킹스 퀘스트 6

킹스 퀘스트 5는 (나왔던 당시 기준으로) 충격 그 자체-눈을 의심할 정도의 영상혁명이었습니다.

게임 자체의 퀄리티는 이전작들에 비해서 나아졌다 보기는 좀 그랬지만...(아니 까놓고 말해서 퇴보했습니다) 아무도 그런 걸로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충격적인 비주얼을 보여줬는데 뭘 더 바래요. 업계 자체를 바꿔버렸는데...

그 후속작이 그만한 임팩트를 주기는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겠죠.

그래도 시에라는 많이 노력했습니다. 영상기술을 주도해가는 업계리더라는 이미지를 얻었는데 그걸 유지해야죠.

일단 오프닝에 엄청난 투자를 했습니다. 실사배우를 찍은 사진과 손으로 그린 그림을 합성했고(다이나믹스한테 배운 기술^^) 배경이 빙글빙글 돌아가는(당시로서는 엄청 파격적인) 동영상까지, 거기에 완전 음성지원. 길이도 한 10분은 되었던 것 같아요(실제로 재본 건 아닙니다).

그니까 뭐 거의 단편영화 하나를 만든 거죠. 게임 전체 용량의 거진 반정도는 오프닝이 차지합니다.

그래서 뭐 일단 게이머의 시선을 확실하게 잡아끄는데는 성공했죠. 비싼 돈 주고 게임 산 사람이 오프닝만 봐도 뿌듯해지고 돈이 하나도 안아깝다는 생각이 들 만큼.

단순히 오프닝-간판만 화려하게 매단 건 아니었습니다. 게임이 실제로 이전작들보다 발전했습니다.

오프닝을 빼고도 게임 본체의 용량이 거의 10메가는 되었는데 이렇게 (당시 기준으로) 방대한 용량에 걸맞게 역대 최대의 스토리 볼륨을 자랑합니다. 게임속 세계도 더 넓어진데다 텍스트 양이 비교도 안되게 많아졌습니다.

이전까지는 킹스 퀘스트 시리즈가 문장력이 좋은 게임은 아니었습니다. 텍스트는 게임 진행에 필요한 정보만 간략하게 전달하는 정도였고 대사도 짤막짤막했습니다. 거기에 비해 KQ6은 나레이션이나 대사량이 엄청나게 늘었습니다.

게임 시나리오를 작성한 사람이 제인 젠슨, 나중에 가브리엘 나이트 시리즈로 업계 최고의 시나리오 작가로 등극하는 사람이죠.

본체의 그래픽은 5편에서 이미 정점을 찍어 그보다 더 나아보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당시로서 최상이었다는데는 변함이 없고, 거기에 더욱 커진 볼륨과 잘 짜여진 시나리오와 퍼즐들이 더해지면 더 바랄게 없죠. 이 뒤로 나온 후속작들이 어딘가 나사가 빠진 부분들이 있었던 터라 시리즈 전체를 줄세웠을 때 6편을 맨 앞에 놓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KQ6은 시에라 게임 중 처음으로 CD롬용으로 개발된 게임이기도 합니다.

그전에 시에라제 CD 게임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개발완료되고 한참 지난 게임의 CD롬 업데이트였었고, 그와 달리 KQ6은 처음부터 CD를 염두에 두고 개발이 되었습니다. 아직 CD롬 하드웨어 자체가 보급이 덜 되어있던 터라 플로피 버전이 먼저 나오긴 했지만 그 플로피 버전에 CD롬이 곧 나온다고 광고하고 있었죠.

CD는 오프닝 동영상을 좀 더 화려하게 재구성했습니다.(근데, 동영상중의 일부는 플로피 버전에만 나오는 게 있어요. 다 보고싶은 사람은 둘 다 사라는 거죠ㅎㅎ) 게임 전체에 그 많은 대사를 전부 성우가 녹음했습니다. 그때는 게임회사 직원들이 마이크잡고 발연기하는게 일반적이었고 시에라가 이전에 냈던 CD들도 그랬었는데 이번에는 전문 성우를 기용했다고 합니다. 어쨌든 당시 기준으로는 꽤 들어줄만한 목소리연기였습니다. 오프닝 동영상의 대사도 성우가 재녹음한 버전입니다.

글구 게임의 엔딩에는 남녀 보컬이 부르는 듀엣곡을 CD 오디오로 들려줍니다.(플로피 버전에는 맛보기 데모만 들어있습니다)

도스에서만 되던 플로피 버전과 달리 CD에는 윈도우 버전도 같이 들어있는데 윈도우 버전은 게임속 대화장면에 나오는 인물 초상화를 고해상도로 재작업했습니다.

이렇게 여러모로 업그레이드된 CD 버전은 CD롬 드라이브가 보편화되기 전에 나와서 그렇게 흥하지는 못했고 당시에 이 게임의 판매고를 올려줬던 건 주로 플로피 버전이었던것 같지만.... 나중에 이런 저런 모음집에 실린 것이나 지금 고전게임 판매 사이트에서 구할 수 있는 건 CD 버전이죠.

뭐... 그렇게 해서, 킹스 퀘스트 6편은 5편만큼의 임팩트를 주진 못했더라도 어드벤처의 역사에 한이름 남기는데는 부족함이 없는 게임이었습니다.