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미싱 영 우먼] 피해자를 되려 탓하는 사회를 통렬히 비판

촉망받는 젊은 여성은 피해자가 받은 걸 되갚는 통쾌한 여성 복수극 아닙니다. 또는 처절하게 눈에는 눈, 피에는 피로 응징하는 액션 느와르거나 스릴러 추적극 아닙니다. 혹시 그런 것을 기대했다면 실망할 수 있습니다.
상황보다는 심리 묘사가 뛰어납니다. 설정상 튀는 장면이 몇개 있는데, 연결고리가 살짝 느슨한 것을 빼곤 영화 대체로 잘 만들었습니다. 케리 멀리건이 다크호스 마냥 골든 글로브와 오스카 레이스서 급부상했는지 알 수 있을 정도로 연기 좋습니다.
그러나 7년전 어떤 사건 이후 영혼이 까맣게 말라 죽은 듯, 깊고 어두운 눈을 지닌 주인공의 자기파괴적인 모습에 괴로웠습니다. 피해의 성격이나 시대상은 다르지만 마치 베트남전 후유증을 그린 <디어 헌터>를 보고 깊은 수렁에 빠진 듯한 기분을 다시금 느꼈어요. 케러 멀리건의 귀엽고 요정같은 모습에 익숙하다 한순간 확 돌은 사람처럼 눈빛이 변하는 것에 소름이 돋더군요.
어떤 식이던 본인이던 가까운 친지던 간에 영화에 주제인 성폭력 관련 트라우마 뿐만 아니라 군대 및 학교폭력, 왕따 은따 및 인간관계서 입은 상처가 마음 속 깊이 자리한다면 영화 볼 때 각별한 주의가 필요합니다. 영화는 직접적인 피해자가 아닌, 간접적이고 부수적인 피해자의 입장서 바라본 이야기인데, 상처를 극복하지 못한 모습을 보는 것이 괴로울 수 있습니다.
성폭력에 들키지만 않는다면, 나와 내 가족이 피해를 입는게 아니라면, 그저 돌려보며 가쉽처럼 웃고 떠드는 재밌는 경험담으로 치부하는 것 자체가 소름이 돋는데 지금 현실과 별반 다를바가 없습니다.
성폭력 가해자보단 여자가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할 정도로 술에 취한 것이 가장 큰 문제이며, 빌미를 주었기 때문에 그런 일을 당해도 싸다. 여러 남자들과 교제하면 그런 일 당한게 뭐 대수냐, 다 지난 날 어렸을 때 일을 괜히 왜 들추느냐 등등 기가 막힌 말들이 많은데, 영화속 대사는 현실 복사판이였습니다. 여성 인권이 월등한 미국에서도 그 정도 인식이며, 되려 피해자를 책망하며, 남성 성폭행 가해자의 '촉망받는 미래'를 걱정해주는 사회입니다.
결말은 제 맘에 들지 않지만 의외의 연속이며, 있을 법한 현실과 판타지를 동시에 담았습니다. 성폭력를 대하는 사회의 모순적인 태도를 비판하는 감독의 연출과 케리 멀리건의 연기에 박수를 보냅니다. 다만 영화를 본 후 잔상이 좀 오래갈 것 같네요. 익무 초대로 골든 글로브 기획전으로 잘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