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 작품의 의도를 벗어난 개인적인 감상 (강스포)
<소울>과 <원더우먼1984>의 강스포가 있습니다.
이 작품에서 사람은 성격이나 재능 등을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다고 가정 짓고 시작합니다. 이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정말 영화랑 상관없는 제 주관적 감정이 들어가 있습니다.
영화의 관람자는 누구나 감상이 있습니다. 감상은 사람마다 많이 갈릴 수 있으며 그런 것 중에 가장 크게 좌우되는 게 바로 그 영화를 <언제> 보았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작게는 관람시에 컨디션, 평일에 보았는지 주말에 보았는지, 누구와 보았는지, 어떤 환경에서 보았는지. 크게는 몇 살에 보았는지, 당시 시대상은 어땠는지. 당시에 나는 무엇을 생각하고 있었는지.
사람은 본디 선악을 타고났다?
저는 성악설도 성선설도 아닙니다. 선하게 태어난 사람들도 있고 악하게 태어난 사람들도 있고, 하지만 무엇보다도 어디에 태어나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살았는가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원더우먼1984>는 문제점이 너무 많아서 예전에 후기를 쓸 때 쳐냈어야 하는 이야기를 여기서 조금 해보려 합니다. 스티븐 트레버가 부활했는데 무에서 유로 부활한 게 아니고 남의 몸을 빌려서 부활합니다. 그래서 다이애나에게만 스티브의 모습으로 보이는 걸로 나옵니다. 다이애나는 세상에서 둘도 없이 소중한 사랑과 세상의 구원 중에 힘겹게 자신의 소원을 포기합니다. 이 작품은 많은 단점이 있지만 거기에 바로 그런 맹점이 있습니다. 맥스 로드가 온 세상에 소원을 빌면 다 들어주마 했을 때, 부자가 되거나 근거 없이 유명인이 되거나 말싸움하던 동네 사람을 죽이거나 강력한 살상 무기를 주거나 합니다. 세상의 평화를 되돌리기 위해 그런 소원쯤 포기해도 괜찮다고 독려하자 다들 자신의 소원을 포기합니다. 하지만 그 안에는 불치병에 걸린 사람이 자신의 병을 고친다던지 자녀의 질병도 있었을 것이고, 상실의 아픔을 겪은지 얼마 안 된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이 돌아오길 바라는 소원을 빌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얼굴도 모르는 여자가 귀에서 뭐라고 뭐라고 중얼 중얼거렸다고 해서 다시 얻은 생을 포기하거나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야 할까요? 그 소원을 포기함으로써 얻는다는 그 평화가 내 생명이나 내 사랑하는 사람의 삶보다 더 중요하다는 설득으로 충분했을까요? 그리고 저는 글로벌 팬데믹 사태를 통해 사람들은 생각보다 더 이기적이란 생각이 들더군요. 그때 빌어서 얻은 소원이 자기 생각엔 그다지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도 않았고 내 평생 정말 필요한 것이었다면 그것보다는 좀 더 설득력이 있었야 했을 겁니다. 내 소원은 남에게 피해 주지 않았어라며 나 하나쯤은 포기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할 테니까요.
<소울>로 오겠습니다. 주변인들로부터 실패한 인생으로 낙인찍혀지고 무시당하는 삶을 살고 있는 조는 평생의 소원을 이루기 직전입니다. 그래서 태어나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어리고 미성숙한 22의 기회를 빼앗아가면서까지 다시 살고 싶어 합니다. 결국 그 소원이란 걸 이루고 나서 가진 깨달음으로 인해 22에게 다시 돌아가게 되지만 조를 복합적인 캐릭터를 만든 이유는 이 작품이 전하는 메시지를 설득력 있게 전하고자 고심해서 만든 캐릭터임을 알 수 있지만, 그렇기에 보는 내내 그 전제가 주는 찜찜함이 사라지진 않았습니다. 100분 중 90 정도 작자의 의도대로 웃고 감명받고 했던 부분들이 지나가고 22와 함께 해맑게 아이로 태어나기 위해 지구로 떠나는 영혼들을 보면서 저는 마음의 큰 짐을 지었습니다. 조는 유복하진 않았지만 화목한 부모 아래서 무난하게 행복한 유년기를 거쳐온 인물입니다. 많은 아이들이 가정의 축복 속에서 태어납니다. 하지만 제가 언제 보느냐가 중요하다고 했는데 바로 우리는 얼마 전 어린아이가 잘못된 가정을 만나 큰 불행을 겪은 이야기를 알고 있고 저는 그것이 준 충격이 아직 크게 남아 있었습니다. 그 아이는 어떤 걸 타고났는지 세상에 펼칠 기회를 잃어버립니다. 꼭 이런 극단적인 경우가 아니어도 우리 사회만 해도 어린 나이부터 경쟁 사회에 있어서 부모의 뜻에 따라 지원을 받은 만큼 사는 사회에서 살고 있습니다. 지원한다고 꼭 다 잘 되는 건 아니고 다른 방향으로 선회하기도 하지만 좋은 환경에서 자란 친구가 더 다양한 선택의 길이 있음은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건 꼭 태어나기 전부터 정해진 건 아닙니다.
인생사는 결국 팔자소관인데 이 영화는 너무 밝은 면만 보았다는 생각을 하며 극장 문을 나서게 되는 건 그런 연유였습니다. 축복받은 환경에서 태어나면 자신이 타고난 것을 다 발휘해가며 살수 있겠죠. 하지만 여성이 차별받는 사회에 태어나면 타고난 것이 있어도 펼쳐볼 기회를 얻는 게 너무 힘들어질 수 있고, 너무나도 선한 품성으로 타고나서 태어났어도 어린아이가 총을 들어야 하는 나라에서 태어났으면 어린 나이에 펜 대신 총을 들어야 할 수도 있어요. 그런 생각이 드니 해맑은 표정으로 지구로 향하는 어린 영혼들의 모습이 마냥 편하지만은 않았습니다.
아마 시간이 조금 흐른 뒤에 이 작품을 다시 보면 또 다른 감상으로 보게 될지도 모르겠어요. 순수하게 작가의 의도대로 보면 현재 보편적으로 좋은 평을 듣는 것처럼 저도 호평하게 되겠죠. 하지만 제가 현재 가지고 있는 감정으론 그렇게 보기엔 좀 어려운 시기인 거 같네요.
그와는 별개로 영화는 재미도 있고, 음악도 너무 좋습니다. 근데 스토리가 어려운 편이 아니었나 싶네요. 아주 심오한 작품이었네요. 그래서 저처럼 좀 꼬아봐도 된다는 생각도 들었고 이런 감상기를 써도 괜찮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작품을 왜곡한 건 아니라고 생각하고 좀 꼬아본 건 사실이라고 생각하긴 해요. 다시 쓰지만 다른 시기에 봤으면 다르게 보았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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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 영화에서 한 사람의 일생을 2시간 안에 보여줄 수 없으니 인상이라도 남겨야한다는 대사가 있었습니다.
꿈, 인생, 생명을 완벽히 다루기에는 너무나도 어렵다보니 뭉클함이라도 남기려고 한 것 같습니다.
코로나가 아니었다면 조금더 너그럽게 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세상이 더 각박해지다보니 원더우먼이나 소울도 냉소적으로 바라볼 수 밖에 없는 현실이 아쉽기도합니다.
점점 효과적인 전개를 위해 작위적인 설정이 좀 많이 박히는 것 같긴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