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주의] 넷플릭스 '가버려라, 2020년' 간단 리뷰
1. 넷플릭스에서 이 녀석을 처음 만나고 시놉시스를 읽었을 때 "이 녀석은 뭐지?"라는 생각을 가장 먼저 했다. '가버려라, 2020년'은 "미치도록 지겨웠다. 이대로 보내기는 억울하다. 1년간 울적했으니, 이제 한번 웃어나 볼까. 《블랙 미러》 제작자들이 준비한 사상 최고의 황당한 논평. 잘 가라, 2020년."이라는 시놉시스를 가지고 있다. 넷플릭스의 시놉시스는 다소 감정이 격양돼서 거부감이 들 때도 있지만, 이 녀석은 그럭저럭 수용할 수 있는 수준의 시놉시스다. 2020년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가질 감정: "함께해서 더러웠고 다시는 보지 말자"라는 것에 나 역시 공감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괴상한 시놉시스를 가진 정체불명의 영화가 궁금해졌다. 넷플릭스는 다큐멘터리라면 '다큐멘터리'라고 솔직하게 밝히지만 이 녀석은 그것도 아니었다. 게다가 극영화의 모양새도 아니다. '가버려라, 2020년', 원제는 더 살벌한 'Death to 2020'. 대체 이 녀석은 뭘까?
2. 결론부터 말하자면 '가버려라, 2020년'은 일종의 페이크다큐다. 인터뷰를 하고 2020년의 주요 이슈를 돌아보는 다큐멘터리인 척 하지만 다큐는 아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2020년을 돌아본다'는 이슈에는 충실하지만 이 이야기는 가짜다. 인터뷰에 나선 역사학자나 작가, 과학자, 언론인은 모두 배우다. 그것도 누구나 알만한 배우. 우선 첫 장면부터 언론인인 대쉬 브라켓이 등장한다. 제작진이 프로그램의 취지를 설명하자 "대체 그딴 짓을 왜 하는거야?"라고 묻는다. 이 아저씨는 누가 봐도 사무엘 잭슨이다. 만약 KTX를 타고 천안아산에서 오송역을 지날 때 선로 밖에 대쉬 브라켓이 서 있어도 열차 안 승객은 "사무엘 잭슨이다!"라고 소리 칠 정도다. 이 영화의 인터뷰이는 대부분 이런 식이다. 역사학자 테니슨 포스는 입을 열자마자 "휴 그랜트다!"라는 소리가 나오고 IT기업 CEO 바크 멀티버스(이름이 왜 이딴 식인지 모르겠지만)는 누가 봐도 쿠메일 난지아니다. 이들은 인터뷰이로 등장해 2020년에 대한 농담을 해댄다. 페이크다큐라면 실재하지 않는 사건에 대한 진지한 이야기를 하기 마련인데 '가버려라, 2020년'은 실재하는 사건에 대한 농담을 던진다. 마치 2020년이 통째로 거짓말이길 바라는 듯 조 바이든을 남북전쟁 때부터 살았던 노인네로 만들어버리고 영국 여왕(트레이시 울만이 연기한)을 유튜브 관종으로 만든다. 이 프로그램은 이런 식으로 2020년을 보내버린다.
3. 프로그램은 지난해 1월 호주 산불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브렉시트와 ('기생충'이 4관왕 한) 오스카 시상식을 거쳐 중국 우한에서 창궐한 코로나19로 향한다. 코로나19는 당연히 2020년의 가장 큰 사건이다. 이때부터 프로그램은 코로나19와 함께 미국과 영국의 대환장 똥꼬쇼를 보여준다. 코로나19의 흐름을 살펴보면 중국에서 창궐해 미국과 일본에서 만개하고 있다. 프로그램은 일본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지만 글로벌 '탑'을 찍는 미국의 대환장을 비웃는다. 미국의 대환장은 트럼프 정부의 무능함과 위선적인 중산층, 관종끼만 잔뜩 쌓인 젊은층에서 비롯된다. 배우들이 연기한 인터뷰이는 이들을 과장해서 연기하지만 자료화면이 실제 뉴스영상이라 신빙성을 얻는다. 과장은 있을지언정 실제 트럼프 정부는 무능했고 중산층은 '마스크 쓰지 않을 권리'를 외쳤다. 그리고 젊은 SNS 관종들은 '쓸데없는 짓'만 하고 있다.
4. 영국 역시 마찬가지다. 이 프로그램이 영국과 보리스 존슨 총리를 까는 방식은 너무 살벌해서 대륙 건너의 내가 봐도 오싹할 정도다. 프로그램을 보다보면 '트럼프는 봐준거다'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프로그램 내내 보리스 존슨 총리는 무능한 백인남성이다. 건강상태도 안 좋은데다 미국의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 때문에 백인이라는 이미지가 안 좋아서 흑인남성의 몸에 뇌를 이식시킨다. 그러자 사람들은 "저 새끼 체포해"라며 달려든다. 보는 내내 영국인들은 보리스 존슨과 도널드 트럼프 중 누구를 더 똥멍청이로 생각하는지 묻고 싶을 정도다(이 라인업에 몇 명 더 추가하고 싶긴 하다). 영국 여왕 역시 예외없이 까인다. 개인적으로 이 프로그램 최고의 명장면으로 꼽는 게 영국 여왕이 TV와 유튜브 라이브를 통해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면서 "구독과 좋아요 눌러주세요. 아래 링크를 클릭하면 왕실 굿즈를 구매할 수 있어요"라고 말한다. '블랙미러'(영국 프로그램) 제작진이라고 하는데 영국에서 무사할 지 의문이다.
5. 특이할 점은 5월 있었던 조지 플로이드 사망사건에 대해 대단히 비중있게 다룬다는 점이다. 한국에 사는 나에게는 크게 체감이 가는 사건은 아니었지만 미국 내에서는 코로나19를 덮을 만큼의 큰 사건으로 언급된다. 분노한 미국인들은 거리로 나와 시위하고 경찰은 이들을 진압한다. 2020년 5월, 코로나19의 한 가운데에 있다. 프로그램을 보면서 2020년의 미국은 꽤 혼란스러웠다는 걸 알게 됐다. 조지 플로이드 사건이 있었고 할리우드는 PC(정치적 올바름)를 가장 상단으로 끌어올렸다. 그리고 대선이 코앞으로 다가오면서 양극화는 더 심해졌다. 사람들이 거리로 나올 수 밖에 없는 시기다. 여기에 코로나19라는 양념이 더해지면서 풍미를 한껏 끌어올린다. 미국이라는 불판은 맛있는 요리가 돼서 바이러스에 통째로 잡아먹히고 있다. 그런 미국을 바라보는 영국도 브렉시트 이후 대환장 똥꼬쇼의 한 가운데 있다.
6. '가버려라, 2020년'은 미국과 영국을 중심으로 한 이야기다(특히 미국의 비중이 더 크다). 때문에 한국인이 보기에는 다소 거리가 있다. 이 프로그램은 바이든 대통령에 대해 "200살 산 노인네지만 트럼프보다는 나은 사람"으로 보고 있다. 그리고 "백신이 나왔지만 멍청한 미국 중산층은 '거부할 권리'를 행사할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카말라 해리스(현 미국 부통령)가 대통령이 될 지도 모를 2021년은 2020년보다 낫겠지만 장담하기 어렵다는고도 말한다(바이든이 2021년에도 살아있을지 장담 못할 정도로 늙었다는 이야기). 뚜렷한 희망을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암울하지만 더 나은 미래를 위해 꾸역꾸역 살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멍청한 미국 중산층과 정치인들을 설득시켜야 하고 관종들을 정신차리게 해야 한다. 숙제가 많다.
7. 결론: '욕의 품격'에 이어 '가버려라, 2020년'도 미국 중심의 프로그램이다 보니 "이걸 한글패치하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우리의 2020년도 살펴봐야 할 일이 살벌하게 많다. 그리고 정신나간 주변국에 할 얘기도 많다. 미국의 대환장 똥꼬쇼보다는 성숙했지만 우리의 2020년도 대단히 암울했다. 2021년이 더 나아질거라는 보장도 없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우리 역시 숙제를 꾸역꾸역하면서 2021년을 살아야지.
추신) 개그들이 미국식이지만 그럭저럭 웃으며 즐길 수 있다. 그런데 정말 궁금한 건 인터뷰이의 캐릭터 이름에도 뭔가 뜻이 있을 것 같다(바크 멀티버스는 확실히 뜻이 있다). 영어에 취약해 캐릭터 이름에 담긴 농담을 알아듣지 못한 것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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