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름' 초간단 리뷰
1. 나는 파운드푸티지 장르를 좋아한다. 아니, 정확히는 '좋아했다'. 벌써 20년도 더 지난 '블레어윗치'의 센세이션을 기억하며 여전히 "이것이 공포영화의 미래"라고 굳게 믿고 있다. 이 장르가 가져야 할 최대한의 미덕은 "나는 픽션이 아니다"라며 관객을 속이는 일이다. 영화의 모든 표현과 기술은 관객을 속이기 위해 준비했다. 파운드푸티지는 그 목적에 한발 더 다가간 장르라고 믿었다. 그러나 이 녀석의 생명력은 그리 길지 않았다. IT기술이 발달하고 관객이 취득할 수 있는 정보의 양이 늘어나면서 더 이상 진짜인양 관객을 속이기에는 무리가 따랐다. 그래서 더 진화한 파운드푸티지 영화인 '서치'나 '언프렌디드'가 나왔다(나는 '언프렌디드'의 아이디어를 대단히 좋아한다. 수입사가 낮은 관람등급을 받기 위해 빌어먹을 블러 처리만 하지 않았아도 그 영화에 대단히 호의적이었을 것이다). 어디서 듣도 보도 못한 영화 '소름'은 파운드푸티지의 고전으로 회귀한다.
2. 돈이 궁한 비디오 촬영기사 애런(패트릭 브라이스)은 낯선 남자 조세프(마크 두플라스)에게 촬영을 의뢰받고 그의 별장으로 받는다. 조세프는 자신이 시한부 인생이고 곧 태어날 아들에게 남길 영상편지를 찍게 도와달라고 한다. 애런은 일을 수락하지만 촬영을 진행할수록 조세프의 기괴함이 드러난다. '소름'의 이야기는 진짜처럼 포장하기 딱 좋은 소재다. '블레어윗치'의 마녀전설이나 '파라노말 액티비티'의 저주받은 집이 등장할 필요도 없다. '클로버필드'처럼 뉴욕에 괴물이 나타났다는 설정을 할 필요도 없다. 이 이야기는 누가 봐도 어딘가에서 일어날 법한 일이다. 이는 '진짜로 속이기에 딱 좋은 소재'라는 의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대단히 치명적인 실수를 범한다. 이 영화에는 '아는 얼굴'이 등장한다.
3. 파운드푸티지에는 보통 완전 신인배우나 잘 알려지지 않은 낯선 배우를 쓰기 마련이다. 익숙한 얼굴이 등장해 "이것은 영화다"라는 거리감을 두는 일을 막고 관객이 진짜처럼 믿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소름'에서 조세프를 연기한 마크 두플라스는 너무 낯이 익다. 검색해보니 '안전은 보장할 수 없음', '제로 다크 서티', '밤쉘: 세상을 바꾼 폭탄선언', '툴리', '라자루스 이펙트', '타미' 등 영화와 다수의 드라마에 출연했다. 워낙 난해한 캐릭터인 만큼 연기를 할 줄 아는 배우가 출연해야 했겠지만 장단편영화와 드라마만 47편에 출연한 배우가 얼굴을 비추는 순간 '소름'은 영화라는 거리감이 생기게 된다. 조세프의 익숙한 얼굴이 등장하면서부터 이 영화는 '실패한 파운드푸티지'가 된다. 이미 실패해버린 파운드푸티지에서 영화는 나름 최선을 다한다. 빌드업 과정에서 깜짝쇼를 집어넣어서 관객을 불편하게 만들고 카메라가 사건을 찍는 게 아닌 모니터를 찍는 형태로 비틀어서 반전을 준다. 파운드푸티지만이 할 수 있는 몇 가지 잔재주를 부리지만 이미 '이것은 영화'라는 거리감은 지우기 어렵다.
4. 결론: 차라리 정극으로 만들었다면 더 재밌었을지도 모르겠다. 파운드푸티지의 테크닉은 버려야 하겠지만 대신 정극 영화의 기술을 얻을 수 있다. 편집과 촬영의 리듬감을 살릴 수 있고 적재적소에 음악을 배치해 긴장감을 줄 수 있다. 어떤 장면에서는 정극이었으면 더 쫄깃했겠다는 생각도 든다. 빌런의 정체는 장르적 특성을 떠나 존재 자체로 소름돋는다. 그가 소름돋게 하는 방식도 꽤 무시무시하다. 아이디어가 좋고 반짝이는 지점이 많은 영화다. 다만 이 영화의 유일한 실패는 아는 얼굴이 주인공이라는 점이라는 점이다. 이 실패는 꽤 크게 거부감을 준다.
추신) '소름2'도 있다. 아는 얼굴이 또 나온다. ...이걸 봐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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