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 한국영화 두 편 - <세자매>, <나는 나를 해고하지 않는다>
오늘 <세자매>, <나는 나를 해고하지 않는다> 두 편을 무비싸다구 할인에 힘입어 연속 관람했습니다. 왠지 정말 오랜만에 한국영화를 극장에서 본 것 같네요.
<세자매>는 꽤 좋았습니다.
영화는 각자 매우 다른 삶을 살아가면서 크고 작은 고난을 겪는 자매들의 모습과, 조금씩은 어긋나고 비틀려 있는 그들의 내면을 놀라운 현실감으로 가깝게 비춰준 후, 이야기를 전개시키면서 그들의 내면에 곪아있던 과거의 상처를 차분하게 들춰내고 있습니다.
보는 중에는 좀 혼란스러웠지만 관람 후에는 참 좋다고 느낀 스토리텔링이고, 전반적인 연출도 안정적이었네요. 하지만 역시 가장 큰 기여를 한 것은 배우들이었던 것 같습니다. 세 자매를 연기한 김선영, 문소리, 장윤주 배우를 비롯해 모든 조연급 배우들까지 준수한 연기력으로 영화를 꽉꽉 채웠어요.
장윤주 배우는 <베테랑>에서 코믹한 깨알 조연을 맡아 연기자로 데뷔한 이후 처음 보는데, 그 때보다 훨씬 많은 분량을 개성 있는 연기로 잘 소화했습니다. 괄괄한 캐릭터를 맡아 영화의 유머를 거의 혼자 도맡았어요. 이번 작품에서의 활약도 인상적이었고, 자주 보면 좋겠습니다 ㅎㅎ
문소리 배우는 명불허전이었습니다. 독실하고 자애로운 어머니로서의 이미지와 신경질적이고 표독스럽기까지 한 이미지를 자연스럽고 완벽하게 한 인물 안에 담았습니다. 설명처럼 꽤 이중적인 캐릭터인데, 그 이중성마저 자연히 용서될 정도로 문소리 배우의 연기는 정말 현실적이고 설득력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정말 인상적이었던 건 가장 볼품없고 비참한 삶을 사는 첫째를 연기한 김선영 배우였습니다. 내면이 망가져버리다 못해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듯한 엄청난 폐인 연기를 살면서 몇 번쯤 봤지만, 이 영화의 김선영 배우도 한 자리 차지할 만한 것 같습니다. 그런 인물의 습관이나 말버릇을 참 섬세하게 구현해서 절제된 연기로 풀어내는데, 그걸 보면서 느끼는 불안과 압박감이 상당했습니다. 일상에 위태롭게 매달린 사람을 바로 옆에서 지켜보는 느낌...
세 자매의 이야기는 배우들의 호연에 힘입어 모두 나름대로 쏠쏠한 재미를 주었지만, 별 교집합이 없어보이는 셋을 어떻게 하나의 이야기로 자연스럽게 묶을 수 있을지 궁금하면서 걱정스러웠습니다. 하지만 틈틈이 뿌려둔 복선과 대단원을 통해 이 과제도 나름 성공적으로 완수한 것으로 보이네요.
올해 처음으로 극장 관람한 한국영화는 성공이었습니다. ㅎㅎ
이후 관람한 <나는 나를 해고하지 않는다>는 만족도가 좀 덜했습니다. 원래는 <세자매>보다 기대치가 높았던 작품이었는데요.
우선 두 주연배우들의 연기는 굉장히 좋습니다. 스크린에선 오랜만에 보는 유다인 배우, 이제는 거의 A급에 근접했다고 여겨지는 오정세 배우. 독립영화치고는 꽤 힘있는 캐스팅이네요.
내용을 보면 정직한 사회 고발물입니다. 직장에서의 여성 차별이나 갑질, 따돌림에 대한 문제의식도 종종 엿보이지만, 대체로 하청 기업들과 그 직원들이 겪는 부당한 대우 같은 노동 이슈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 같습니다.
영화에서는 제가 한번도 상상하지 못한... 그런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보지 못한 (ㅠㅠ죄송합니다) 송전탑 보수 작업을 주된 소재로 다루고 있습니다. 너무나 고되고 위험한 작업으로 보였고, 일부 장면들은 배우들이 실제로 소화한 것 같은데 박수를 쳐주고 싶었네요. ㅠㅠ
하청기업에 대한 본청의 갑질 등 문제 의식에는 크게 공감하고 있고, 영화는 어느 정도 효과적으로 그들의 생활을 사실적으로 담아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주제 의식을 강조하는 과정에선 지나치게 직설적이고 다듬어지지 않아 투박한 데가 있습니다.
작중 전개가 다소 뜬금없거나 작위적인 구석이 없지 않고, 영화의 주제를 곧이곧대로 읊어준다고 느껴진 대사도 있습니다. 조용히 문제를 들춰 관객들에게 생각할 여지를 주기보다, 관객보다 먼저 뜨겁게 울고 분노하는 영화입니다.
체감상 영화의 분량 중 8할 가량은 해로운 기업 문화와 부당한 관행에 대한 고발적 메시지로 이어지고, 그렇게 갖가지 고발이 연속되어 피로감을 일으키는 구성은 하나의 이야기로서는 감점 요소에 가깝다고 봅니다. '사이다 없이 고구마만 멕이는 영화'라는 평가가 대충 맞습니다. ㅠㅠ
그리고 예산의 한계 때문인지ㅠㅠ 촬영의 색감과 음향이 다소 불균질하고 특히 음질이 깨지는 부분이 종종 있었던 것도 아쉽습니다. 주연 둘을 제외한 다른 낯선 배우들의 연기도 종종 흔들리는 느낌이 있죠. 한편으로 이런 저예산 영화에 꽤 인지도가 높은 주연 배우들이 참여한 것은 본인들의 의지가 컸을 것으로 짐작되네요.
장편영화로서 세부적인 만듦새가 좀 아쉽다고 느껴서 혹평을 남겼지만, 그래도 이렇게 한국의 노동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을 제기하는 영화는 앞으로 훨씬 많이 만들어져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응원하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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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해요 리키보면서 너무 안타까웠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