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 관람평(스포x)
(영화 보고 받은 스티커와 오리지널 티켓입니다)
올해 처음 극장에 가서 본 작품입니다. 제 선택이 헛되지 않았습니다.
저는 한 번의 상영에서 두 개의 명작을 보았습니다.
하나는 후술할 장편 <소울>이고.
다른 하나는 본편 상영 전에 나오는 단편 <토끼굴>입니다.
이 단편은 그저 귀엽기만 한 게 아니라, 웅크리고 있는 현재의 지구촌에 울림을 줄 만한 작품입니다.
닫힌 세상에서 다시 열린 세상으로, 관객에게 마성의 손길을 내미는 길라잡이 같은 작품입니다.
이제 본편에 대해 이야기를 할 차례입니다. 아래는 스포일러 없는 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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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나에게 <소울>을 한마디로 축약하라면 이렇게 대답할 듯싶다.
“뉴욕의 하수구를 웜홀 삼아 우주의 저편으로 이어지는 영혼의 오디세이”
이 기묘한 확장은 놀랍게도 픽사의 세상에선 그럴듯하고, 심지어 흥미롭다.
결국 픽사가 ‘갈 데까지 가는구나’란 생각이다.
<인사이드 아웃>의 의식구조에서 더 나아가고, 애니메이션에서 다루기 껄끄러운 ‘죽음’의 테마도 <코코>의 명랑함에서 더 밀어붙인다.
또한 3D 작화의 기술적 측면에서도 인상적인데,
이제는 캐릭터를 제외한 백그라운드의 정밀함과 현실감이 실사의 그것과 거의 다르지 않는 수준에 도달했다.
태어나기 전 상태인 그레이트 비포(Great before)의 세계는, 중간지대적인 뉘앙스가 있다.
비주얼은 환상적이다. ‘제리’들은 피카소의 입체파 작품을 연상케 하며,
파스텔 풍 가상의 월드는 한없이 투명하고, 입자들은 눈에 모래알처럼 박힌다.
그러나 감각도 없고, 도돌이표처럼 돌아가는 어중간한 기다림의 지대.
가톨릭적으로 비유하자면 ‘연옥’이 될 수도 있고, <매트릭스: 레볼루션>식으로 대입하면 기차를 기다리는 플랫폼일수도 있다.
전체관람가 판정을 받은 이 작품은 아이러니하게도 아이들에게 적합하기도, 적합하지 않은 면도 있다.
삶이란 무대의 기초를 세울 어린 영혼들에 애니메이션이 주는 격려는 꼭 필요한 것이다.
반면, <소울>은 성인 취향에 더 가까운 애니메이션이기도 하다.
22(티나 페이)가 속사포처럼 열거하는 철학자와 사상가의 논리들은 미취학 아동이 보기엔 버거울 것이다.
<소울>은 우리가 숨 쉬고 사는 삶의 가치를 재발견해보길 권유한다.
특이하게도 ‘아웃소싱’의 방식을 통해서. 스스로를 타자화하여 더 큰 렌즈로 조망해보고, 사유하게 한다.
반대로 완전히 자신의 세계로 빠져드는 희열의 순간도 있다. ‘스파크’라는 개념이 발전하여 삶에서 독특한 시각화로 확장된다.
마치 푸른 커튼이 드리운 것처럼, 아니, 오로라가 나를 감싸는 것처럼.
<포드v페라리>로 대신 말하면 7000rpm의 우주적 물아일체의 순간이다.
애니메이션이기에 표현할 수 있는 아름다움. 이 영화의 후반부에는 <업>의 전설적 4분 오프닝에 버금갈만한 경이적인 회상씬도 있다.
전설적인 재즈 음악가 데이브 브루백이 이렇게 말했다.
“재즈는 자유를 뜻해요. 재즈는 자유의 목소리가 되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나가서 즉흥으로 연주해보고, 위험을 감수해보고, 그리고 완벽주의자가 되려 하지 마세요.”
어느 장르나 마찬가지겠지만, 이 영화에서 주가 되는 ‘재즈(Jazz)’는 영혼의 음악이다.
혼을 담은 즉흥성과 잼세션의 화학작용이 존재하는 장르. 위의 브루백이 정의한 재즈와 우리의 삶도 닮아있는 것이 아닌가.
많은 영화에서 재즈 클럽을 볼 때마다 벽에 수많은 재즈 연주자들의 액자가 걸려있는 걸 목격할 것이다.
그들에 대한 리스펙트는 곧 그 삶에 대한 존중의 다른 표현이다.
재즈의 뿌리는 흑인의 삶에 있다. 조 가드너(제이미 폭스)의 육체를 따라 <소울>의 골목에서, 이발소에서, 양복점에서 우리는 미국 흑인의 삶을 두루 살핀다.
캐릭터의 다소 급격한 변화와 선택도 있고, 플롯의 진행을 위해 헐거워지는 연결지점들도 있다.
하지만 의식과 무의식, 꿈과 저승을 넘나드는 <소울>은 아직도 애니메이션의 광활한 가능성이 있음을 확인시킨다.
‘삶의 기초를 세우는 프레임의 눈부신 상상. 의식을 넘나드는 가능성의 탐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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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딩 크레딧이 끝까지 올라갈 때까지 자리를 뜨지 마시길 바랍니다.
귀여운 소울들이 자기네들끼리 소소하게 노는 모습을 보는 즐거움이 있으니까요.
그리고 다 올라가면, 마지막에 당신은 혼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