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크> 단평 - 데이빗 핀처의 가장 쓸쓸하고도 낭만적인 영화

데이빗 핀처의 신작 <맹크>를 막바지에 극장에서 관람했습니다.
핀처의 뛰어난 솜씨가 다시금 발휘되면서도 기존 영화들과는 차별화되는, 또 한편의 수작이네요.
<패닉 룸>까지 그의 작품들이 뛰어난 스타일의 장르 영화들에 가까웠다면
<조디악>부터 그는 주로 긴 호흡을 통해 한 시대를 정확히 재현해내면서도
그 시대를 살아가며 어떤 일련의 사건들에 (주로) 희생당한 개인의 모습을 포착해내는 부분에 관심을 가지고 있죠.
60~70년대를 배경으로 한 <조디악>은 평화로워 보이나 불안이 가득한 미국의 풍경을,
00년대를 배경으로 한 <소셜 네트워크>에서는 SNS 시대가 펼쳐지기 직전의 20대의 군상을,
10년대를 배경으로 한 <나를 찾아줘>는 스마트 시대에 유린되는 현대의 대중을 정확히 그려냈죠.
30년대를 배경으로 한 <맹크>에서 핀처는 실제 그 시대상의 영화를 재현하려는 듯
모든 영화적 문법을 총동원하여 고전 할리우드 영화의 모습을 현대의 기술력으로 세공해내는데,
그런 기술력은 그저 뛰어난 감각과 솜씨에 그치지 않고
한 시대상의 빛과 어둠을 다루는 이 영화의 태도와 맞물리는 것처럼 보입니다.
<시민 케인>이라는 영화사에 큰 족적을 남긴 걸작의 뒷 이야기를 다루는 <맹크>는
그 영화의 각본을 쓴 인물이 할리우드라는 거대한 시스템과 홀로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죠.
현 시대에 돌이켜보면 마냥 아름답게 느껴지는 한 시대상을 바탕으로 하고, 그것을 아름답게 담아내지만
정작 주인공은 그 아름다운 시대에 어우러지지 못한 맹크라는 인물이며,
그의 관점에선 그 시대 또한 아름답지만은 않았다는 이야기를 현 시대의 기술력으로 담아냈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고전 할리우드 영화의 형식을 가졌으나, 마냥 그것을 예찬하지는 않는
또 한 편의 냉소적인 핀처 영화로 느껴집니다.
하지만 그의 전작들에 비하면 조금 더 따뜻한 영화처럼 느껴지는데, 무엇보다도 등장인물들을 다루는 방식에서 그러하네요.
핀처는 항상 등장 인물들을 마치 체스말처럼 다뤘지만 이번 작품에선 인물들에 대해 애정 혹은 연민 섞인 시선이 느껴지는데,
거의 항상 (에이리언3) 타협 없이 영화를 만들어온 핀처가
본인처럼 최고의 창작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주인공 맹크에게 자기 자신을 조금은 투영한 게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아마도 핀처 영화 중 가장 쓸쓸하지만,
한편으론 가장 낭만적인 면모가 있는 영화라고 요약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개리 올드만은 역시나 뛰어난 연기를 보여주며 극을 이끌어가고,
아만다 사이프리드와 릴리 콜린스 등 조연들도 모두 적절한 연기를 선보입니다.
고전 음악을 되살린 트렌트 레즈너와 애티커스 로스의 사운드트랙도 흑백 화면에 자연스레 녹아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