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 마 레이니, 그녀가 블루스] 간략후기
비올라 데이비스, 채드윅 보스먼 주연의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인 <마 레이니, 그녀가 블루스>를 보았습니다.
덴젤 워싱턴이 영화로도 만들었던 <펜스> 등 흑인 사회를 배경으로 한 다수의 희곡을 쓴 극작가인
오거스트 윌슨의 동명 희곡이 원작으로, 1920년대 미국에서 초기 블루스 음악을 널리 알리며
'블루스의 어머니'라고 불린 실존 가수 '마 레이니'와 그 밴드를 주인공으로 삼은 영화입니다.
희곡이 원작임을 감안해도 영화는 지극히 연극적인데, 제한된 시간과 공간 안에서 뿜어내는
말과 음악의 뜨거운 에너지와 그 속에 담긴 강렬한 메시지가 90분 남짓 짧은 러닝타임으로도 긴 여운을 남깁니다.
때는 1927년 미국 시카고의 여름날. 한 녹음 스튜디오에 일련의 흑인 뮤지션들이 음반 녹음을 위해 모입니다.
메인 가수인 마 레이니(비올라 데이비스)는 연락도 없이 1시간 씩이나 늦는 가운데,
먼저 모인 밴드 멤버들이 밴드 연습실에서 합을 맞추는 데 이마저도 레비(채드윅 보스먼) 때문에 쉽지 않습니다.
자기만의 밴드를 결성해 자기가 쓴 노래를 연주하는 꿈에 부푼 레비의 마음은 콩밭에 가 있고,
'우리는 마의 음악을 연주하러 왔다'는 밴드 멤버들의 당부에도 아랑곳 없이 자기 스타일의 음악을 주장합니다.
이윽고 마 레이니까지 도착해 녹음이 시작되지만, 자신이 원하는 컨디션이 아니면 녹음의 녹 자도 못 꺼내게 하는
마 레이니의 고집도 고집이거니와 시한폭탄 같이 불안한 레비와의 갈등까지 더해져 현장은 살얼음판 같습니다.
음악에 대한 열정만큼이나 성미도 불 같은 그들은 과연 무사히 녹음을 끝낼 수 있을지,
영화는 한 스튜디오 안에 있는 녹음실과 밴드 연습실 두 공간만 오가며 제한된 시간을 밀도 있게 드나듭니다.
영화의 시작은 좌중을 사로잡는 마 레이니의 깊고 풍부한 보이스이지만, 막상 음악 영화라고 보긴 힘듭니다.
극 중 마 레이니의 대사처럼 '삶을 이해하기 위해' 음악을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며,
이는 곧 음악 자체보다 음악을 통해 보여주려는 삶과 세계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연극으로 공연되는 희곡을 원작으로 삼으면서도, 영화는 그 희곡을 굳이 영화적으로 확장하려 들지 않습니다.
이 모습 그대로 연극 무대로 올려져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시공간과 시퀀스 연출, 대사 호흡까지
연극의 그것을 그대로 옮겨 온 느낌을 강하게 주는데, 때문에 90분짜리 연극을 보는 듯 극의 밀도가 상당합니다.
다양한 캐릭터들이 오디오가 빌 틈이 없이 대사를 주고 받거나 수분에 걸쳐 독백을 풀어놓고,
굳이 이런저런 이미지들이 교차하지 않아도 인물들의 입을 통해 흘러나오는 대사의 견고함 덕에
보는 이는 그들이 우리 앞에서 풀어놓는 이야기를 듣기만 해도 겪어온 삶의 풍파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그토록 고집쟁이로 만든 것이, 그렇지 않고서는 죽을 것만 같았던 삶 때문임을 곧 깨닫게 됩니다.
풍미 넘치는 블루스 선율만큼이나 인물들의 숨결을 통해 생생히 전해지는 것은,
노예 제도로부터 해방된 후에도 20세기 초 흑인 사회를 여전히 옥죄고 있던 차별과 폭력의 공기입니다.
백인 스튜디오 사장과 매니저에게 그토록 '갑질'을 하다가도 뒤돌아서면 '목소리가 없다면 개 취급 받을 뿐'이라며
자조하는 마 레이니의 모습에서, 백인들 앞에서 그토록 굽신거리다가도 뒤돌아서면 치를 떠는 레비의 모습에서,
우리는 때로 이해 불가능한 수준으로까지 뻗어나가는 그들의 고집이 어디에서 비롯됐는지 헤아리게 됩니다.
학대는 사라졌다 할지언정 착취는 남아있는 시대에 저항하기 위한 필사적으로 붙들고 있는 고집이었을테고,
뒤이어 힘 넘치게 연주되는 블루스는 그 고집에 담긴 화와 한을 흥으로 승화시킨 결과물이었을테죠.
다만 영화는 그렇게 탄생한 블루스로부터 비롯되는, 간절한 갈망 끝에 현실의 벽에 가로막혀
맞이할 수 밖에 없는 위태로운 성공 혹은 좌절을 대비시켜 보여줌으로써
하나의 그림으로 단정할 수 없는 시대의 조각들을 깊은 여운과 함께 남깁니다.
흔히 소수의 배우들이 무대에 올라 불꽃 튀는 연기 경연을 펼치게 마련인 연극처럼,
이 영화 또한 두 주연배우인 비올라 데이비스와 채드윅 보스먼의 연기가 이 영화의 기둥이라 할 만합니다.
마 레이니 역을 맡은 비올라 데이비스는 자신의 재능으로 인해 '운좋게도' 잠시 벗어난 차별의 그늘 밖에서
자신의 고집을 최대한 드러내며 행여 그 운이 다할 까 불안해 하는 인물의 상반된 내면을 훌륭히 표현합니다.
도무지 가까이 다가갈 수 없을 만큼 거대한 아우라를 하고서 노래하고 호통 치다가도
참았던 숨 몰아내듯 독백하는 장면에서는 순식간에 그 내면으로 빨려들게 하는 장악력은 명불허전입니다.
마 레이니가 타이틀롤이라지만 그래도 가장 잊을 수 없는 건 레비 역을 맡은 채드윅 보스먼의 연기입니다.
이 영화는 그의 연기를 볼 수 있는 마지막 작품인데, 그는 정말 더 이상의 연기는 없을 것처럼 연기했습니다.
때로는 눈 앞의 사람들을 향해 때로는 신을 향해 자신이 지닌 모든 것을 토해내듯 뿜어내는 그 연기는,
이제 막 피워내려는 열정을 항변하는 레비의 모습을 빌려서 못다 피워낸 열정의 마지막을 쏟아내는
채드윅 보스먼 본인의 모습을 투영한 듯해 보는 내내 가슴을 때렸습니다.
너무 일찍 떠나간 비극 가운데에서도 그 마지막 연기가 이러했다는 것이, 그래서 사후에나마
비로소 아카데미의 문을 영예롭게 두드릴 수 있을 것 같다는 것이 다행으로 느껴졌습니다.
우리가 노래 한 곡을 듣는 시간은 3분에서 길어야 5분 남짓이지만, 그 노래 한 곡이 탄생하는 데에는
짧게는 녹음 스튜디오에서의 몇 시간부터 길게는 그 곡의 영감이 처음 태어난 수개월 수년까지도 걸렸을 겁니다.
<마 레이니, 그녀가 블루스>에서 보여지는 건 1927년 여름 시카고의 한 녹음 스튜디오에서의 몇 시간이지만,
그 시간동안 일어나는 대화와 폭발하는 감정 속에서 우리가 느끼는 건 수십년 세월의 곡절입니다.
그렇게 이 영화는 흥을 돋우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아픔을 떨쳐내기 위해서 태어나는 음악에 대한,
그 음악을 연주하고 노래하며 아픔을 이겨내는 음악가들에 대한 헌사로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 넷플릭스에 함께 올라와 있는 메이킹 필름 <마 레이니, 그녀가 블루스 - 못다한 이야기>도 함께 보시면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