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크모드
  • 목록
  • 아래로
  • 위로
  • 댓글 8
  • 쓰기
  • 검색

[런] 간략후기

jimmani
2258 12 8

 

2018년 <서치>라는 걸출한 스릴러를 내놓으며 주목받은 아니쉬 차간티 감독의 신작 <런>을 보았습니다.

<서치>가 오직 컴퓨터나 TV 등 오직 모니터 속 이미지만을 활용한 연출 기법으로

첨단 기술 속에 내재된 동시대성을 한껏 드러냈다면, <런>은 그와는 정반대의 길을 갑니다.

시대가 시대이니만큼 자연스레 나타날 법한 손쉬운 기술의 유혹을 애써 잘라낸 채,

작은 사건을 놓고도 의문을 품을 수 밖에 없게 하는 제약을 두며 끊임없이 긴장감을 유발합니다.

히트한 전작의 방식을 이어가지 않고 정반대의 노선에서도 힘 있는 연출을 보여준 덕분에

믿고 볼 만한 스릴러 감독이 또 한 명 나왔음을 느끼게 하는 영화였습니다.

 

엄마 다이앤(사라 폴슨)은 선천적으로 장애를 안고 태어난 딸 클로이(키에라 앨런)를 애지중지 키웠습니다.

다이앤은 딸로 하여금 건강을 위한 철저한 루틴을 몸에 익히게 하며 체계적인 홈 스쿨링을 진행하면서도

언제나 딸을 사랑으로 보듬었고, 클로이는 평생을 집에서만 지내면서도 똑똑하고 긍정적인 사람으로 자라났습니다.

그런 클로이가 이제 어느덧 대학에 입학하고 성인이 될 날을 손꼽아 기다리던 중,

클로이가 엄마의 장바구니에서 한 약통을 발견하면서 행복했던 일상에 균열이 가기 시작합니다.

자신이 아닌 엄마 앞으로 처방된 약통에 의아해 하던 클로이는,

그 약통 속에 담긴 약을 엄마가 자신에게 먹이려 하자 불편한 의심을 시작하게 됩니다.

그동안 휠체어를 타고 집안에서만 살아온 것이 엄마의 '보호' 덕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클로이는 직감하게 되지만, 만일 그렇다면 이제는 엄마가 왜 그랬는지 알아내야만 합니다.

 

아니쉬 차간티 감독의 전작인 <서치>도 따지고 보면 '아빠가 실종된 딸을 찾는다'는,

스릴러 장르에서는 그리 새롭지는 않은 스토리를 다루었으나 도전적인 형식이 주는 임팩트는 상당했습니다.

무심코 지나쳤던 진실이 드러나고 괜한 의심을 자아내는 데 있어 그 형식이 하는 역할이 상당히 컸죠.

<런> 역시 '장애를 지닌 딸과 그를 과잉보호하는 엄마'라는 설정은 꽤 익숙합니다.

그러나 영화는 스스로 제약을 부여함으로써 한시도 긴장을 놓지 않고 익숙한 이야기를 따라가게끔 합니다.

우선 장애를 지녔으면서 동시에 엄마의 보호를 받음으로 인해 사건의 진실을 온전히 알지 못하는

딸을 주인공으로 삼음으로써, 물리적인 상황 연출에 갖은 변수를 부여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딸이 속수무책으로 당하며 일방적인 피해자로 남지도 않습니다.

영민하고 추진력 있는 딸은 자기 앞에 닥친 상황을 재기 넘치게 돌파하며 역으로 뜻밖의 변수를 만들기도 합니다.

덕분에 이야기에 별다른 변주나 트릭을 쓰지 않아도, 예상 가능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싶을 때

허를 찌르는 캐릭터의 행보가 펼쳐짐으로써 섬찟한 여운을 남기기도 합니다.

 

감독이 전작 <서치>와 정반대로 디지털 기술의 이로운 점을 거의 활용하지 않는다는 점도 돋보입니다.

전작의 경우 오직 디지털 환경에서만 극이 전개되다 보니 동시다발적으로 쏟아지는 정보들을 주시하며

단서를 찾아내야 하는 재미가 있었다면, <런>에서는 그 반대로 디지털 환경으로 가는 경로를

최대한 차단하여 그로 인해 생길 수 있는 정보의 지름길 또한 거의 없애버립니다.

그 결과 어느 정도 예상되는 스토리로 흘러가는 가운데에도 정보의 공백이 생기며 긴장감을 유발하죠.

그런 와중에 딸에게 결국은 위협적인 존재인 엄마는 정작 딸에게 한번도 공격적인 언사를 하지 않아서

엄마와 딸 사이의 관계성에 의심을 하게 되는 순간이 때때로 다가오기도 하는 등,

감독은 제약이 주어진 환경이 유발하는 궁금증으로 긴장감을 유지하는

전통적 스릴러 방식으로도 상당히 매끈한 연출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일방적인 가해자-피해자 관계가 아니라 쌍방적 충돌과 대결 구도를 유지하는 영화 속에서

엄마 다이앤 역의 사라 폴슨과 딸 클로이 역의 키에라 앨런이 보여주는 연기 대결이 돋보입니다.

최근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래치드>에서도 소름끼치는 소시오패스를 연기한 바 있는

사라 폴슨은 <런>에서 비슷해 보이면서도 상당히 다른 결의 연기로 또 한번 관객을 압도합니다.

극진한 모성애로 포장된 외면 속에 얼만큼의 무모함을 품고 있을지 가늠할 수 없는

다이앤의 모습을 찌를 듯 날카로운 연기로 그려내며 불가능할 것 같은 설득력을 발휘합니다.

한편 클로이 역을 맡은 신예 배우 키에라 앨런은 이에 뒤지지 않는 강인한 캐릭터로 선방합니다.

실제로 장애를 갖고 있기도 한 키에라 앨런은 불리한 상황 속에서도 겁에 질리려 할 때쯤

상황을 반전시키는 영민함을 몸을 사리지 않는 연기로 표현하여 긴장감의 균형을 이루어냅니다.

여담으로 <서치>에서 존 조가 맡은 주인공의 아내로 출연했던 사라 손도 등장해 반가웠네요.

 

사실 <런>은 포스터만 봐도 대략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갈지 짐작 가능하고,

실제로 영화는 그 짐작을 굳이 요란하게 벗어나려 하지 않고 충실히 따라가는 편입니다.

그런데도 한 시도 주의가 흩어지지 않는 몰입감을 자랑하는 것은 감독의 역량 덕이 큽니다.

전작만큼 창의적인 연출 방식을 거듭 주장하지 않아도, 지극히 전통적인 스릴러 작법을 따라가도

그에 뒤지지 않는 서스펜스를 선사하는 이 영화는 스릴러 장르에 있어서

아니쉬 차간티 감독의 역량은 우연이 아닌 믿을 만한 재능임을 입증합니다.

 

신고공유스크랩

추천인 12

  • 스타니~^^v
    스타니~^^v
  • 티라미숑
    티라미숑

  • 알아맥개봉기원
  • 알폰소쿠아론
    알폰소쿠아론
  • 한솔2
    한솔2
  • 돌멩이
    돌멩이

댓글 8

댓글 쓰기
추천+댓글을 달면 포인트가 더 올라갑니다
정치,종교 관련 언급 절대 금지입니다
상대방의 의견에 반박, 비아냥, 조롱 금지입니다
영화는 개인의 취향이니, 상대방의 취향을 존중하세요
자세한 익무 규칙은 여길 클릭하세요
profile image 1등
다음 작품이 벌써 기대가 되는 감독입니다~~!!!♡♡
18:15
20.11.22.
profile image 2등

예전부터 들었던 생각인데, 스토리의 '예측 가능성'이란 요소는 영화의 재미랑은 딱히 큰 연관성이 없다고 봐요 ㅋㅋㅋ

익숙한 이야기더라도 얼마나 능숙하고 세련되게 관객 앞에 펼쳐놓는지가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18:53
20.11.22.
jimmani 작성자
알폰소쿠아론
그런 거 같습니다 ㅎㅎ 예측 불가여도 재미없는 경우도 있어서 ㅎㅎㅎ
18:55
20.11.22.
profile image 3등
사실 반전이 아주 대박급은 아니라도 중간중간 긴장감 넘치게 연출을 해서 정말 볼만했습니다 좋은 후기잘봤습니다
19:41
20.11.22.
jimmani 작성자
울트라소닉
감사합니다! 시종일관 쫀쫀했죠 ㅎㅎ
00:17
20.11.23.

후기를 정독하다가 아직도 [서치]와 인연이 안 닿았음을 깨닫고, 뒤늦게 그램 노트북으로 [서치]를 감상하고 왔습니다ㅠㅜㅠㅜ

 

[서치]가 감동적인 오프닝부터 폭발적인 전개와 압도적인 결말까지 1분 1초의 표현력이 완벽한 영화였어서,

 

극장에서 본 예고편이 제겐 많이 무서웠지만 [런]도 안 볼 수가 없게 되었어요;ㅁ;

21:07
20.11.22.
jimmani 작성자
알아맥개봉기원
<런>은 무섭지는 않은데 쪼는 맛이 역시나였죠.^^
00:18
20.11.23.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에디터 모드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하시겠습니까?

댓글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

공유

퍼머링크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HOT [범죄도시 4] 호불호 후기 모음 2 익스트림무비 익스트림무비 1일 전08:38 11955
HOT 시드니 스위니, “예쁘지도 않고 연기도 못 한다”고 발언한 ... 2 카란 카란 31분 전19:18 221
HOT 엠마 스톤, 아카데미 시상식 사회자를 욕하지 않았다 2 카란 카란 52분 전18:57 398
HOT 모르는 이야기 - 라이브러리 톡. 보러 오세요. 제가 진행합... 5 소설가 소설가 3시간 전15:54 309
HOT <원더랜드> 서비스 소개서 1 넷플마니아 넷플마니아 59분 전18:50 257
HOT 김무열 정오의 희망곡 1 e260 e260 1시간 전18:36 210
HOT 아놀드 슈왈제네거, 실베스터 스탤론과의 ‘라이벌 관계’가 ... 6 카란 카란 4시간 전15:24 750
HOT 시티헌터 넷플 공개(청불) 4 GI GI 1시간 전17:58 707
HOT 앤 해서웨이, 할리우드에서 행하던 남성 배우와의 ‘궁합 테... 4 카란 카란 6시간 전13:29 2076
HOT <극장판 하이큐!! 쓰레기장의 결전> IMAX 개봉 확정 &... 2 넷플마니아 넷플마니아 2시간 전16:56 424
HOT <스턴트맨> 4DX 효과표 공개 3 넷플마니아 넷플마니아 2시간 전16:53 454
HOT CGV '스턴트맨' IMAX 포스터 증정이벤트 2 샌드맨33 3시간 전16:24 617
HOT 남은인생10년 흥행감사 굿즈 수령했습니다 2 카스미팬S 4시간 전15:48 275
HOT 유태오 에스콰이어 1 NeoSun NeoSun 4시간 전15:35 379
HOT 챌린저스 노스포 짧은 후기 6 사보타주 사보타주 5시간 전14:45 840
HOT <악마와의 토크쇼> 메인 예고편 공개 4 넷플마니아 넷플마니아 5시간 전13:58 901
HOT 범죄도시4 (2024) 한 획을 그은 액션영화. 스포일러 약간. 22 BillEvans 6시간 전13:33 1787
HOT 존 로건,코맥 맥카시 소설 '핏빛 자오선' 각색 3 Tulee Tulee 6시간 전13:32 511
HOT 케이트 베킨세일-스콧 이스트우드,드라마 <스톨른 걸>... 1 Tulee Tulee 6시간 전13:32 456
HOT 범죄도시4 불호 리뷰 - 돈에 미친 시리즈 6 Opps 6시간 전13:23 2623
1134042
image
하드보일드느와르 21분 전19:28 125
1134041
normal
토루크막토 30분 전19:19 104
1134040
image
카란 카란 31분 전19:18 221
1134039
image
하드보일드느와르 33분 전19:16 186
1134038
image
시작 시작 39분 전19:10 145
1134037
image
golgo golgo 52분 전18:57 435
1134036
image
카란 카란 52분 전18:57 398
1134035
image
넷플마니아 넷플마니아 58분 전18:51 171
1134034
image
넷플마니아 넷플마니아 59분 전18:50 257
1134033
image
호러블맨 호러블맨 1시간 전18:48 120
1134032
normal
시작 시작 1시간 전18:46 329
1134031
image
호러블맨 호러블맨 1시간 전18:46 105
1134030
image
호러블맨 호러블맨 1시간 전18:44 144
1134029
image
호러블맨 호러블맨 1시간 전18:41 165
1134028
image
e260 e260 1시간 전18:36 210
1134027
image
e260 e260 1시간 전18:35 137
1134026
image
e260 e260 1시간 전18:35 125
1134025
image
호러블맨 호러블맨 1시간 전18:35 110
1134024
normal
토루크막토 1시간 전18:29 177
1134023
image
NeoSun NeoSun 1시간 전18:06 176
1134022
image
NeoSun NeoSun 1시간 전18:00 230
1134021
image
GI GI 1시간 전17:58 707
1134020
image
NeoSun NeoSun 1시간 전17:55 214
1134019
image
NeoSun NeoSun 2시간 전17:40 977
1134018
image
카스미팬S 2시간 전17:36 143
1134017
image
NeoSun NeoSun 2시간 전17:31 196
1134016
image
시작 시작 2시간 전17:16 976
1134015
image
NeoSun NeoSun 2시간 전17:08 229
1134014
image
넷플마니아 넷플마니아 2시간 전16:56 424
1134013
image
넷플마니아 넷플마니아 2시간 전16:54 342
1134012
image
넷플마니아 넷플마니아 2시간 전16:53 454
1134011
image
호러블맨 호러블맨 2시간 전16:52 161
1134010
image
호러블맨 호러블맨 2시간 전16:51 329
1134009
image
호러블맨 호러블맨 3시간 전16:48 181
1134008
image
NeoSun NeoSun 3시간 전16:43 3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