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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수다 [스포주의]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초간단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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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을 본 기억이 있어서 전에 쓴 리뷰가 있나 찾아봤다. 2006년에 쓴 게 인터넷상 어딘가에 돌아다닌다(지금보다 더 민망한 필력이라 부끄러워서 어디에 있는지 남기진 않겠다). 요약하자면 이 영화는 '인어공주' 동화를 기반으로 한 멜로영화고 좋은 연기와 이야기를 감상하며 꽤 재밌게 봤다는 리뷰다. 2006년에 나는 학교를 다니며 그럭저럭 유쾌하게 살고 있었다. 지금의 대학생들은 미래에 대한 준비성이 투철하다. 취업을 위해 여러 가지 공부를 하고 자격증을 딴다. 어학연수도 다녀오고 누군가는 학비를 충당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도 한다. 직장인이나 돼야 바빴던 것들을 대학생 때부터 한다. 그때(2006년)의 (일부) 대학생은 친구들, 선후배들과 술을 진탕 퍼마시고 괴상한 짓을 하면서 대학생활을 '즐겼다'(세상 어딘가에는 성실하게 학교 다니면서 미래를 준비하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확실한 건 내 주변에는 그런 대학생은 없었다). 나 역시 미래는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생각이었다. 하고 싶은 것이 있었지만 가는 길을 몰랐다. 그래서 돌고 돌다가 나중에라도 그 길에 다다를 수 있으면 다행이라 생각했다(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2020년 지금에서 돌이켜 보면 2006년의 나는 참 대책없이 살았다. 

 

2. 2006년에 쓴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의 리뷰도 참 대책없는 글이다. 요즘 글쓰기 연습삼아 영화글 쓰는 스터디 모임에 나간다. 2006년의 나와 비슷하거나 그때 나보다 더 어린 학생들이 써온 영화글을 함께 공유한다. 대단한 문장가들이고 영화를 보는 시선도 깊고 남다르다. 대책없이 살았던 2006년의 나는 그들의 글을 읽을 때마다 부끄러워진다. 나는 최근 넷플릭스 영화 '먼훗날 우리'의 글을 쓰면서 지나버린 청춘을 아쉬워했다(이제 40대가 됐고 청춘을 이야기하는 창작물들이 나와 더 이상 무관한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그제서야 나는 내 청춘이 끝났다는 것을 알았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은 다시 한 번 지나온 것을 돌아보게 만든다. 그것은 '먼훗날 우리'처럼 소중한 줄 몰랐던 순간이 아니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에서 츠네오(츠마부키 사토시)가 도망친 것은 언젠가 그곳에 두고 와야 할 것들이었다. 시간이 흐르고 사람은 변하지만 거기 두고 온 것은 시간의 흐름을 쫓아가지 않는다. 마치 '동화'처럼. 

 

3.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은 '인어공주' 이야기를 레퍼런스로 삼았다. 깊은 바다에서 육지로 올라온 인어공주는 우여곡절 끝에 왕자님과 사랑을 이루고 행복하게 살았다. 그러나 '이세계'의 인어공주는 왕자님과 이별하고 혼자 꿋꿋이 살아간다. 조제(이케와키 치즈루)의 지느러미는 다리가 되지 않았지만 스스로 돌아다니는 법을 터득했다. 집 안에는 타인의 온기도 남아있지 않지만 조제는 자신의 온기로 집을 채워간다. 조제는 '인어공주'의 해피엔딩을 떠나보내고 스스로 삶을 가꾸고 있다. 이는 츠네오도 마찬가지다. 이 영화는 츠네오의 시선을 쫓아 진행되고 있다. 젊고 밝은 대학생 츠네오는 조제를 만나 특별한 순간을 보냈다. 얼마 뒤 조제와 이별하고 카나에(우에노 주리)를 만나 거리로 나왔을 때는 자동차 소음이 그를 감싼다. 카나에는 뭘 먹을지 고민한다. 조제와 먹었던 집밥 대신 잘 나가는 가게의 우동이 언급된다. 동화같았던 조제와의 순간이 끝나고 일상으로 돌아왔을 때 츠네오는 주저앉아 오열한다. 그제서야 동화의 마지막 페이지가 끝났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4. 조제와 츠네오는 동화같은 사랑을 했다. 그들은 '영원'이라는 말을 믿었고 유치한 장난을 공유했다. 멜로드라마처럼 가슴 아픈 순간도 있었고 따뜻하고 애절한 순간도 있었다. 그러나 청춘은 조금씩 흘러가고 삶이 머무는 자리도 변한다. 츠네오는 럭비선수를 지나 대학생활의 낭만을 즐기다 취직을 했다. 조제는 보육원에서 도망쳐 할머니와 지내다 할머니도 죽고 집의 환경도 변했다. 두 사람의 관계는 청춘의 한 순간에 머무르는 '동화'같고 '모험'같은 사랑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두 사람이 함께 했기에 엉뚱한 상상을 했고 사랑도 했다. 청춘이 조금씩 흘러간다면 그 사랑도 함께 떠나간다. 츠네오는 결혼을 끌어들여 조제와 함께 하려 했지만 그 결혼이 해피엔딩일 수 없다는 건 두 사람 모두 잘 아는 사실이었다. 결혼은 결코 동화같지 않기 때문이다(사실 동화에는 결혼 이후의 페이지가 없다). 차라리 '먼훗날 우리'처럼 '그때 다른 선택을 했다면 잡을 수 있었을지도 모를' 청춘이라면 다행이겠지만, 이 경우에는 '무슨 수를 써도 잡을 수 없는, 떠나보내야 하는' 청춘이다. 

 

5. 카나에는 현실적인 사람이다. 캠퍼스에서는 '퀸카'급의 미모와 스타일, 성격을 가지고 있지만 사람을 대하는 것이 서투르기도 하고 겁도 많다. 카나에가 다른 사람에게 친절한 것은 상대를 배려하고 이해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다치는 게 싫어서 행하는, 일종의 방어기제다. 언덕에서 조제와 독대하는 순간, 카나에는 방어기제를 내려놓고 자신의 속을 드러낸다. 카나에는 크게 성공하거나 대단히 드라마같은 삶을 살진 않을 것이다. 그러나 실패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능력을 갖췄고 물 흐르듯 '적당한' 삶을 살 것이다. 츠네오가 카나에와 함께 걷는 것도 그런 삶으로 향한다는 뜻이다. 이제 츠네오에게 동화는 추억으로 남게 된다. 이것은 조제에게도 마찬가지다. 조제 역시 또 다른 사랑이 찾아올 수 있다. 그러나 그 사랑은 츠네오와의 시간과 똑같진 않을 것이다. 이미 겪은 상처는 경험이 되고 조금 더 능숙하고 어른스럽게 사랑할 것이다. 이미 조제는 츠네오와 함께 세상을 구경했다. 조제에게 세상은 더 이상 신비로운 세계가 아니다. 

 

6. '무슨 수를 써도 잡을 수 없는, 떠나보내야 하는 청춘'이 존재하는 이유는 그 순간을 처음 경험하기 때문이다. 연예인들이 '신인상'에 대해 '일생에서 단 한 번 받는 상'이라고 말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처음 하는 것은 말 그대로 '처음 한 번뿐'이기 때문이다(조제와 만나기 전 츠네오에게는 섹스파트너가 있다. 그에게 제대로 된 사랑은 조제가 처음이었음을 보여준다). 조제로부터 도망친 츠네오가 "조제와 다시 만날 일은 없다"고 단정짓는 이유도 '첫 사랑은 다시 만날 수 없다'는 말과 통한다(츠네오가 조제로부터 '도망친' 이유도 그 사랑이 영원할 수 없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동화같은 사랑을 했지만, 어쨌든 두 사람이 사는 세계는 동화가 아니다. 

 

7. 결론: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을 '첫 사랑 이야기'로 정의내리기에는 뭔가 아쉽다. 대신 '처음이라서 서투른 모든 순간에 대한 이야기'라고 정의내리는 게 좋다. 처음이라서 서투른 대학생활을 친구들과 어울리고 이야기하며 보냈다. 닳고 닳은 회사원이 돼서 그 순간을 돌아보니 "왜 좀 더 계획적으로 미래를 준비하지 못했을까"라는 후회가 생긴다. 그러나 만약 취업 준비하고 자격증도 따며 부지런하게 대학생활을 보냈다면 "왜 그때 좀 더 즐기지 못했을까"라고 후회할지도 모르겠다. 어느 방향을 택했어도 대학교는 졸업하기 마련이고 지나온 순간에는 후회가 남는다. 조제와 츠네오의 사랑이 그랬고 젠칭(정백연)과 샤오샤오(주동우)의 순간이 그랬다. 청춘을 떠나보내고 나니, 지나온 것에 후회하며 사는 게 삶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그저 할 수 있는 선택은 츠네오처럼 주저앉아 오열하거나 조제처럼 묵묵히 홀로 견디며 다이빙 하는 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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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댓글을 많이 달아야 레벨업을 할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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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등 golgo 2020.11.23. 10:06
경험이 녹아있는 좋은 글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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