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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제서' 초간단 리뷰

수위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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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거장 영화감독의 자녀가 꼭 부모와 같은 스타일을 고집하진 않는다. 아니, 대부분 노골적으로 다른 노선을 걷는다. '고스트 버스터즈'와 '트윈스', '유치원에 간 사나이', '에볼루션', '겁나는 여친의 완벽한 비밀' 등 코미디 영화를 연출한 이반 라이트먼의 아들 제이슨 라이트먼은 코미디 영화 '주노'로 처음 이름을 알렸지만 이후 '인 디 에어', '툴리' 등으로 아버지 방식의 코미디에 진중한 성찰을 담았다. 20세기 세계 영화사에서 가장 중요한 한 페이지를 장식한 거장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의 딸 소피아 코폴라는 아버지 영화의 무게감을 걷어내고 가벼운 어조로 세련된 이야기를 담아낸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 자녀들은 부모의 영화를 닮기도 한다. 데이빗 린치의 영화 '이레이저 헤드'에도 출연했던 딸 제니퍼 린치는 20대때 엽기적인 로맨스(feat. 납치, 감금, 신체절단) 영화인 '박싱 헬레나'를 만들었다. 이후 '서베일런스'와 '히스', '체인드' 등 아버지의 기괴함에 장르적 정체성을 더 강하게 입힌 영화들을 내놨다. 그렇다면 데이빗 린치와 함께 20세기 씨네필들의 열정을 불타오르게 했던 데이빗 크로넨버그의 아들 브랜든 크로넨버그는 어떨까?

 

2. 브랜든 크로넨버그의 영화 '포제서'는 아버지 필모그라피의 어느 지점을 떠올리게 한다. 정확히는 '비디오드롬'과 '플라이', '네이키드 런치', '크래쉬', '엑시스텐즈'로 이어지는 순간이다. 그의 영화는 소위 초자연적인 것에 기반을 둔 공포영화나 기계와 인간(유기체)의 경계가 허물어진 기괴한 순간을 담은 영화들이다. 예를 들어 브라운관 속 입술에 얼굴을 파묻는 남자('비디오드롬')나 기계를 거쳐간 뒤 기괴한 모습으로 변해간 남자('플라이'), 팔다리와 얼굴이 달린 유기체가 된 타자기('네이키드 런치'), 자동차의 부딪힘에서 성적 쾌락을 느끼는('크래쉬'), 유기체처럼 꿈틀대는 게임기('엑시스텐즈') 등이다. 마치 기계와 인간을 세포이식하는 것처럼 조립해 기계문명의 기이한 비전을 제시한다. 기계를 매개체로 탐닉하는 인간의 모습은 기술에 대한 욕망이 다른 형태로 발현됨을 보여준다. 크로넨버그의 영화 속 인간들은 기술을 욕망하다. 기술 그 자체에 매몰된다. 

 

3. '포제서'는 아버지의 영화들이 갖는 메시지를 수용하지만 다른 노선을 취한다. 세상이 변했으니 당연한 결과다. 인간들은 더 이상 기계문명에 두려움을 가지고 있지 않다. 기술은 기계를 넘어 그 근원으로 향해간다. 이는 소프트웨어를 기반으로 한 인공지능이며 현실을 왜곡하는 가상현실로 향한다. '포제서'는 사실상 가상현실에 대한 영화다. 다만 이 영화에서는 '가상현실'이 가상이 아닐 뿐이다. 현대사회에서 기술과 인간의 결합은 기계가 아닌 소프트웨어를 말한다. 그렇다면 인간과 소프트웨어가 아버지 크로넨버그의 방식대로 만나면 어떻게 될까? '포제서'가 그 결과물이다. 아버지 크로넨버그가 신체와 기계의 결합으로 기괴한 괴물을 만들어냈다면 아들 크로넨버그는 신체가 담고 있는 의식과 소프트웨어가 결합해 기괴한 '괴의식'을 만들어낸다. 인간성을 상실한 괴기한 의식은 사업수완이 더 좋은 개체를 만들기 위한 목적이다. 이 개체는 회사의 서비스와 인간의 의지가 결합돼있다. 그리고 거대 소프트웨어 기업을 삼키기 위한 욕망도 담고 있다. 

 

4. 크로넨버그 집안의 영화는 기술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시각을 담고 있지만 단 한 번도 안드로이드나 인공지능 그 자체가 등장하진 않는다. '포제서'에서는 데이터 채굴조차도 인간이 직접 한다. 크로넨버그가 인공지능을 몰랐을거라 생각하진 않는다. 다만 아버지의 영화에서도 인간과 기계의 관계를 담고 있지만 로봇이 등장하지 않음과 같은 이치로 그는 인공지능을 등장시키지 않는다. 영화에서 인공지능은 인간성의 반대지점에 있다. SF영화들은 인공지능의 비인간적 모습을 통해 인지하지 못한 인간성을 상기시키도록 한다. 그러나 '포제서'에서는 마치 인간이 인공지능의 영역에 도달하는 것처럼 유능하지만 비인간적이다. 영화에서 거더(제니퍼 제이슨 리)가 타샤(안드레아 리스보로)에게 기대한 것 역시 일에 대한 인간적 연민을 갖지 않는 일이다. '포제서'는 인공지능이 없이도 인간을 나락으로 떨어뜨린다. 여기에는 인간의 의식을 지배한 비인간의 의식이 아니라 타인의 의식이 충돌하면서 이뤄진다. 만약 인류가 종말을 맞이한다면 굳이 스카이넷이 없이도 자기들끼리 3차대전 일으키고 몰락할 것이라는 메시지와 같다. 

 

5. '포제서'는 여러 지점에서 아버지의 영화를 닮았지만 크게 다른 지점도 있다. '욕망'을 담는데 있어 섹슈얼리티를 활용하지는 않는다. 때문에 '포제서'는 아버지 영화의 변태적 지점과 거리를 둔다. 때문에 '포제서'는 좀 더 정돈돼있다. 아버지의 영화들은 기이한 유기체에 변태적 행위가 더해져 더 난잡하고 어지럽다. 이 어지러움은 이 시기 데이빗 크로넨버그의 아이덴티티가 된다. 물론 그는 현재에 이르러 폭력 그 자체에 심취하며 더 중후한 이야기를 영화에 담아낸다. '포제서'는 섹슈얼리티를 배제한 대신 그 자리를 신체절단과 피범벅으로 채워넣는다. '포제서'는 정말 많은 피를 본다. 살인에 주저함이 없고 최소한의 영화적 윤리조차 거부할 정도로 폭력적이다. 이것은 아버지 영화에 대한 다른 의견이다. 쾌락을 탐닉하는 행위는 가장 인간적인 행동이다. 아버지의 영화에서 기계와 인간의 결합은 마치 기계와 섹스를 하는 것처럼 유기적이다. 반면 '포제서'는 소프트웨어와 섹스를 상징하는 행위(정수리에 단자를 심는 행위의 프로이트적 해석)는 비인간적 결과를 향한 것이다. 섹슈얼리티는 거울을 보고 억지로 웃다가 울면서 감정을 소모해버리는 행동으로 표현된다. 그러나 이는 탐닉적이거나 변태적이지 않다. 이는 비인간으로 향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포제서'의 비인간성은 아버지 영화와 다른 결과물이다. 소프트웨어와 기계의 차이는 여기서 드러난다. 

 

6. 결론: 브랜든 크로넨버그의 '포제서'를 아버지 영화에 기인해 해석하는 것은 다소 무리일 수 있다. 이는 마치 소피아 코폴라의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를 아버지의 '대부'에 기인해 해석하는 것과 같다(어쩌면 가능할지도). 그러나 기술과 인간의 관계를 대하는 태도는 아무리 봐도 아버지의 어떤 지점과 닮았다. '포제서'를 좀 더 명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앞서 언급한 아버지의 영화들을 볼 필요가 있다. 다들 재미있는 영화들이고 '포제서'와 닮은 부분, 다른 의견을 내는 부분도 있다. 특히 '비디오드롬'과 '엑시스텐즈'는 '포제서'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텍스트가 될 것이다. 

 


추신) 브랜든도 어릴때부터 아버지 영화를 적잖게 봤을거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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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명성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가 앞으로 과제겠네요.

10:55
21.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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