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브 익스포져' - 당신에게 필요한 건 사랑이죠(스포주의)
‘최고의 멜로영화’를 이야기할 때 나는 홍상수 감독의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를 높은 순위에 올려둔다. “멜로가 뭐 별거 있나, 저게 현실 멜로고 현실 사랑이지”라며 다소 꼰대스런 말을 해댄다. 연애니 사랑이니 뭐 그런 거 결국 “오늘 널 갖겠어”와 “오늘 너와 뜨거운 밤을 보내겠어” 사이의 팽팽한 기싸움이 아니던가. 홍상수 감독의 모든 필모가 그렇진 않지만, 그가 몽골음식점 사장님처럼 푸근했던 시절에는 말랑말랑하고 찌질한 연애담을 쓰기도 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고 싶은 감정은 오직 자기들끼리만 절실하고, 스크린 너머에서 그것을 바라볼 때는 찌질하고 유치한 장난에 불과하다. ‘사랑’이라는 거 결국 당사자들끼리만 진지한 일이다. 제3자에게 그것은 가십거리이자 주전부리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사랑이야기를 좋아한다. 가십거리이자 주전부리로써 그것을 즐기기도 하지만 절절하게 포장된 사랑이야기에는 울다가 웃으며 공감하기도 한다. 아마도 그들 모두가 찌질했던 자신의 사랑경험이 생각났던 모양이다. “나만 진지한 게 아니었어”라는 일종의 위로에 가깝다. 여기 한 괴짜감독이 질문을 던진다. ‘사랑’에 대해 자신만의 해석을 한 결과물을 내놓고 “자, 여기에도 공감할 수 있겠어?”라고 묻는다. 이 이야기는 진흙탕 같은 삶의 순간을 벗어나 온전히 사랑하는 두 사람만 남는다. 그 진흙탕 속에서 이들이 쫓는 사랑은 ‘에로틱’인지 ‘플라토닉’인지, 실체조차 불분명하다. 심지어 불끈 솟아오른 남근은 우뚝 솟은 십자가와 오버랩된다. 지금 이 영화는 예수를 향한 사랑마저 ‘에로틱’와 겹치게 하려는 셈일까? 소노 시온의 ‘러브 익스포져’는 모든 멜로영화 중 가장 혼란스런 작품이자, 사랑의 본질로 향하는 길고도 험난한 길이다.
‘러브 익스포져’의 모든 등장인물들은 사랑으로부터 배신을 당했다. 유(니시지마 타카히로)는 어머니가 일찍 떠났고 아버지 테츠(와타베 아츠로)는 다른 여자를 사랑하면서 아들을 배신했다. 테츠 역시 카오리(와타나베 마키코)와 사랑에 빠지지만 카오리로부터 배신당했다. 카오리의 딸 유코(미츠시마 히카리)는 가족(=아버지)이라는 울타리로부터 배신당해 남자를 증오하는 처지에 이르렀다. 무려 아버지(이타오 이츠지)로부터 성폭행을 당한 코이케(안도 사쿠라)는 자신을 좋아하는 남학생을 죽이면서 배신을 ‘한다’. 유일하게 배신에 능동적이었던 코이케는 이 이야기의 ‘빌런’이 된다.
많은 이야기 속에서 등장인물은 결핍을 가지고 있다. 브루스 웨인은 부모가 살해당한 장면을 목격한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고 토니 스타크는 자신이 판매한 무기로 많은 무고한 사람들이 죽었다는 자책감에 시달린다. 클락 켄트는 아기 때부터 지구에서 쭉 살았지만 그의 막강한 힘은 그를 이방인으로 만든다. 히어로물이 아니더라도 대다수의 주인공은 결핍을 가지고 있다. 이야기가 진행됨에 따라 결핍을 극복하는 주인공의 모습은 관객과 독자에게 카타르시스를 준다. ‘러브 익스포져’의 인물들이 가진 결핍에는 ‘사랑’이라는 공통된 키워드가 있다. 제목에도 ‘러브’가 등장하고 모두들 ‘러브’를 쫓는다. 아주 대놓고 ‘멜로영화(사랑이야기)’를 하겠다는 선언을 하지만 이것이 쉽게 와닿진 않는다. 지금 이 등장인물들은 ‘사랑’이 뭔지도 모르고 있다.
테츠의 직업인 신부다. 그는 신을 섬기고 사랑하는 자다. 그런 테츠 앞에 카오리가 등장한다. 카오리는 테츠의 설교에 감명받아 그를 열렬히 사랑한다. 카오리의 모습이나 사랑하는 방식은 편견을 갖게 한다. 신을 사랑하는 마음은 성스러운 것이고 카오리를 사랑하는 마음은 불경할 거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적어도 테츠의 아들 유는 확실히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카오리는 엄밀히 따지면 정착할 수 있는 사랑을 찾아 방황하는 처지다. 테츠는 신을 향한 사랑과 카오리를 향한 사랑 사이에서 방황한다. 이는 ‘실재하지 않는 것’을 향한 사랑과 ‘실재하는 것’을 향한 사랑 사이에서의 갈등이다. 이야기가 돌고 돌아 테츠는 실재하는 존재를 사랑하기로 한다. 카오리 역시 안착할 수 있음을 깨닫고 사랑스런 연인의 미소를 보인다.
테츠의 아들 유 역시 사랑이 뭔지 모르고 있다. 유의 갈등은 감정적 사랑이 발기(勃起)로 이어지면서 비롯된다. 유 본인은 유코를 향한 마음이 마리아를 만난 것처럼 성스럽고 숭고하지만 몸은 ‘발기’해버린다. 유 본인뿐 아니라 관객조차도 ‘발기’를 불경하게 바라본다(이미 그는 ‘오피셜’한 ‘변태’다). 유는 변태적 행위(도촬)에 대해 유코에게 변명을 하지만 뭐 그래 봤자 ‘변태’다. 다만 ‘죄를 짓기 위해 도촬했다’는 그의 사명과 도촬하는 동안 단 한 번도 ‘발기’하지 않았다는 것은 짚어볼 필요가 있다. ‘죄를 짓기 위해 도촬했다’는 사명은 아버지로부터 사랑을 얻기 위해 한 행위다. 아버지에게 도촬을 고백한 순간 테츠는 ‘신부’가 아닌 ‘아버지’로서 아들의 뺨을 때렸다. 즉 도촬은 사랑받기 위해 한 행동이다. 그리고 ‘발기’하지 않았으니 도촬의 순간에 성적 쾌락을 느끼진 않았다. 그럼에도 도촬을 한 것은 사랑에 대한 쾌락 때문이다. (쓰면서도 말이 안 되는 것 같지만) 유는 사랑받기 위해 도촬했다.
그런 유가 ‘발기’했다. 운명 같은 마리아(=유코)를 만나고 첫눈에 반한 순간 유의 몸에서 일어난 반응은 심장이 두근거리거나 동공이 확장된 게 아니라 그것이 벌떡 일어났다. 에로틱하고 말초적인 대상에 그것이 반응한 게 아니라 ‘사랑’에 반응했다. 성적 페티시는 종류가 다양하다. 이성의 벌거벗은 몸이나 관능적 몸놀림에 반응할 수 있지만, 옷이나 물건, 상황, 물질에도 반응할 수 있다. 유는 이성의 속옷이 아니라 사랑이라는 감정이 페티시인 셈이다(마리아를 향한 페티시일수도 있다). 영화 초반에 등장한 유의 성장환경을 고려한다면 그의 ‘발기’는 사랑(혹은 마리아)에 대한 신체반응이라고 볼 수 있다. 심장이 뛰고 동공이 확장되고 귀에서 종소리가 들리는 신체반응과 같다. 영화 역시 우뚝 선 유의 남근을 십자가와 오버랩시키면서 그의 발기를 성스럽게 만든다. ...이렇게 써놔도 어쨌든 변태는 변태다.
유코는 이 영화에서 가장 확실하게 사랑이 뭔지 모르는 인물이다. 자신을 구해준 사소리씨(=유)를 사랑하면서도 그 감정이 성경의 정서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두려워하고 갈등한다. 사소리씨의 실체를 알았을 때 유코는 두려워하며 도망친다. 이야기가 흐르고 흘러 깨달은 것은 유는 두 번이나 유코를 구해줬고 그 감정이 사랑이라는 사실이다. 유코는 그것을 깨닫기까지 멀고 먼 길을 돌아갔다. 코이케는 가장 많은 결핍과 상처를 가진 인물이다. 코이케는 사이비 종교에 귀의해 중역에 올랐고 존경과 두려움을 얻고 있다. 권력이 있고 추종자가 있지만, 세뇌시킨 테츠가 아들을 챙기는 순간에 혼자임을 느끼고 자살한다. 그러나 뒤늦게 달려온 추종자들은 죽어버린 코이케의 곁으로 달려와 오열한다. 그리고 품 안에 있던 새는 그녀의 곁을 떠난다. 복종과 두려움에 둘러싸여 있었지만, 그 곁에는 ‘존경’도 있었다. 코이케는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사랑이 뭘까?”라는 물음을 던질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 20세기에 술 취한 복학생 형? 연애 한 번 찐하게 하고 차여서 오열하는 친구? 철학책 몇 권 읽고 인간사에 대해 고민하는 도 닦은 꼰대? 혹은 거창한 철학자? 여기 소노 시온도 자신의 이야기 속에 사랑이 뭔지 모르는 인물들을 잔뜩 등장시켜놓고 사랑이 뭔지 묻는다. 소노 시온이 누구던가. 괴짜들이 즐비한 일본 대중문화 시장에서도 성공한 ‘탑급 괴짜’가 아니던가. 때로는 변태 같으면서 저돌적이기도 하고 유머러스하다가도 피비린내 나는 비정함도 가지고 있다. ...어쨌든 ‘정상(normal)’적인 길은 안 가는 사람이다. 이 괴짜는 사랑이야기를 해도 참 거창하게 한다. 예수와 성경, 마리아까지 언급하면서 이성과 가족, 신에 대한 사랑까지 모두 꺼내놓는다. 그리고 ‘발기’조차 사랑의 카테고리에서 이야기한다. 가히 소노 시온다운 발상이다. 거창하게 늘어놓은 이야기를 돌고 도니 남는 것은 “사랑이 뭘까?”라는 물음이다.
문제는 정작 이 영화도 사랑이 뭔지 모르는 것 같다. 그저 “널 좋아하고 같이 있고 싶어. 너만 보면 내 그것이 벌떡 일어서”라는 고속도로 휴게소 성인가요 테이프 가사 같은 소리를 한다. 근데 그 이상으로 사랑에 대해 합리적으로 설명하는 영화는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적어도 4시간 동안 사랑이 뭔지 설명했는데 그만큼 설득력은 갖춰야 하지 않겠는가(이 영화의 최초 가편집본은 무려 8시간이었다). 확실한 것은 소노 시온은 홍상수나 김기덕보다는 로맨틱한 사람이다. 그리고 나에게 ‘러브 익스포져’는 ‘러브 액츄얼리’보다 로맨틱한 영화다.
포스터 굉장하네요. 글 잘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