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나리> 후기 - 싱그러운 흙내음과 따사한 봄햇살, 그리고 한숨.
화제작 <미나리> 보고 왔습니다.
예전에 호주에 있을때 한인 노부부집에서 하루 알바를 했던 적이 있었어요.
일을 마치고 시내로 돌아가기 전에 잠깐 식탁에 앉아 이야기를 나눌 시간이 있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같이 일했던 누군가가 그 부부께 처음 호주에 와서 힘드시지 않았느냐고 여쭤봤는데
부인분께서 한숨을 푹~쉬시면서 처음 힘들었던 때의 썰을 푸셨던 기억이 납니다.
영화 <미나리>는, 바로 그 노부부의 한숨에 대한 영화입니다.
싱그러운 흙내음과 따사한 봄햇살이
마치 80년대 낯선 미국 땅에 발을 딛은 한인 부부가 꿈꾼 '아메리칸 드림'을 장식하듯 화사하게 화면을 꾸미지만
기저에 깔려있는 정서는 감히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막막함과 두려움의 연속입니다.
익숙한 곳에서 벗어나 새로운 출발을 하는 마음은 누구나 다 그러지 않겠느냐만
먹여 살릴 가족이 곁에 있다면 한숨의 깊이는 더욱 깊지 않았을까 싶어요.
영화는 시청각적으로 굉장히 따뜻하게 그려지지만,
극 중 가족이 마주하는 상황은 결코 따뜻하진 않습니다.
벅찬 상황 앞에서 날카로워진 신경은 자연스레 가장 가까운 이들에게 향하며 생채기를 냅니다.
하지만 오히려 그 베인 상처를 봉합하는 것도 가족의 품임을 <미나리>는 보여주고 있습니다.
<미나리>는 어찌보면 다소 심심한 영화입니다. 드라마틱한 상황이 있음에도 굳이 감정을 드러내려고 하지 않습니다.
대신 따뜻한 말과 농담, 웃음으로 속을 채웁니다(때론 MOUNTAIN의 DEW와 함께...)
영화가 지향하는 바는 다분히 미국적이지만,
이 갈등을 풀어내는 방법은 지극히 한국적이라 언뜻 <남매의 여름밤>과 같은 한국 영화가 생각나기도 합니다.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영화인데 아마 비슷한 경험이 있는 분들께선 그 흙내음마저 생생히 느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다만 영화가 감정의 여운을 미처 매듭짓기도 전에 후다닥 끝내버린 느낌이 들어서 아쉬웠습니다.
아무래도 감독 본인이 투영된 캐릭터이다보니 데이빗의 서사는 괜찮았지만, 상대적으로 누나인 앤은 애매해진 느낌이 들기도 했어요.
연기가 모두 좋았지만, 특히 한예리 배우와 윤여정 배우의 연기는 훌륭했습니다.
윤여정 배우에 관한 이야기를 더 하자면, 괜히 시상식 시즌에 상을 쓸어가는 것이 아니네요.
윤여정 배우의 최고작이라기엔 논란의 여지가 있겠지만, 대표작 중 한 편엔 당연히 들어갈 것 같아요.
<더 파더>의 올리비아 콜먼, <그녀의 조각들> 엘렌 버스틴, <뉴스 오브 더 월드> 헬레나 젱겔, 그리고 <맹크>의 아만다 사이프리드까지
올해 여우조연 카테고리에서 경쟁하는 주요 작품을 다 보았는데 연기 자체로는 윤여정 배우가 충분히 수상할 만한 것 같아요.
더불어 완전한 미국 자본의 영화인데도 자막없이 보는 경험이 신선했습니다.
플랜B와 A24 등 미국의 주요 영화사 로고가 뜬 직후에 완전 본토식 한국어가 나오다니 감회가 새로웠어요.
외국어 등장 빈도로만 치면 이번 외국어 영화상 노미네이트 논란이 무색할 정도로 완연한 한국 영화급이지만,
부디 오스카엔 당당히 작품상 카테고리 안에 이름을 올렸으면 좋겠네요 :)
★★★☆
추천인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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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영화보는내내 울고 웃고 따뜻한 기운을 받아서 극장을 나섰던것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