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우리는 춤을 추었다 : 극장관람 추천
앞으로 두 단락은 정말 쓸데없는 이야기들
Georgia
이 나라를 처음 접한 건 이름도 기억 안 나는 우연히 본 여행 예능 프로에서 나온 조지아라는 생소한 나라를 관광하는 모습을 보면서 유럽인 듯 유럽 아닌 풍경이 인상적이고 상당히 아름다웠던 기억이 나서 나중에 한번 찾아봤었는데요. 옛 명칭이 '그루지야' 이었다고 하니 바로 세계사의 한편 이 생각이 나더라고요. 글로만 읽던 그루지야는 파면 팔 수 록 매료되어서 언젠가 유라시아 여행을 간다면 꼭 들러보고 싶은 나라 중에 하나로 기억되게 되었습니다. 영화에도 음식이 많이 나오는데 나무 위키에 보니 유럽에서도 음식이 맛있는 나라 4위로 올린 기사를 링크했더군요. 그만큼 영화에서도 음식이 상당히 맛있어 보이게 나옵니다. 전반적으론 동유럽과 서아시아 음식들의 특징들이 많이 반영된 느낌이더라고요. 그 외에도 소련에서 독립한 나라들이 으레 그렇듯 러시아와 사이가 안 좋고 얼마 전에도 접경 지역인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이 전쟁이 일어났을 정도로 정세도 불안한 편입니다. 그 외 특이 사항은 스탈린의 출생지였다군요.
동유럽이 아무래도 전반적으로 좀 더 보수적인 분위기이긴 한데요. 그중에서도 구 소련 연방 국가들은 대체적으로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이 존재하는 거 같습니다. 뜬금없이 스웨덴인 감독이 조지아에서 퀴어 영화를 찍게 된 동기도 호모포비아들이 게이 퍼레이드를 공격하는 모습에 깊은 인상을 받아서 찍게 되었다고 하네요. 우리나라도 매년 퀴어축제를 열기 위해 매년 고생을 하고 물리적 공격은 하지 않지만 축제 근처에 보수적인 기독교인들이 굳이 해괴한 퍼포먼스를 매년 선보이고 있지요.
영화 이야기
Trivia
이 작품은 퀴어 영화라는 게 알려지면서 한 유명 댄스컴퍼니에 촬영 협조를 요청하였지만 조지아엔 동성애자는 없다며 나중에는 다른 댄스컴퍼니에도 촬영에 협조하지 말라고 하며 방해하고, 촬영 기간 내내 경호원을 붙여야 했으며, 안무가는 크레딧에서 이름을 빼달라고 하기도 했을 정도로 내홍을 겪었다고 합니다. 조지아 개봉 당시에 시위대의 돌발행동에 대비해 극장 앞에 경찰이 진을 치기도 했고요. 이 영화 촬영 당시에 생긴 사건만 다큐로 만들어 놨어도 영화보다 더 드라마틱 했을 거 같단 생각이 들더군요.
진짜 영화 이야기
연출적인 면에서 틀림없이 저예산으로 만든 영화인데 왜 이렇게 만듦새가 뛰어난 거지란 의문을 내내 품으면서 봤어요. 세트촬영이 거의 없을 정도로 열악한 상황에서 찍은 티는 확실히 나는데 컷신 하나하나가 너무 공들여져 찍혀져서 특이한 위화감까지 느껴지더라고요. 이런 경우는 감독과 촬영감독이 물아 일체가 되어 혼을 담아 찍어낸 것이죠. 롱테이크는 롱테이크대로 감탄이 나오게 만들어졌고 특히 춤씬들은 편집이 많이 들어간 신들의 편집은 제가 시상식 위원이면 무조건 편집상 후보에 올려야 한다고 했을 겁니다. 그래도 감독이 조지아 전통춤에 대한 이해와 연구가 많이 들어갔다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열악한 상황상 테이크를 많이 가져가지도 못했을 텐데 만듦새가 너무 좋습니다. 조금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건 렌즈 플레어를 좀 과하게 썼다는 건데 쌍제이나 마이클 베이식의 CG가 아니라 조명을 이용한 렌즈 플레어를 구도로 잡는 것도 무척 쉽지 않은 일이니 대단합니다.
반면 스토리는 새로울 것이 없습니다. 사실 퀴어 영화도 역사가 길고 이미 많이 개방된 서양권에선 이 정도 내용의 영화를 내놓을 땐 시대극을 해야 할 정도로 지난 이야기에요. 하지만 조지아에선 호모포비아를 드러내놓고 이야기할 수 있기에 그들에겐 현재의 이야기이기에 시사점이 있다고 생각해요. 작품의 만듦새에 비해 세계적 평가가 낮았던 부분도 스토리 부분이었던 거 같아요. 오히려 현대 시대에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나라가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점에서 시사점이 있는 작품입니다.
극장에서 볼만한 작품
이 작품엔 제가 매료됐던 조지아의 풍경은 거의 나오지 않았고, 배경이나 댄스 스튜디오도 너무 열악한 나머지 주인공의 아이폰이 나올 때야 비로소 현대극이구나 느낄 정도의 상황이지만 그 속에서 꿈을 펼치고 싶어 하는 청춘들의 이야기도 잘 담아내고 있습니다. 그래서 등장인물들에 대한 감정도 좋을 때와 싫을 때가 갈리지만 그들이 처한 현실 속에서 그들의 행동이 공감이 가는 건 역시나 스토리의 힘과 이 초보 배우들에게 좋은 연기를 끌어낸 감독의 역할도 크다고 생각이 들어요. 잔잔한 듯하지만 전통과 현대사회가 충돌하는 내용을 힘 있게 연출한 감독의 공이 크고 영화가 가진 에너지가 상당하기 때문에 꼭 극장에서 관람하셨으면 좋겠네요.
흥미로운 글 잘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