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censored] 넷플릭스 '욕의 품격' 간단 리뷰
※ 경고: 넷플릭스 6부작 교양 프로그램 '욕의 품격'에 대한 리뷰인 만큼 욕이나 그에 준하는 단어에 대해 '무삭제'로 내보냈습니다. 제가 가장 싫어하는 영화가 수입사에 의해 '블러(Blur)' 처리된 장면이 나오는 장면인 만큼 무삭제로 내보내고 싶었습니다. 만약 이 글이 블라인드 처리되거나 운영진에 의해 삭제된다면 '클린 버전'으로 다시 올리겠습니다.
1-1. 체벌이 가능했던 시절, 내 고교 1학년 수학선생님의 이름에는 같은 낱말이 2개가 들어갔다. 때문에 그 선생님의 별명은 '쌍코피'였다. 그 두 명제 사이에 어떤 논리적 흐름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이 선생님의 별명은 쌍코피다. 쌍코피는 내가 학창시절을 포함해 살면서 보고 들은 모든 교사들 중 가장 창의적인 체벌을 하는 사람이었다. 나는 한 때 그가 일제강점기나 군사독재 시대에 경찰을 하지 않고 자유민주주의 시대에 고교 수학선생을 한 게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요즘 같았으면 쌍코피는 진작에 신고 당하고 교사 때려쳐야 한다.
1-2. 한 가지 에피소드를 언급해보자면, 1학년 여름방학이 끝나고 방학숙제를 검사하는데 우리 반에서 절반이 방학숙제를 해오지 않았다. 쌍코피는 "이제부터 너희들에게 매 수업시간마다 단계를 올려서 4단계의 체벌을 줄거다. 모든 체벌을 버틴다면 숙제 안 해도 된다"는 말을 했다(당시 수학은 일주일에 4시간이었다). 친구들은 "까짓 거, 해보지"라고 생각했다. 쌍코피의 제1단계는 콧구멍에 맨소래담로션 바르기였다. 강한 자극에 어질어질할 정도였지만 버틸만했다. 다음 시간이 되자 절반 중의 절반이 남았다. 2단계는 스프레이 파스를 콧구멍에 뿌렸다. 1단계보다 더 골고루 자극이 전해졌다. 친구들은 당장 죽겠다는 것보다 "대체 4단계는 뭐지"라는 공포에 숙제를 하기 시작했다. 3단계가 되자 나를 포함한 단 4명이 남았다. 쌍코피는 3단계를 준비하며 와사비를 물에 개기 시작했다. 그날 나는 쌍코피에게 비밀기지가 어딘지 말할 뻔 했다. 공포가 극에 달한 아이들은 밤을 새가며 숙제를 하기 시작했다. 전교에서 4단계까지 간 사람은 나 혼자였다. 쌍코피는 장모님댁에서 가져왔다며 고추장을 물에 개기 시작했다. 3단계보다 자극은 진하지 않았다. 그러나 아무리 콧구멍을 씻어도 장냄새가 빠지지 않았다. 장냄새 빼는 데 일주일 걸렸다.
2. 그런 쌍코피는 가끔 수업하다가 지루할 때 수업과 상관없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주로 '욕의 유래'에 대한 이야기였다. 오피셜인지 알 수는 없지만 '개새끼', '씨발', '지랄' 등등 당시 남자 고등학생들이 입에 달고 살던 욕지거리의 어원을 풀어주는 것이었다. 주로 음담패설로 이어지는 이야기들이었다. 그때 쌍코피에게 배운 '욕지거리 강연'은 지금도 술자리에서 가끔 써먹는다. 단어의 기원을 찾는 것부터 지역별로 욕하는 패턴까지 다양하다. 쌍코피에게 체벌(이라고 쓰고 고문이라고 읽는) 받는 순간은 참 지랄맞았지만 욕지거리 강연은 재밌었다. 그 인간에게 배운 미분, 적분은 다 까먹었어도 호남식 욕의 관용어구는 머릿속에 또렷이 남아있다. "이런 써글노무 자슥, 눈깔에 빨대를 꽂아다 먹물을 쪽 빨아먹어벌라".
3. 넷플릭스가 걸쭉한 교양프로그램 하나를 내놨다. 총 6부작이지만 회당 20분 분량이니 2시간이면 다 본다. '욕의 품격'이라는 이 프로그램의 영제는 'history of swear words', 욕의 역사다. 영어단어에서 가장 흔히 쓰이는 욕설 단어인 'Fuck', 'Shit', 'Bitch', 'Dick', 'Pussy', 'Damn'의 어원을 찾아간다. 사무엘 잭슨 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여러 작품에서 육두문자 걸쭉하게 쏟아냈던 니콜라스 케이지가 호스트를 맡았고 언어학자와 사전편찬하던 위원, 코미디언, 대학교수 등이 출연해 단어의 어원과 일상생활에서의 쓰임, 단어에 대한 각자의 견해를 들려준다(패널로 참여한 인터뷰이 중에서는 '주먹왕 랄프'에서 꼬마소녀를 연기한 사라 실버맨도 있다. 이 누나도 워딩 걸쭉하다). 단어의 역사를 전하고 그 쓰임을 이야기하는 만큼 다소 지루할 수 있지만 워낙 유쾌한 사람들이 등장하고 때때로 니콜라스 케이지의 첨삭과 깨알상식이 더해지면서 꽤 재미있다. 유쾌하게 즐기면서 교양도 얻어갈 수 있다. 게다가 간간히 영화 속 욕이 등장하는 장면은 유쾌함을 더해준다. 마지막 에피소드에서는 시작하자마자 무려 레트 버틀러('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속 클라크 게이블) 연기에 도전하는 니콜라스 케이지를 볼 수 있다.
4. '욕의 품격'을 보면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사람 욕지거리 하는 거 다 똑같네"라는 것이다. 이 프로그램 각 챕터에 등장하는 욕을 한글로 전환해보면 '씨발', '똥', '썅년', '좆', '씹', '젠장'이다. 한국인이 즐겨 쓰는 욕과 정확하게 일치된다(실제 어원도 들어맞는 편이다). 주로 욕에 쓰는 말은 더러운 것이나 외설적인 것, 음란하고 은밀한 것에 기인한다. 이 점에서 동서양이 그럭저럭 일치한다. 그리고 욕의 어원은 대체로 남성중심적이다. 영어에도 '썅놈'이 있는지 모르겠는데 한글에서 '썅놈'과 '썅년'은 무게감이 다르다. 영어에서는 '썅년'을 의미하는 'Bitch'는 보편적인 단어지만 '썅놈'을 뜻하는 단어(정확하게 '썅놈'을 지칭하는 단어)가 있는지 모르겠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한글에서 '좆'과 '씹'의 무게감은 비슷하다. 반면 영어에서는 'Dick'보다 'Pussy'가 훨씬 모욕적인 말이다(남자에게 "Pussy"라고 하는 것은 해당 남자와 여성을 모두 모욕하는 말이 된다. 반면 Dick은 음흉하게 웃을 수 있는 말장난이 된다). 이쪽이나 저쪽이나 여자에게 조신한 태도를 강요하다 보니 거친 언어는 남성을 중심으로 진화했다. 때문에 '욕의 품격'은 다소 페미니즘적일 수 있다(실제로 인터뷰하는 대학교수는 페미니즘 전공이다). 이를 어느 정도 의식하고 볼 필요는 있지만 '욕의 품격' 전체를 페미니즘 프로그램이라고 볼 필요는 없다. '욕의 품격'은 니콜라스 케이지가 진행하는 교양 프로그램이다.
5. 부디 바람이 있다면 '욕의 품격' 한국판을 만들어줬으면 좋겠다. 이 프로그램이야말로 한글패치가 너무 절실하다. 앞서 언급한 6개의 워딩을 한글로 전환한 것부터 지역별로 다양한 욕, 사라진 옛날 욕을 탐구하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세계의 모든 언어를 다 연구해보진 못했지만 한글처럼 욕이 버라이어티한 나라도 없을거라 생각한다. 호남에 가면 "느자구 없는 놈"이 있고 영남에 가면 "세가 빠진다"라는 말도 있다. 이런 수많은 로컬 욕의 유래를 찾는 건 매우 재미난 일이 될거라 확신한다. 오죽하면 "'욕의 품격' 한글판을 만들면 니콜라스 케이지 역할은 누가 해야 하나"라는 의문이 들었다. 일단 진행은 데프콘과 유병재 2MC로 가고 인터뷰이에 김영옥, 김수미 여사님과 국어국문학, 지역문화를 연구한 대학교수가 등장하면 된다(한글판은 육두문자 잘 터는 인터뷰이를 확보하기 어려울 듯 하니 2MC가 적당히 만담을 해줘야 한다). ...아, 이 프로그램 한글판 마렵다.
6. 결론: '욕'은 가장 감정적인 단어다. 상스러운 말로 상대방을 공격하는데 주로 쓰이지만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거나 의지를 돋울 때도 쓰인다. 예를 들어 "씨발 한 번 해보자", "에휴 씨벌" 등이다. 어떤 여자들은 다른 사람의 공격에 맞설 때 "그래, 씨발 내가 썅년이다. 어쩔래?!!"라며 받아친다. 욕은 '공격'의 의미를 넘어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가장 적절한 단어다. 직장생활을 하는 누구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옥상 위에 올라가 하늘 바라보며 담배 연기 내뿜은 뒤 "씨발 좆같네!"라며 소리치고 싶을 것이다(상사 면전에 대놓고 뱉을 수는 없으니). 교양있는 사람은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나는 이 상스런 단어들을 지지한다. 감정노동자들은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못한 채 타인의 갑질에 속이 썩어서 살고 있다. 코로나19 확진자가 간호사를 상대로 갑질을 했다는 뉴스를 보면 피가 거꾸로 솟는다. 나는 감정을 숨기고 참는 게 옳은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은 더 큰 화를 불러올 수 있다. 더 심각한 참사가 일어나기 전에 갑질하는 사람의 두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혹은 상대가 들을 수 있게 정확한 발음으로) "야이 씨벌놈아 아가리 쳐닫어라. 눈깔 뽑아다 젓갈을 담궈버릴라니깐"이라고 말하는게 좋다. 감정은 곪기 전에 터트려야 흉터가 남지 않는다. '욕의 품격'은 교양없는 단어를 내뱉으면서 교양을 갖추게 하는 프로그램이다. 그러니 어디선가 '씨발놈'을 만나면 당당하게 "자 지금부터 니가 왜 씨발놈인지 설명해줄게. '씨발'의 뜻은 말이야"라며 설명해주자.
추천인 10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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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 하니까 《40살까지 못해본 남자》라는 영화가 생각나네요
순진한 주인공(스티브 카렐)은 고통스러운 제모를 하는데 욕도 못해서 'Shit' 같은 거라도 내뱉으면 좋은데
"노! 켈리 클락슨!" 같은 이상한 관용구를... ㅋㅋㅋ
그러고보면 욕이 가지고 있는 나름의 순기능이 있지 않나 저만 생각해 봐~요 ㅎㅎ
한국식으로 만들면 엄청날 거 같아요.^^
예고편을 봤을 때는 니콜라스 케이지가 진행자라서 참 잘 어울린다 했어요. 사무엘 L. 잭슨 옹이었으면 또 어땠을까 싶기도 하고요.
욕하는 게 사실 좋은 건 아니다만, 워낙에 사방에서 감정적으로 압박을 받는 이들에게는 욕설이 해방구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욕설을 지지하는 편입니다.ㅎㅎㅎ 그래도 웬만하면 상황을 보고 가려서 해야겠지만요.
기회가 되면 보고 싶네요.
덧 - '제가 가장 싫어하는 영화가 수입사에 의해 블러 처리된 장면이 나오는 장면인 만큼'이라는 문장을 보니 그 영화가 뭘까 궁금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