다 깨부술 수 있는 스타네요. 어디에 있든 가장 큰 존재감을 내뿜는 배우입니다.
<더 페어웰>과 <라야와 마지막 드래곤>을 연달아 보고 나니 진심으로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 드네요.
영화의 배경이 동남아시아 지역이다보니
공교롭게도 보는 내내 현재 미얀마의 상황이 계속 오버랩되었어요.
믿음의 땅 '쿠만드라'의 어느 지역이, 지금 이 순간엔 다시 믿음이 필요한 땅이 되었습니다.
막강한 화력과 군홧발 앞에 꿈도 희망도 없는 싸움이라고 느껴질 수 있겠지만,
분연히 일어나 마치 영화에서처럼 희망 가득한 세상을 만들어나가길 타국 땅에서 응원합니다.
★★★★
추천인 8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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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즈니가 한국 전통 문화에도 좀 관심 가져줄날이 올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