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 <잔칫날> GV 시사회 늦은 후기
오랜 병간호 끝에 아버지를 보내드리게 된 가난한 남매, 오빠는 돈을 벌기 위해 동생 몰래 행사를 하러 갔다가 예기치 못한 사고로 발이 묶이게 되고, 동생은 홀로 장례식장에 남아 오빠를 기다립니다. 전체적인 줄거리는 단순하지만, 단순한 전개 속에 유머와 비애가 담긴 에피소드들이 영화를 풍성하게 만들어주고 관객들의 감정을 이리저리 뒤흔듭니다. 아버지의 사망, 궁핍한 경제 사정, 장례식 등 주인공 남매의 처지는 가혹할 정도로 슬프고 부정적이지만, 뜻밖의 상황들이 웃음과 은근한 긴장, 불안을 유발합니다. 또한 그런 상황들이 운명의 장난처럼 이어지며 주인공들의 비극을 지속하고 점차 악화시킵니다. 도무지 나아질 조짐이 보이지 않는 상황, 주인공 남매의 입장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괴롭게 하는 주변 사람들, 서로 떨어져 각자가 처한 상황을 몰라 갈등을 일으키는 남매 등 답답하고 조마조마한 전개가 이어지다가 말미에 모든 오해와 갈등이 풀리고, 속 시원한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게 하는 평화로운 결말을 맞이합니다.
포스터 이미지에 장례식 복장을 한 침울한 표정의 두 남매의 모습과는 상반되는 ‘잔칫날’이라는 제목부터 시작해서, 영화 속에도 여러 가지 아이러니가 담겨 있었습니다. ‘경만’은 아버지가 돌아가신 슬픈 상황임에도 돈을 벌기 위해 행사를 진행하며 웃어야만 하고, ‘경미’는 그와 반대로 상주인 오빠를 대신하여 혼자 조문객을 맞이하고 친척 어르신들과 사무실 직원에게 꾸중을 들어가며 시종일관 웃지 못하는 신세입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돈이 필요한 ‘경만’과, 아이가 태어나서 돈이 드는 데가 많다고 하는 업체 형의 입장은 일치하면서도 상반됩니다. 어머니의 팔순 잔치 행사를 의뢰한 아들 ‘일식’은 상대적으로 돈이 많고, ‘경만’은 돈이 없습니다. 휑한 남매의 아버지 장례식과는 반대로, 행사 진행 중 돌아가신 팔순 할머니의 장례식은 VIP실에서 수많은 화환과 조문객들과 함께 치러집니다. 이렇게 인물 또는 그들이 처한 상황이 대비되며 웃음과 혼란을 주다가 후반부에 모든 아이러니가 해소되며 잔잔한 감동이 이어집니다. ‘경만’의 처지를 알아챈 행사 업체 형이 장례식장에 조문을 와서 ‘경미’도 상황을 알게 되어 오해가 풀리고, 팔순 할머니의 죽음에 대한 진실도 밝혀지고, 상반된 입장이었던 ‘일식’과 ‘경만’이 부모가 돌아가셨다는 공통된 슬픔과 자식으로서의 회한을 공유하며 갈등이 해결됩니다. 슬프지만 울 수 없는 요란스러운 상황을 관찰자로서 웃으며 바라보다가, 일이 해결된 이후인 결말부에서는 주인공 남매에게 이입되어 감정이 쑤욱 밀고 들어와 함께 슬퍼하고 마음을 놓게 되었습니다.
상영 후 진행된 GV에서 감독님이 이전에 연기를 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배우들이 말하기를, 감독님이 매우 섬세하고, 완벽주의이고, 오기가 있고, 지독하며, 심지어는 어떤 장면에서는 (좋은 연기를 찾기 위해) 배우와 치열한 언쟁을 벌이기까지 했다고 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모든 배우의 연기가 매우 자연스럽고 완성도가 높다고 느꼈습니다. 슬프고 지친 상태이거나, 슬퍼도 웃어야 하는 등 복잡미묘한 감정 연기를 위해 배우들이 했던 노력이나 그런 장면을 촬영할 당시의 에피소드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디테일한 감독님과 그에 맞는 연기를 보여준 배우들의 시너지가 빛을 발해 마음 깊이 공감하여 울고 웃을 수 있었던 영화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